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습작,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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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습작, 빈센트 반 고흐
  • 심광섭
  • 승인 2023.06.04 2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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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섭의 예술과 신학
꽃 핀 과수원과 아를의 풍경, 1889
꽃 핀 과수원과 아를의 풍경, 1889

그리스도교에서는 자연세계를 하느님의 예술작품(Kunstwerk Gottes)이라고도 말한다. 창세기 1장에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보고 그때마다 “좋았다(아름답다)”고 말씀한다. 하느님의 심미감이다. 그것은 탄성이요 감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때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작업중이다. 그걸 다 이룬 것은 그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요한복음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요한 19,30)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 예수의 삶이 십자가상에서 끝에 이르렀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창조의 작품, 창조의 역사가 예수에게서 다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더 적합하리라 생각된다. 이 위대한 역사적 작업은 창조사이자 구원사이다. 하느님이 좋았다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완성작이 아니라 미완성작, 말하자면 습작(study)인 셈이다. 그 습작을 예수께서 완성작(finished work)으로 이루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 이루셨는가? 무엇을 다 이루셨는가?,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판박이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세상의 현실은 과거도 현재도 전혀 그렇지 않고, 그리고 미래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태양의 화가 고흐, 밝은 색조의 꽃이 만발한 과수원 등이 후기 작품에 나타나지만, 세상에 대한 그의 생각은 회의적이고 밝은 구석이 없다. 아를에서 1888년 5월 20일 이후에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부여된 ‘완전성’이라는 속성 때문에 그가 창조한 세상도 완전하리라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역사상 믿음이 제일 좋은 라이프니츠만이 “이 세상이 하느님이 만든 것 중에서 최선의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고흐가 쓴 편지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고 하느님에 대하여 판단 내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느낀다. 그건 제대로 되지 않은 습작에 불과하다. 저렇게 잘못된 습작을 두고 너라고 어떻게 할 수 있겠니? 이 세상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세상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분명 신이 아주 기분 나쁜 날, 그가 뭐하는지를 잘 모를 때, 또는 제정신이 아닐 때, 급하게 한 대 얻어맞아서 나온 것일 거야”

신에 대한 풍자가 적나라하다. 못난 신, 정신 나간 신, 얻어맞은 신. 잘못된 습작은 보상되어야 한다. 우리는 창조적인 손을 보아야 한다. 이것보다 나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작품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고흐는 신에게 당당히 요구한다. “우리는 그의 손으로 만들어낸 다른 작품을 보아야 할 것이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아 서글퍼지기도 하고,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 그림 작업비 등을 청구해야 하는 현실이 늘 불만스러워 회한에 차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아를의 나무와 꽃, 밀밭을 바라보길 좋아하고 그 속에 보이는 갖가지 색채를 사랑하고 자기 영혼에 받아들여 표현했다. 그의 정열은 언제나 불안, 혼돈, 초조를 동반했지만 동시에 안식과 평정에 대한 애타는 갈구를 품고 있었다.

고흐의 삶은 열정적이고 감동적이었지만 끊임없이 괴롭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우울증으로 매섭게 고통스럽고 모질게 비극적이다. 실패한 인간, 실패한 예술가, 심지어 이런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총을 쏘는 일에도 실패한 고흐, 그의 망쳐버린 생의 습작은 망쳐버린 하느님의 못난 작품을 닮았다. 그래서 하느님의 창조는 습작이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고흐에게는 완전한 것으로 변화시킬 만한 보편 논리나 불변의 논리가 전혀 없었다.

고흐의 역동적 붓질, 근대과학적 세계관이 2차원의 표면으로 만들어 버린 자연을 역동적인 삼차원의 생생한 힘의 관계로 심화시킨 그의 작품들. 고흐에게 공간은 역동적인 유기체가 되고 그 공간 안에서 사물은 그 물질적 존재성을 잃게 되어 사라지고 빛의 상징성만이 남는다. 충만한 운동, 대상에의 감정이입을 통한 물아의 일치 체험, 황홀경에 이르는 그의 작품, 밀밭과 나무들의 소용돌이로 표현되는 운동감, 소용돌이는 연속적 파동의 형태이며 파동은 생명이다.

생명체의 소용돌이는 확장과 상승을 동시에 꾀하는 성장방식이며 파동의 일종이다. 이에 더해 불길, 물결의 일렁거림이 그의 그림에 가득하다. 태풍의 중심처럼 어마어마하게 침잠된 고흐의 예술신은 소용돌이처럼 맹렬하게 돌리고 돌아 자신의 신을 밝게 불살라(神明) 세상 만물에 생명감을 불어넣는 창조력을 철철 넘치게 발휘한다.

하느님이 창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한 희망, 거듭 깨어진 현실을 마지막까지 부둥켜 안고 살아간 고흐의 십자가, 습작밖에 그릴 수 없었던 얻어맞아 상처 입은 신을 호흡하면서 고흐의 자연은 부활하여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심광섭
감리교신학대학 및 대학원 졸업(1985)
독일 베텔신학대학(Kirchliche Hochschule Bethel) 신학박사(1991)
(사)한국영성예술협회_예술목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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