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학, 고통에 응답하는 연민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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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학, 고통에 응답하는 연민의 하느님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9.12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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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A.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강독-7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 사진=한상봉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 사진=한상봉

엄청난 고통 앞에서 무너지는 신정론

하느님은 대자대비하시고, 권능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이 세상이 당신의 섭리 안에 있음을 고백하던 순진한 ‘신정론’에 기초한 역사적 낙관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곤두박질쳤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며, 비록 악이 한 때 창궐할 수는 있지만 결국 결정적 패배를 맛보리라는 개선주의 신앙도 의심받았다. 종교는 인간 개개인의 잘잘못을 가리는 심판관이며, 인간의 종교적 회심을 통하여 세상에 평화가 온다는 ‘개별적 신앙’ 역시 무력해졌다. 전쟁은 인간 개개인의 심성과 상관없이 인간성과 세상 자체를 파멸로 이끄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모한 폭력이었다.

그 정점에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있다. 당시 아우슈비츠 등 죽음의 수용소를 운영한 이들은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600만명의 유대인이 나치에게 학살당하고, 그 육신은 불타는 화장터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하느님에 의해 ‘이성적으로 잘 질서 지어진 세계’라는 이상과 하느님 신앙에 균열을 일으키는 ‘지진’이었다.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를 지은 엘리자베스 A. 존슨은 뮌헨 근처의 다하우 수용소에서 경험한 것을 잊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수용소 박물관에는 알베르트 마인스링어라는 수감자가 입었던 헤진 줄무늬 옷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놓인 문서를 보면, 1938년 입소기록에는 그가 몸무게 114킬로그램의 가톨릭인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1945년 기록에는 몸무게 41킬로그램으로 줄었으며, 종교란에는 “없음”(Das Nichts)이라고 적혀 있었다. 존슨은 “그의 육신이 그토록 말라간 만큼 영혼도 그러했고, 선하고 은혜로운 하느님에 대한 신뢰는 다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고 증언했다. 이런 참혹한 상황에서 던져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하느님, 당신은 이 순간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마치 세월호 참사 이후 유족들이 호소했을 법한 참담한 질문이다. “하느님은 그 순간에 숨어있거나 침묵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죽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얼굴을 돌리셨다.

“하느님이 전능하며 완전한 선이라면 왜 그토록 많은 도덕적 악과 고통이 세계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신학자들은 적절히 대답하지 못했다. 하느님이 마음은 있었지만 그러한 나치의 폭력을 멈출 수 없었다면 하느님은 이미 전능하신 분이 아니다. 만일 하느님이 그런 폭력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면 그분은 이미 대자대비하신 분이 아니다.

전통적인 신정론(神正論)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징벌적 고통’을 주신다고 여겼다. 인간을 교화하기 위해, 천국을 향해 가는 인간을 정화하기 위해 하느님은 고통을 허용하신다고 믿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죽어간, 나치에 학살당한 이들은 대부분 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어린이도 100만명이나 된다. 홀로코스트를 두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죄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이후로도 세계적으로 몇 차례의 인종청소가 이어졌다. 크메르루즈 정부의 폴 포트는 캄보디아인의 3분의 1을 킬링필드로 보냈다. 르완다의 후투족은 총과 마체테(날이 넓고 무거운 칼)로 이웃 투치족 80만명을 쓸어버렸다.

 

사회적 고통에 응답하는 정치신학

이런 납득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신학적 답변을 고심했던 세 명의 독일인 신학자가 있었다.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영국군의 전쟁포로가 되어 철조망을 통해 함부르크가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버림받아 십자가에 달린 자의 시각에서 하느님을 말하지 않는 신학은 아무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해줄 말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로테 죌레(Dorothee Soelle)는 전쟁동안 그녀의 가족이 한 유대인 여성을 다락방에 숨겨주었고, 그녀의 오빠는 동부전선에서 죽었다. 그는 전후 죽음의 수용소를 방문하고 “아우슈비츠의 측면에서 보자면, 하느님이 전능하다는 가정은 이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요한 밥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16살에 독일군에 강제 징집되어 연합군의 탱크 포격으로 전멸당한 부대원들을 목격했다. 며칠 전까지 전쟁의 공포와 웃음을 나누었던 동료들의 ‘말없는 비명’을 통해 신앙적 환상에서 깨어났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등을 돌린 채로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묻는 신학 고유의 임무는 더 이상 수행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이 발견한 것이 ‘정치신학’이다. 정치신학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공공영역에서 책임감 있게 유지시키며, 희생자들과 연대를 이루는 ‘연민’을 믿음의 본질이라고 천명했다. 이들이 발견한 고통은 생로병사나 개인적 차원의 실패 등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이런 개인적이고 실존적이며 사적인 고난 너머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부당하게 서로를 향해 가하는 폭력에서 비롯된 끔직한 고통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끝없는 가난과 기아, 노예, 가정폭력, 강간, 살인, 전쟁, 인종학살 등이다. 이런 폭력적 상황은 구체적인 인간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인간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까지 파괴한다.

2009년에 출간된 엄기호의 <아무도 돌보지 마라>는 책처럼, 신자유주의와 사회-정치적 구조악은 남을 돌볼 겨를을 만들지 않는다. 내 생존이 다급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비사회의 물질적 만족을 탐닉하면서 자신의 세계 안에 갇힌 채 타인의 고통을 지워버리려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말한 ‘무관심의 세계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전히 마음의 평화만을 강조하는 이런 부르주아신학에 저항해서, 정치신학은 “부르주아 종교의 개인화에 도전장을 내밀며 평화로운 고요에 머무는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의 악에 저항하고 질문하며 고통당하는 하느님”에 주목한다고 존슨은 말한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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