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과 사랑을 나눈 농사, 김준권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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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과 사랑을 나눈 농사, 김준권 선생님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9.0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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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이다. 성경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 무엇과 목숨을 바꾸겠느냐?’라는 말씀이 있다. 자동차, 텔레비전, 냉장고, 컴퓨터 등이 없어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러나 밥을 먹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 곧 농업이다. ... 농업과 농촌은 인간 생존의 토대인 토양과 생태 환경 등을 보존하고 인간에게 편안하고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휴식처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사회 기여도가 가장 높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농업이야말로 사람이 갖는 수많은 직업 중에서 가장 중요하며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한 번밖에 없는 삶을 바칠만한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던 김준권 선생님이 <생명역동농업 증폭제>(푸른씨앗, 2023)을 펴냈습니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평화나무 농장에서 부인 원혜덕 선생님과 47년째 농사일을 하고, 생명역동농업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 합니다. 얼마 전에 평화나무 농장에서 북토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작에 가 보려 마음을 정해 두었습니다.

 

평화나무농장 김준권 선생님 (사진=한상봉)
평화나무농장 김준권 선생님 (사진=한상봉)

첫 귀농을 기억하며

다시 시골로 들어가게 될지 인생이란 모를 일이어서 ‘첫 귀농’이란 말을 붙여 보았습니다. 도로시 데이와 더불어 가톨릭일꾼운동을 창립했던 피터 모린은 도시에는 ‘환대의 집’을, 시골에는 ‘농경공동체’를 세우자고 꿈꾸었지요. 2016년 겨울 뉴욕에 갔을 때, 도로시 데이의 손녀였던 마샤는 피터 모린 농장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에는 도시생활에 희망을 찾지 못한 몇몇 노숙인들이 농장에 내려와 살고 있었고, 이 농장에서 생산된 유기농 채소들은 다시 환대의 집에 찾아오는 노숙인들을 위해 식탁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환대의 집에서 제공하는 일상적인 메뉴 가운데 하나가 야채스프라 하니, ‘환대를 위한 농사’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귀농한 것은 1999년입니다. <공동선> 잡지 편집장을 그만두고 예천으로 상주로 무주로 귀농지를 찾아 다닐 때가 서른일곱 살쯤 되었을 겁니다. <녹색평론>과 <귀농통문>을 탐독하며, 짐승처럼 산중을 헤메다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자리 잡고, 지금은 돌아가신 허병섭 목사님이 계시던 생태마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붉은 황토만 보아도 집어먹고 싶던 시절입니다. 그때 귀농학교에서 만난 몇몇 어른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창녕 공생농두레 농장에서 천규석 선생님을 만나 뵙고, 그곳에서 처음 김종철 선생님 강의도 들었습니다. 천규석 선생님의 꼬장꼬장한 생태주의가 ‘대구 한 살림’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안동삼현(安東三賢)이라는 이오덕, 전우익,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입니다. 당시 귀농학교에서 밭농사를 가르치던 분이 김준권 선생님입니다.

제가 처음 귀농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이유는 <공동선> 편집자로 있으면서 스트레스와 영양결핍으로 결핵성 늑막염에 걸린 탓이지만, 관념적으로는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무리를 보고 싶은 갈망 때문입니다. 다소 낭만적인 이유로 귀농했는데, 김준권 선생님처럼 대단한 철학적 판단이 서지 않더라도 모든 귀농은 아름답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인생 뭐 있나, 마음 끌리는 대로 살아보는 거지, 하는 생각이 컸던 젊음입니다.

 

생명역동농법으로 가는 길

예전엔 귀농자라면 누구든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녹색평론사, 2011)을 읽었습니다. 이른바 자연농법을 하자는 것이지요. 김준권 선생님도 후쿠오카 선생님이 제시한 4무농법(四無農法), 곧 밭을 갈지 않고, 비료도 주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고, 제초도 하지 않는 농사 이야기를 듣고 황홀한 마음이었다 합니다.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관행농법 만큼 수확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하지만 실제로 후쿠오카의 농장을 견학하면서, 변변한 작물도 없이 풀로 덮혀있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먹을거리 없는 농사라니, 철학은 좋아도 농민들에게 이런 현실은 절망적인 것이지요. 김준권 선생님이 생각하는 좋은 농사란 “먹어도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농산물을 단위면적당 안정적으로 수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덧붙여 생산의 토대인 토양이 비옥하고 생명력 넘치는 상태로 후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리라 말합니다.

생명역동농법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창안한 방법입니다.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등 오장육부가 각각 독립된 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몸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땅과 식물과 동물과 농부가 사슬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나무농장에서는 소를 비롯해 유산양(젖염소), 닭을 사육하고 꿀벌도 친다고 합니다. 토양을 살리고 작물에 영양을 공급하는 환경을 만드는 ‘생명역동농법 증폭제’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소똥과 소뿔을 얻기 위해서도 소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산양에게서 젖을, 닭에서 달걀을, 벌에서 굴을 얻습니다. 그리고 벼, 보리, 밀, 귀리 등 곡식류와 토마토를 비롯해 배추, 무, 고추, 마늘, 양파 등 50여 가지의 작물을 심습니다. 그래야 자급자족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농사, 행성과 달과 지구가 사랑하는

평화나무 농장에서는 슈타이너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마리아 툰(Maria Thun)이 개발한 <파종달력>에 따라서 농작물을 파종하고, 정식하고, 수확합니다. 달과 행성이 각 별자리의 영역으로 이동할 때, 이 별자리에서 보내는 파동을 달이 지구에 반사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달이 백도를 따라 운행할 때 어느 별자리 앞에 위치하는지가 농사에도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달은 양자리나 사수자리에 있을 때 열의 작용을 반사해 열매의 결실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문득 농사란 우주적 사랑의 결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마리아 툰의 <파종달력>에서는 달이 열의 원소를 띤 별자리 앞을 지날 때를 ‘열매의 날’, 빛의 원소를 띤 별자리를 앞을 지날 때를 ‘꽃의 날’, 물의 원소 앞을 지날 때를 ‘잎의 날’, 흙의 원소 앞을 지날 때를 ‘뿌리의 날’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고추나 토마토를 다룰 때는 열매의 날에, 당근이나 감자는 뿌리의 날에 파종하고, 거름을 주고, 돌봅니다. 제가 처음 귀농했을 때도 우리 마을에선 ‘정농회’를 통해 처음 보급되었던 이 달력에 따라 농사를 지었습니다. 중간 중간에 휴경하는 날도 있어서, 그날은 미련없이 손을 놓고 쉴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농장에서 정성스럽게 차려준 된장덮밥을 먹고 나선 농장순례를 하면서, 김준권 선생님은 하신 말씀이 참 쓸쓸했습니다. 지금은 종달새가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종달새는 월동작물인 보리밭에서 번식을 하는데, 보리밭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랍니다. 모든 생명이 서로 의지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니, 김준권 선생님이나 평화나무 농장같이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 이 글은 <경향잡지> 2023년 8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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