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욕망, 가능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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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욕망, 가능한 말일까
  • 김광남
  • 승인 2023.08.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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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 섹스 얘기가 자주 나온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여러 상대와 수시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섹스를 한다. 카페나 전시회에서 눈이 마주친 이성과, 일로 만난 파트너와, 여동생이나 다름없었던 처제와, 친구의 애인과, 낯선 유부녀와, 유부남과, 때로는 친구와 함께 2:1로... 그들에게 섹스는 사람들이 만나서 악수를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잦고 자연스럽다. 아무도, 아무에게도, 순결이나 정절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저자가 너무 잦게 그리고 마치 보도기사를 쓰듯 묘사해서일까? 그들의 자유분방한 섹스 이야기가 전혀 자극적이지 않았다(어쩌면 나의 성적 에너지가 다해서일 수도 있겠다). 다만 궁금했다. 도대체 저들(대부분 파리지앵들)은 일생동안 몇 명의 파트너와 섹스를 할까? 등장인물 중 하나는 어느 식당에 앉아 그동안 자신과 섹스를 했던 여자들의 이름을 적는데, 다 적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녀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소설 첫머리에서 쿤데라는 개별적 인간들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몸짓'이 훨씬 더 개인적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사람 수에 비해 몸짓 수가 비교도 안 될 만치 적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람은 많되 몸짓은 별로 없다. 몸짓은 한 개인의 소유로 간주될 수도 없고, 그의 창조물로 간주될 수도 없으며, 그의 도구로 간주될 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이다. 말하자면, 바로 몸짓들이 우리를 사용하며, 우리는 그들의 도구요, 꼭두각시 인형이요, 그들의 화신인 것이다."

쿤데라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구의 총수를 8백억 명이라고 전한다. 그 8백억 명 모두가 독특한 개성과 존엄을 지닌 인간이었을까? 그보다는 인간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지닌 몇 가지 특징(몸짓)의 수많은 변이들 아니었을까?

이를 섹스라는 항목에 대입하면, 역사상 세상의 모든 인류가 행해 왔던 그리고 지금도 행하고 있는 섹스(세계 최고의 미녀나 미남과의 섹스를 포함해)는 개별적 의미를 지니기보다 인간의 특징적 몸짓의 변이에 불과한 것 아닐까?

또 하나, 인간이 섹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자주 행하는 말/글 역시 그런 것 아닐까? 역사상 인간 사회에서 쏟아진 무수히 많은 말/글은 결국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뜻을 펼치고, 자기를 사람들 가운데 아로새기기 위한 인간의 몸짓의 여러 변이들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인간의 섹스와 말/글은 모두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들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도 세상의 모든 침실과 성매매업소와 그늘진 구석에서 행해지는 모든 섹스와, 페이스북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공간에서 행해지는 공식적이고 의례적이고 사적이고 은밀한 모든 말/글은 결국 인간의 욕망일 뿐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개별 인간을 넘어 인간 공동체와 역사 속에 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결국, 불멸하는 것은 특정한 인간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것의 변이 역할을 하는 인간의 욕망/몸짓일 뿐이다.

이런 결론이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폄하일까? 오히려 자기 존재에 대한 겸허한 인식을 통해 인간 공동체와 역사에 기여하게 하지는 않을까?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내멋대로 읽으며 가졌던 내멋대로의 결론이었다. 물론 이런 결론조차 그 작품의 작가가 욕망했던 것의 하찮은 변이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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