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 권력으로 완장 차고 칼춤 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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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 권력으로 완장 차고 칼춤 추는
  • 장진희
  • 승인 2023.09.03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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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희의 시와 산문

하루하루 입에서 쌍욕이 터져나온다. 굥이 당선됐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정말로 이 미친놈들이 어디까지 갈 건지! 비판적 언론은 가짜뉴스, 괴담으로 몰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부치고, 대통령이라는 자는 끊임없이 국민들을 갈라치기 하고 패싸움을 시킨다. 독립군 흉상 철거, 정율성 역사공원 반대...

메카시즘 광풍인가. 한줌도 안 되는 세력들이 칼춤을 추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건드리고 작살내려는지. 아래 글을 딱 15년 전 이맘때 2주에 걸쳐 <한겨레> 왜냐면 코너에 썼었다. 지금 와서 다시 그 같은 상황이 재현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더 망가뜨리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 (굥 당선 직후 꾸었던 꿈은 예지몽이었을 것이다. 굥이 택시를 타고 가다 말고 깨를 할딱 벗고 허겁지겁 내려서 뒤로 뛰어가던 꿈.)

 

[왜냐면] 국어교과서도 좌편향이라고 할텐가 / 장진희
-백범 '나의 소원'을 가르치려면 해방 이후 좌우익 대립을 설명해야 하듯 텍스트 설명만으로 국어 못 가르친다 정지용의 아름다운 시나 기막힌 성장소설 현기영 '순이삼촌'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국어는 가장 통합 교과적인 성격이 강한 교과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우리나라 역사,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지문을 이해시킬 수도, 문학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낼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1 국어(상)에 나오는 김구의 '나의 소원'을 가르칠 때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좌우익 대립 상황에 대한 설명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던 김구의 사상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고요.

그럼에도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한 이승만 정권, 그에 따른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그런 설명 없이 자구 해석만 해서는 제대로 된 수업을 할 수 없음을 교육 현장에 있는 국어 선생님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자연스럽게 그때를 배경으로 한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나 기가 막히게 좋은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국방부에서 불온서적 목록에 올려 우리 젊은이들이 읽지 못하도록 한 책)를 권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요. 명작 <태백산맥>은 또 어떻고요.

지금 대통령을 포함한 조·중·동, 뉴라이트 등 극우 세력들은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극우 시각으로 기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좌편향'으로 몰아 갈아치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권하는 역사 교과서로 공부했을 때 학생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작품은 그 시대상황을 올바로 이해했을 때만 이해가 가능한데 말입니다.

국어 교과의 또 한 영역인 '비문학 독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문사회, 과학기술, 문화예술 등 비문학 독해의 중요 영역의 문제는, 한마디로 '공동선' 찾기 게임과 같은 것입니다. 경쟁, 권력과 힘의 논리, 경제 위주의 사고로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국어를 가르치는 처지에서, 지금의 대통령과 조·중·동, 뉴라이트 세력들은 정말로 지지리도 공부를 못했던 학생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 공부만 제대로 했어도 그렇게까지 무식한 짓은 하지 않을 터인데 ….

하긴 그 세대의 고등학교 교과서는 그야말로 한심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도 반쪽, 주로 친일문학을 했던 사람들 작품이 실려 있었고, 그 아름다운 시를 썼던 정지용 시인의 경우도 단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인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요. 지금 그들 입장에서 국어 교과서를 다시 쓴다면 아마 교과서에 실린 글과 작품 대부분이 잘려나가고, 문학작품은 전체 한국문학의 자산 중 10∼20%만으로 교과서를 만들어야 할 겁니다.

정말이지 모두 모셔다 놓고 고등학교 국어 강의를 한 학기만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면 이제 국어 교과서도 '좌편향'이라고 문제 삼으려 들까요?

[왜냐면] 좌우 동의? 교과서는 좌우 없다 / 장진희

지난 26일치 왜냐면에 '국어교과서도 좌편향이라고 할텐가'라는 글을 썼던 국어 교사다.

대통령은 그날 그 글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교과서 수정 문제는 좌편향을 우편향으로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좌도 우도 동의하는 가운데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또 잘못 짚었어요!' 하는 말이 순간적으로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은 '좌도 우도 동의하는'이 아니라 '좌도 우도 배제하기'를 바란다.

대다수 국민들은 '좌'가 뭔지 '우'가 뭔지 모른다. 아니, '좌'하고도 '우'하고도 상관없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좌'와 '우' 때문에 죄없는 국민들이 수없이 죽어나간 일을 겪은, '좌'도 '우'도 지긋지긋한 세대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

우리 문학사에는 좌·우 대립으로 형제끼리, 어린 시절 동무끼리, 심지어 사돈끼리 싸움을 해야 하는,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 비극을 다룬 작품들이 수도 없이 많다. 또한 '좌' '우' 어느 한쪽에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개인의 비극을 다룬 작품도 많다. 최인훈의 <광장>, 윤흥길의 <장마>, 황순원의 <학>, 오상원의 <모반> ….

소설은 역사책이나 기사나 보고서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이다. 우리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은 소설책도 안 보고 사는가? 청소년 때 보아야 할 필독도서들인데 말이다.

요즘 대통령 하는 일을 보면 윤흥길의 <완장>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작은 권력을 손에 넣고서 되나 안 되나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그것을 휘두르는 소인배의 작태를 풍자한 소설이다.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왜 역사교과서 문제를 대통령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기업하는 사람들이 들먹이는지를.

대통령이 '완장'의 주인공과 같은 소인배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냥 놔두시라. 역사교과서는 역사를 오랫동안 공부해 온 사람들의 논의에 맡겨둬야 한다. 학문분야와 그 오랜 성과를 수혈받는 학생들의 사고가 왜곡되지 않도록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구실이 아닌가.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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