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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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 김광남
  • 승인 2023.09.1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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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조성기). 밀란 쿤데라 다음에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읽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더랬다. 장편소설이 아니라 '소설집'이어서였다. 학부에서 문학을 공부했음에도 소설은 장황한 이야기라고 여기는 문학 초짜인지라 단편소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그동안 신학에 빠져 지내며 거대담론에 익숙해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게다. 작가가 모교의 문창과 교수이자 여러 해 교제한 페친이 아니었다면 책을 발견하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어젯밤과 오늘 오전 시간을 들여 다 읽었다. 작가는 극적인 사건이나 낭만적인 이야기 하나 없이 사소한 에피소드 몇 개를 펼쳐나간다. 어떤 이가 작가의 지하 작업실 복도에 똥을 싸놓는다. 젊은 여성작가가 스무살 차이가 나는 유명 작가와 유럽으로 불륜 여행을 떠난다. 문창과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울릉도 성인봉에 올랐다가 개고생을 한다. 작가가 돈을 벌기 위해 일간지에 금병매에 관한 연재를 하다가 외설 시비에 휘말린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이가 휴식을 위해 부여로 내려가 명상 훈련을 하다가 세월호 사건과 직면한다. 작가는 그런 사건들을 묘사하면서 주인공들이 불완전하고 상처입고 왜곡된 날것으로의 삶을 '감당'하거나 '담당'하는 것에 관해 말한다.

이야기 곳곳에서 삶의 누추함이 드러나는데 읽고나면 어딘지 모르게 따뜻해지고 힘이 생긴다. 평론가 이경재 교수는 이 작품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주목할 것은 동서양의 많은 미학 이론가들이 예술의 가장 심오한 단계로 꼽은 예사로움과 자연스러움의 미학이 이번 작품집에서도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쓸데없이 어깨에 힘을 주어서 독자들을 피로하게 하는 기괴한 음색과 구성 등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조성기는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와는 구별되는 자연스러움으로 인간과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의 진경을 펼쳐 놓고 있는 것이다."

예사로움과 자연스러움의 미학...읽는 동안 다소 막연해 보였던 이 소설들의 매력이 이렇게 정리되는구나 싶었다. 문학은 초짜나 다름없는지라 각각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건 가당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집을 통해 단편소설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는 건 기록해 두고 싶다. 단편들을 모아 소설집의 기승전결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도. 꽤 흥미로운 독서였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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