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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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는 환상
  • 최태선
  • 승인 2023.09.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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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정치는 환상이다.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촛불은 우리 국민에게 정치적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촛불 정권이 탄생했고, 미미하지만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다. 무엇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켜주었다. 하지만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인식은 성급한 결론이었다. 그런 인식은 불과 오 년도 채 지속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그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시금 촛불을 들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에게 촛불이란 한심한 짓이다. 오히려 그의 반발심을 자극할 뿐이다. 그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는 불(폭력적인 사고)은 촛불 따위로 더하거나 감할 수 없다. 지나고 보니 촛불에 승복한 박근혜야말로 순수한 정치인이다.

새삼 수사 출신이었던 강기갑 의원이 생각난다. 강명순 목사도 생각난다. 이들은 정치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바라던 바를 구하기 위해 정치에 투신했던 사람들이다. 과연 지금도 그들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도 그들은 정치에 대한 환멸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던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촛불을 들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민주주의는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을 국민이 선출한다는 점에 있어 국민은 자신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선거가 심판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사고이며 유치한 상황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정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촛불정권이라 불렀던 지난 정부를 생각해보라.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대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아니 변화시킬 수 있었는가? 적폐를 청산한다고 노력했지만 그 결과 적폐들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지 않았는가. 아니 그보다 더한 자들, 다시 말해 정신이상자 취급하던 인물들의 정치무대가 되지 않았는가.

이것은 정치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상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환상이다.

자끄 엘륄은 내 사고와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내 사고 속에는 그의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정치적 환상>이라는 책에서 현대인이 정치에 대해 가지는 환상을 지적한다.

그 첫 번째가 국민이 국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잘 생각해보라. 지금도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가 아닌가. 하지만 국가가 국민의 뜻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우리가 국민이라고 떠들어보아도 정권을 장악한 윤석열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윤만의 특성인가. 아니다. 이미 문재인 정권에서도 그것은 분명히 드러났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정권을 가진 자가 좌지우지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좌지우지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작금의 윤석열 정권은 모든 것을 전 정부의 탓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책임전가의 명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반작용이다. 국가는 정권을 장악했다고 자신의 전부를 맡기지 않는다. 국가 자체가 신성하기 때문이다. 마치 돈을 가진 자가 돈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서 돈의 노예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 역시 권력을 쥔 자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 그리고 이런 것이 바로 우상이 가지는 힘과 능력이다. 스탠리하우워어스가 말한대로 국가는 이 시대 마지막 남은 가장 강력한 우상이다. 이 우상이 호락호락 자신을 권력을 가진 자에게 맡길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착각이며 어리석은 국가 이해이다. 국가는 권력을 장악한 사람도 국민도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리바이어던이다.

두 번째, 국민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국민으로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개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수단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정당과 같은 정치 참여의 경로는 그 자체의 정치적 논리 때문에 결코 개인의 뜻을 현실 정치에 반영할 수 없다.

우리가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인 용혜원에게 감동하는 이유는 그가 홀로 그 당의 국회의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당이 하나를 넘어 조직이 되는 순간 정당은 정치적 논리에 빠져 개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인 꿈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세 번째,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적 방법을 통해 가장 실제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정치란 권력 게임일 뿐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관건이다.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은 이기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권력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의 따위는 없다. 어떤 방향성도 있을 수 없다.

작금의 민주당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오히려 실망하는 사람들이 더 실망스럽다. 민주당도 권력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낙연이 나쁜 것이 아니다. 이낙연도 이겨야 하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또 그것이 정치이다. 권력 게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매우 신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해놓은 일들로 그는 뉴라이트들을 불려냈을 뿐이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에 대해 할 말은 없다. 나는 다만 정치가 그렇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다. 모든 국민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다면 정의와 행복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을 따름이다.

복음에 눈을 뜬 사람들이 아나키스트처럼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아나키스트들은 세상의 아나키스트들과 다르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이라는 통치자가 계시다. 외형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그런 그들을 이해한다. 아마도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판을 떠난 강기갑 의원이나 강명순 목사도 그런 아나키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정치는 환상이다. 그리고 나는 복음과 복음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세상을 위한 유일한 소망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 뿐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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