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교수님, 사람의 향기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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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교수님, 사람의 향기가 나는
  • 김선주
  • 승인 2023.07.3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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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사진=김선주
사진=김선주

사람들에겐 패션이 있고 사람에겐 향기가 있습니다. '대중'이라 부르는 무리의 사람들은 자기 개성보다 다른 이들의 요구에 맞추어 유행하는 패션을 따릅니다. 이 무리들을 '사람들'이라 합니다. 하지만 대중의 요구보다 진실과 존재 의미를 중요시하는 '사람'에겐 그만의 고유한 냄새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따르는 패션은 이미지로 가치를 평가합니다. 이미지는 시각이 지배하는 외적 현상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느껴지는 향기는 마음과 몸으로 온전히 다가갈 때 맡을 수 있는 내적 의미입니다.

오늘 광화문에서 이정배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일개 서생의 졸문에 늘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이번에 출간한 졸저 <기독교인은 왜 악을 선택하는가>에 추천사를 써 주신 것에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만나뵙기를 청하였는데, 바쁘신 시간인데도 마다하지 않고 응해 주셨습니다.

교수님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계셨습니다. 처음 뵙는데도 나는 교수님을 대번에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 다가가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스마트폰 액정을 빠른 속도로 두드리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바쁘게 문자를 보내시는 게지요. 그 문자를 끝내기를 기다리며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았습니다.

교수님이 타이핑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저를 알아보시고 먼저 달려오셨습니다. 당신이 음료수를 주문하겠다고 저를 주저 앉히고 카운터로 달려가셨습니다. 그 동작이 얼마나 날렵한지요. 어른이 베푸는 마음을 겸손하게 받는 것도 가끔은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문자가 많은지 한참 걸렸습니다.

홀로 자리에 앉아 음료를 기다리며 교수님이 테이블 위에 놓고 간 작은 배낭과 그 위의 모자를 응시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옹골지게 결이 진 통나무가 느껴졌습니다. 밖으로 멋 내지 않고 안으로 단단하게 결이 진 학자의 품성이 느껴졌습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화단의 초록 빛이 베이지 색 모자에 투영되었습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을 향한 진정성이 느껴질 때 그곳에서 사람의 향기가 납니다.

헤어지는 길에 교수님께서 깊은 포옹을 해 주시는데, 단단한 통나무와 초록 가지의 향기가 났습니다. 진실을 향해 수직으로 곧게 선 금강송처럼 건강하고 싱싱한 솔가지 냄새가 났습니다. 그것은 또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사람의 향기'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나는 잠시 생각합니다. 나에게 사람의 향기가 있는가? 나이 오십 넘어서도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패션을 따라 살아온 것 아닐까? 나는 패션을 좇아 살아왔는가, 아니면 사람의 향기를 좇아 살아왔는가.

나의 영역을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사람, 타자의 처지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 타자를 스스럼 없이 포옹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서 사람의 향기가 난다는 것을 오늘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의 향기가 절실한 이 시대에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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