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국밥에서 구더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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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국밥에서 구더기가 나왔다
  • 김선주
  • 승인 2023.09.18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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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피지도 못하고 시드는 꽃들이 있었다. 문예지나 언론의 편집 권력의 횡포에 많은 문사(文士)들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갔다. 데스크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글들은 햇빛조차 볼 수 없는 게 한국 언론 지형이었고 문예판의 구조였다. 이런 상황 가운데 페이스북이 등장했다. 페이스북은 편집 권력의 영향력 밖에 광장을 만들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허락했다. 그것은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독자를 직접 만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지면이었다. 페북은 나 같은 시골 서생 나부랭이에게 새로운 스페이스가 돼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페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이 있다.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공유하거나 순간적으로 자기감정을 배설하는 것으로 쾌감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마치 재산을 불리듯이 페친 수를 늘리는 걸 목적으로 삼는 이도 있고 자기 사업을 위한 홍보 수단으로 페북을 하는 이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학문적인 콘텐츠를 장황하게 펼쳐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다 좋다. SNS가 가진 장점 아닌가. 누구든 자기 방식대로 그것을 활용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나의 방식대로 페북을 활용한다. 나는 목회자로서 성경의 관점으로 시대의 문제와 인간을 바라보며 그것을 짧은 칼럼으로 써서 일주일에 한두 번 포스팅한다.

나에게 친구 신청을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담벼락을 면밀히 살펴보고 독자로서 콘텐츠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가를 따져본다. 적어도 나의 잡다한 글을 읽어줄 성의를 가졌는가, 그리고 내가 그의 포스팅을 읽는 일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친구 맺기를 한다. 나름 엄격한 기준으로 친구 맺기를 했는데도 페친이 2천5백 명이나 되었다.

페북 원년 멤버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요즘 페북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국제 사기꾼들의 친구 신청이 봇물을 이루기 때문이다. 미 육군으로 파키스탄에 파병됐다가 그곳에서 비밀 금고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운반할 자금이 없으니 운반비를 보내주면 그 엄청난 자금 중 상당 부분을 배당해 주겠다는 메시지는 이제 고전이 됐다. 특정 국가의 시민으로 반복되는 프로필, 야한 프로필 사진, 심지어 한국 여성들의 SNS 사진을 도용하는 대범함까지 보여준다. 삭제하고 차단해도 잡초처럼 돋아나는 이 질긴 친구 신청에 염증이 난다.

두 번째 이유는 과도하게 쏟아지는 광고들이다. 광고가 포스팅을 읽는 것을 방해할 정도다. 포스팅과 광고가 구분되지 못할 정도로 쏟아져 가독성을 현격하게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페북 광고를 보고 두어 번 상품을 구매해 봤는데 광고 내용과 다른 저질 중국산이었다. 광고 이미지와 다른 상품이 배송되거나 받고 보면 상품의 퀄리티에 비해 과도하게 비싼 것을 알게 된다. 페북이 광고에 대한 필터링 없이 돈만 주면 개나 소나 마구잡이로 광고를 뿌려주는 것이다. 페북이 돈만 밝히는 매체가 돼버린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윤석열 정권 들어서 특정 단어나 콘텐츠에 대해 검열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띌 정도로 확연한 것이다. 내용에 따라 페친들의 반응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들어 특정 단어나 사진, 정부 비판 콘텐츠에는 그러한 패턴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본다. 포스팅을 활발히 하는 다른 페친들의 담벼락을 유심히 돌아보아도 그런 현상이 어느 시점부터 눈에 띄게 나타나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최근에 홍범도 장군에 관한 시를 포스팅한 이동순 시인의 계정이 정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페북에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았다. 맛있게 먹고 있는 국밥에서 구더기가 나온 느낌이다.

페북마저 미친 정권의 더러운 마수에 오염됐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여기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아졌다. 조잡한 내 글에서나마 위로를 받는다는 몇몇 페친들의 위로와 격려 때문에 완전히 발을 빼지는 못하겠고, 한 달에 한두 번만 이곳에 와서 지껄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싶다. 이 정권의 몰락을 보게 되면 내 손가락이 신나게 춤추게 되려나? 그 날이 오면 빼앗긴 지면을 다시 찾을 수 있으려나? 이제 어디 가서 놀지?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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