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찌무라 간조마저 어쩔 수 없었던 일본의 국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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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마저 어쩔 수 없었던 일본의 국가 종교
  • 최태선
  • 승인 2023.09.0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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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최근 나는 윤석열과 그의 정부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자체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얼버무리기의 명수이다. 나는 그런 그를 대통령 후보 시절에 확인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런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지금도 그의 지지율이 30%가 넘는다. 나는 그를 지지하지 않지만 나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다. 결국 국민의 의식이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5년 동안 인내하기로 했지만 가끔씩은 참지 못하고 이런 글을 쓰게 된다.

윤은 유학을 간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에 일본에 산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일본은 아름답고 질서 있는 나라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무의식에 아로새겨져 세계관의 일부가 된다. 그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물론 미래를 위한 파트너가 되어야 함을 시도 때도 없이 강조한다. 심지어 그는 그것을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되풀이했다. 참으로 난감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작은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의 경축사를 듣고 있는 독립유공자 노인들이 박수를 치지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꼬장꼬장한 그 모습이 나는 좋았다.

나는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어릴 적 한국의 분위기는 일본에 대한 저항감으로 넘쳤다. 그래서 일본은 일본이 아니라 왜국이었고, 일본 사람들은 일본놈이거나 왜놈들이었다. 지금도 나는 일본 놈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인가?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일본 놈들을 윤처럼 생각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을 협조하지 않거나 미래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억하겠다는 것이다. 일제 치하의 그들의 만행과 수탈,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하고 유린했던 사실들을 복기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 다시 국가가 우상인 일본에게 과거에 당했던 피해를 다시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간토대지진과 한국인 학살 사건이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관동지방 남부에서 발생했다. 그 규모는 M 7.9, 진원은 사가미만(相模灣) 서북부(동경 139.3도, 북위 35.2도)로 계측되었다. 지진은 오다하라(小田原)와 네부카와(根府川) 방면이 가장 격렬했지만, 도쿄와 요코하마는 지진에 의한 화재가 겹쳐 최대 피해를 당했다. 도쿄는 3일 아침까지 화재가 계속되었다. 지진에 의한 피해는 사망자 99,331명, 부상자 103,733명, 행방불명 43,746명, 가옥 전파 128,266호, 가옥 반파 126,233호, 소실 가옥 447, 128호, 유실 가옥 868호이며 이재민은 약 340만 명에 달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지정해, 이날이 가까워지면 언론계와 행정기관이 각 가정에 피난 용구, 긴급 식량의 준비와 점검을 홍보하고, 재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날을 자연재해의 공포를 상기하는 날로만 지낼 수 없다. 이날은 지진과 화재의 공포보다 벌건 대낮에 공공연한 살인으로 충격을 준 날이었다. 지진과 화재에 의한 극심한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어디선가 흘러나와 계엄령이 발포되었으며, 이후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조선인 대량학살이 자행된 인재의 날이었다.(기사에서 인용)

그때 학살된 조선인의 수가 육천 명 정도였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조사조차 이루어진 적이 없으니 정확한 숫자가 파악될 리 만무이다. 그리고 이 사실,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한 일본인들이 이 사건을 호도하거나 물타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선의 후예인 우리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일본인의 잠재의식 속에는 조선에 대한 역사적인 열등감과 우월감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 그들은 한국인들을 결코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의 신은 국가이다. 국가가 그들의 가장 절대적인 신이다. 신사는 그것을 말하고 있고, 지금도 그들은 신사에 가서 그들의 신인 국가를 예배한다. 그리고 그들은 죽어 국가의 신들이 된다.

이 사실은 일본인들의 대 전제이다. 얼마 전 나는 일본의 대표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우지무라 간조와 가가와 도요히코도 관동대지진에 대한 언급이나 입장표명이 없었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나는 우찌무라 간조를 좋아한다. 그는 매우 급진적인 사고를 지녔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미국을 보고 미국은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니라 돈을 숭배하는 나라라는 정확한 지적을 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한국에도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그도 정작 자신의 나라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언급이 전해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누군가의 변호를 듣고 싶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더더욱 좋아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그의 헌신적인 사랑을 존경한다. 그는 그의 전 재산을 바쳐 협동조합 운동에 헌신했다. 그리스도교적인 가치관의 실천이었다. 그의 대만에서의 삶 역시 존경할만한 것이었다. 그의 헌신을 통해 많은 패망한 일본인들이 대만에서 일본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우찌무라 간조와 마찬가지로 관동대지진이라는 야만적인 일본인들의 행위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둘의 뇌리 속에 종교로서의 국가가 내재되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에 대해 침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종교에 대해 관대하다. 그들이 섬기는 신의 수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오래 전 내 기억에 의하면 그들이 섬기는 신의 수가 팔십만이 넘는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도 그 신들 중에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우찌무라 간조나 가가와 도효히코도 다른 일본인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정말 관동대지진에 대해 침묵했다면 그런 일본인들의 국가 종교가 그들에게도 내재되어 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기념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금년은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지 꼭 백 년이 되는 해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마치 로마의 박해를 받아 죽어간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가장 잔인하고, 가장 수치스럽게 죽어간 조선인들의 영령을 기억하고 잠시라도 애도의 표현으로 묵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원수 사랑을 잠시 잊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유대인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한국인들도 일본인들의 관동대학살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나는 그것이 진정한 원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본인들을 또 다시 대학살의 원흉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여담이지만 나는 일본인 선교사에게 후원금을 몇 십 년 째 보내고 있다. 일본에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후원금을 보내고 있는 선교사는 우리 교회에서 함께 동역하던 목사님 부부이다. 나는 이분들이 일본 선교사로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싫다고 해서 일본을 제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다. 일본도 거기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어쩌면 일본에 대한 내 미운 마음을 그것으로 지우고 원수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인의 대 전제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 모르고 선택했겠지만 윤과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우리 국민의 어처구니없는 대실수이다. 경계심을 늦추는 순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같은 사건을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은 대통령으로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일본을 위한 정책을 이어갈 것이다. 거기에 저항하여, 더 이상 우리나라가 망가지지 않도록 다음 총선에 정신을 차리는 것이 우선이다. 제발, 그리고 바짝!!

우찌무라 간조나 가가와 도요히코도 어쩔 수 없었던 일본의 국가 종교를 간과하지 말자. 개인적으로 친절하고, 질서 있는 일본이라는 사실에 속아 그들의 국가가 그들의 절대적인 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간토대지진에 희생 당한 조선인 영령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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