정치적 순결의식이란 망상이 괴물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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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순결의식이란 망상이 괴물을 낳았다
  • 김선주
  • 승인 2023.09.2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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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채널A뉴스 동영상 캡처
채널A뉴스 동영상 캡처

화려하고 극단적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주의를 끄는 정신과적 이상 증세를 ‘연극성 인격장애’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의 자기를 부정하고 피상적인 자기에 집착하여 자기를 과도하게 포장하려 합니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이러한 인격장애를 가진 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상처와 부조리 투성이인 한 여인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교양 있고 순결한 명문가의 여성으로 행세하다가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이러한 연극성 인격장애가 많이 나타납니다. 자기의 본래 모습을 숨기기 위해 지나친 순결의식을 갖기 때문입니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그러한 욕망의 창구가 되기도 합니다. 페북에서도 종종 그러한 경향을 가진 이들을 봅니다. 그런 이들은 자기와 다른 정치적 견해에 대해 처음에는 짐짓 점잖은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점점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고 정치혐오를 내세우며 자기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는 쪽으로 말의 흐름을 바꿉니다. 정치적이지 않은 자신의 견해와 태도가 올바르다는 암시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이라고 전제를 깔고 말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에 대해 모르는 자신의 태도가 순결하다는 전제입니다. 이 전제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정당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됩니다. 정치에 대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면 타인의 정치적 견해에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은 이미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많습니다.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당신의 견해는 잘못됐다는 논리, 그것은 “정치적 순결성을 가진 내가 판단할 때 당신의 정치적 견해는 잘못됐다”는 주장입니다.

이게 바로 연극성 인격장애의 한 면입니다. 외부세계를 부정하며 자신은 그 세계로부터 멀리 있으므로 깨끗하고 순결하다는 주장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기가 부정하는 외부세계로부터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그 외부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순결의식은 일종의 망상입니다. 그들은 망상에서 비롯된 순결의식으로 외부세계를 진단하고 평가하며 조롱합니다.

이런 순결의식은 종교인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많습니다. 교리적 가르침에 의해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식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세속적 세계와 변별된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그 구원의식은 비세속적인 순결의식과 결부됩니다. 죄와 순결의식이라는 이 모순된 두 감정이 동시에 가능한 것은 그것이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합리성과 논리성을 초월하는 역설 화법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역설이 합리성을 기초로 해야 하는 정치에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예측된 결과를 도출하며 상식과 도덕 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가 이런 문법을 버리고 종교적인 화법으로 말하게 되면 사회는 무질서하고 국가의 시스템이 망가지게 됩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정치 문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근본 없는 목사들이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엉터리 설교를 하듯이 마구잡이로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명백하게 드러난 가족의 비리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대통령, 태생부터 가짜 인생을 살아온 그의 부인이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법무부장관 역시 사법 권력을 이용하여 야당 대표를 탄압하며 시정잡배나 할 수 있는 천박한 말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가지를 따겠다”며 “붕짜자 뿡짝”을 외치던 천박한 극우 인사를 국방부장관에 앉히고, 방송을 장악하고 통제하던 과거 정부 문체부 장관을 다시 불러 세우고, 실형을 살고 있는 자를 사면하여 보궐선거 후보자로 공천하는 이런 작태들의 내면에는 순결의식이 있습니다. 나쁜 놈들이 순결의식을 갖게 되면 태연하게 나쁜 짓을 저지르고 오히려 당당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정당하다는 내적 순결의식이 작동하면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자기 순결성을 증명하려 합니다. 윤 정부가 모든 불순물은 전 정부에 있고 전 정부 인사들은 오염되었기 때문에 제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순결의식이 아니라 종교적 순결의식입니다. 죄로 인해 더럽혀진 것을 씻어내야 한다는 회개 심리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씻어내야 할 죄가 자기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는 죄를 용서받은 구원자이며 순결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 행위는 항상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의 대속적 죽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기독교 교리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들의 순결의식입니다. 종교적 순결성이 이념적 순결성과 이종교배를 하면 이 정부 인사들 같은 짐승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정부 인사들은 모두 이러한 연극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만 모인 것 같습니다.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들이 선장이 되고 기관사가 되고 갑판장이 되었으니 배가 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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