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심는다, 추수 때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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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심는다, 추수 때를 그리며
  • 장진희
  • 승인 2023.06.20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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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희의 시와 산문
사진은 무경운농법 동지인 이광수 씨가 찍었다.

드디어 논에 모가 꼽혔다. 무경운농법 하는 넷이서 어울려서 몇 날 며칠 부지런을 떨었다.

볍씨 넣어 모판 만들고 그중 형편이 되는 이가 물관리 하고 한달 만에 모내기를 하자니, 시행착오로 모뿌리가 엉킨 포트모 모판에서 이틀을 꼬박 뿌리를 갈라내고 무경운 이앙 시연 하고 죽곡면, 목사동면, 겸면, 옥과면 네 곳에 모판 나르고 오늘 새벽 5시부터 우리 논을 시작으로 저녁 7시까지 모내기를 마쳤다. 마지막에 겸면의 여성 청년 귀농인 논 세 마지기도 해주고 왔다.

지쳐서 헤롱헤롱 하던 몸이 여성 청년 농부와 겸면의 다른 청년들 농사 짓는 모습, 그들을 도우러 온 다른 남녀 청년들 때문에 정신이 번쩍 나고 힘이 솟았다.

돈도 안 되는 농사. 힘든 농사. 그 일을, 그 삶을 살겠다는 청년들. 세상이 아직 다 죽지 않았으니 나도 힘을 내야지. 오늘 모내기 해준 여성청년이 날 보자 몹시 반겼다. 작년 추수 모임 때 '빈 논'이라는 시를 읊고 난 뒤 원고를 그 친구한테 주었는데, 모내기를 앞두고 아침에 그 시를 읽었단다. 그런데 이앙기만 온 게 아니라 네 사람이 오고, 그 시를 써준 사람이 왔다고 좋아했다. 

논에 모가 꼽혔으니 어짜든지 나락이 맺고 쌀을 얻을 수 있겠지. 내 영혼도 살이 찌겠지. 여성 청년이 아침에 읽었다는 시를 나도 다시 읽어본다.

추수 때를 그리며.

<빈 논>

동구의 나락논이
한나절 만에 휑 비어버렸다
쎄한 나락 냄새만 남기고

아깝다

한 포기 한 포기
사각사각 낫으로 베어
사나흘 밤낮
맑은 별빛
따사로운 햇살
하늬바람 속
논두렁에 널었다가

또 사나흘
까실까실 볏단
한 줌 한 줌 쥐어서
넌출넌출 나락 다발
맨손으로 받쳐서
홀태로 훑을 적에

쌩쌩하고 꼬순 나락 냄새
코를 뚫고
머릿속을 뚫어
정신이 말개졌거늘

그 이레 동안
온몸에
햇살이 쌓이고
바람이 배고

차근차근
나락이랑
논바닥에 누렇게 드러누웠거늘

이 푸른 하늘 아래
이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 있을까
이보다 더 행복한 날 있을까

비싼 농기계가 없는 소농이나 자급자족농에게 논을 갈지 않고 벼농사를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모내기 한 달 전에 논에 물을 대놓고 우렁이를 풀어 풀이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 겨울 풀은 노랗게 망해서 힘이 없다. 여영 안 되겠는 풀은 논에 들어가서 좀 뽑아주었다. 땅을 갈지 않으면 땅이 애써 모아 묻어둔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단다. 지구를 아낄 수 있단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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