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느끼시는 분, 기뻐하며 슬퍼하고 분노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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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느끼시는 분, 기뻐하며 슬퍼하고 분노하시는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9.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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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A.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강독-8
by J. Lonneman
by J. Lonneman

정치신학에 영감을 준 사람은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이다. 그는 “오직 고통당하는 하느님만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며, ‘고통당하는 하느님’이라는 강력한 상징을 제시했다. 하느님은 세상의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그 아픔을 신적 존재 안에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마치 참혹한 죽음을 막기 위해 스스로 죽임을 당한 본회퍼 자신처럼, 또는 예수님처럼.

이 과정에서 정치신학자들이 발견한 사람이 유대인 종교학자 아브라함 헤셸(Abraham Joshua Heschel, 1907-1972)이다. 헤셸은 <예언자들>이라는 책에서, 긍휼함(연민)으로 불타는 하느님의 마음을 보고 굳건해진 예언자들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회적 악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희망과 위로를 선포할 수 있었다. 그 힘의 원천은 하느님의 파토스(Pathos, 연민의 힘)였다. 파토스란 ‘고통의 느낌’이며, 가련한 인생을 돌아보는 이런 파토스를 하느님이 강렬하게 느끼신다고 고백한다. 하느님은 무색무취,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제일의 원인’처럼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느끼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하고 보살피고 슬퍼하고 불의에 분노하고 독려하며 재촉하는 분이다. 그분은 슬픔에 잠기고 약속하고 자비를 베풀며 기뻐하고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며 더 많은 사랑을 준다. 이런 하느님은 성경에 드러난 유대적 하느님이다.

그리스 철학의 이분법은 영혼과 물질을 가르고, 불멸의 영혼과 이성적인 힘에 특권을 주면서 몸과 감정의 영역은 저급한 것으로 멸시한다. 이런 관점에 서면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소동과 감정의 밖에 존재하게 된다. 신적 존재는 변화가능성이 없고 마땅히 고통당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일원론에 기초한 유대적 하느님은 초월적이지만, 한편 자유롭게 역사에 개입하시고, 인간들과 계약을 맺으며, 말과 행동으로 열정적으로 사건에 참여하는 분이다. 이런 관점에 서면, 하느님의 생각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은 하느님께 무관심한 것이며, 민감하게 세상의 고통을 느끼며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하느님 백성이 되는 길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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