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사랑, 신비주의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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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사랑, 신비주의가 되기 위하여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3.2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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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평전: 나는 바람, 그대는 불], 안네마리 쉼멜, 늘봄, 2014

도로테 죌레의 <신비와 저항>이란 책을 상세히 읽은 적이 있지요. 강의 준비 때문이지요. 그냥 혼자 읽을 때는 몰랐지만, 강의를 하고자 하니, 죌레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명징하게 내가 먼저 알아들어야 했습니다. 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책을 독해하려니, 처음부터 난감했습니다. 번역이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저도 모를 이야기를 횡설수설 하고 있다는 느낌만 받았습니다. 주어와 서술어, 목적어가 뒤엉킨 비문(非文)투성이었습니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볼 때 선명하던 산세가 느껴지지만, 정작 산에 들어가 길을 잃은 느낌입니다. 결국 키워드 중심으로, 관련자료를 뒤지며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죌레가 이끄는 길을 따라 걷되, 이 길이 맞는지 낱낱이 디딤돌을 두드리며 걷는 형국입니다.

독일 신학자였던 도로테 죌레는 <신비와 저항>에서, 우리 모두가 신비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신비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가서 닿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건 몇 권의 책을 통해서, 지성의 빛을 통해서 걷는 길이 아니라, 영적 체험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길이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느님 체험일 텐데, 쉬운 말로 옮기자면, “사랑하면서 사랑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버려야 가능한 길”입니다. 합리적 이성이 힘을 잃는 순간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하느님의 일부가 되어야 가능한 길입니다. 그 엄청난 영적 여정은 교회의 탁덕들과 학자들, 성직자와 수도자에게만 배타적으로 독점되는 길이 아닙니다. 신비주의로 가는 길에선, “지금 사랑하는 자”만이 우선권을 갖습니다. 내가 공부한 신학이 걸림돌이 되고, 내가 믿는 신조와 교리가 장애가 되는 길입니다. 모든 규정과 견해를 넘어서 사랑해야 닿는 길입니다.

 

사랑에 빠진 자, 루미

<신비와 저항>에서, 유독 많이 언급되는 분은 역설적이게도 이슬람 수피 마울라나 잘랄루딘 루미(Jalal Al-Din Rumi, 1207-1273)입니다. 수피(sufi)는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소유하는” 가난한 이슬람 신비주의자입니다. 금욕주의자들의 털옷(suf)을 입었다는 뜻이지요. 이분들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빚어지는 사랑의 신비를 숙고했던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루미는 예수시대의 이코니온(지금의 튀르키예 콘야)에서 활동했던 수피인데, 그곳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지역입니다. 인근의 카파도키아에는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바실리우스 등 교부들이 있었고, 괴레메의 동굴수도원은 많은 그리스도교 수도자들이 생활했던 곳입니다. 루미 당시에도 이런 수도자들이 많았고, 그런 탓인지, 루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맞닿은 부분이 많습니다. 어찌보면, 루미의 하느님을 잘 살피면 예수님이 ‘아빠’(abba)라고 불렀던 그분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도로테 죌레는 그렇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잘랄루딘 루미의 극적인 경험은 한 사람에게서 왔습니다. 타브리즈의 탁발 수피 샴스엣딘(shams of Tabriz)입니다. 루미는 그이를 “믿음의 태양”이라 불렀습니다. 루미는 샴스엣딘을 만나 6개월 동안 낮이든 밤이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 것도 마시지 않고 천막 속에 앉아 있었다 합니다.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불꽃이 가슴 속으로 뛰어든 다음부터그 열기가 다른 모든 것을 삼켜버렸네.나는 책과 오성을 집어치우고시와 노래와 가곡을 배웠네.

나는 금욕주의자였건만, 그대를 만난 뒤부터 노래를 부르고들뜬 축제와 포도주를 찾아다녔네.내가 양탄자에 앉아 차분히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대가이제는 나를 아이처럼 뛰어 놀게 하는구려.”

루미의 아들인 술탄 왈라드는 두 신비가의 만남을 “그들은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누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누가 사랑받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주고받는 사랑을 구분할 수 없는 것이지요. 루미가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목마른 사람만 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오. 물도 목마른 사람을 찾고 있다오.”

이 글은 마치 예수님께서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3)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가 하나입니다. 우리들이 하느님을 갈망하는 것처럼, <침묵 위에 떠오르는 소리>(분도, 1977)에서 에르네스토 카르데날은 “하느님 역시 우리를 태초부터 갈망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그리워하셨다는 진언은 세상의 축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천상적 사랑의 지상적 은유

루미는 샴스엣딘과 불타는 사랑을 경험하고서 시인이 되었답니다. 루미는 이승에서 하는 사랑은 천상적 사랑의 은유이며, 준비단계라고 말합니다. 여자아이에게 인형을 주어 어머니의 역할을 준비하게 하고, 사내아이에게 목검을 주어 싸우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처럼, 지상의 사랑은 천상의 사랑을 미리 맛보게 합니다. 그 거룩한 사랑으로 가려면, 피를 흘려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습니다.

“낚시꾼들은 큰 물고기를 단번에 잡아당기지 않는다. 낚싯바늘이 물고기의 목에 걸리면, 낚시꾼은 물고기가 (피를 흘려) 힘이 빠지도록 낚싯줄을 조금씩 잡아당긴다. 그런 다음 그는 몰고기의 힘이 약해질 때까지 낚싯줄을 풀어주고 잡아당기기를 반복한다. 사랑의 낚싯바늘이 사람의 목구멍에 걸리면, 하느님은 그 사람 속에 있던 악한 기운과 쓸데없는 혈기가 다 빠져나가도록 낚싯줄을 천천히 잡아당긴다. 실로 하느님은 눌러 으깨기도 하시고, 풀어주기도 하신다. -하느님 외에는 신이 없다”(Sura 2/247)

루미는 그 거룩한 사랑이 창조의 동기라고 말합니다.

“하늘이 사랑을 하지 않았다면 그 가슴팍은 맑지 못했을 것이고태양이 사랑을 하지 않았다면태양은 밝은 빛을 잃었을 것이며, 땅과 산이 사랑을 하지 않았다면 그 가슴팍에서 푸른 싹이 돋지 못했을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은 “하느님을 연모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지금 행복한 이유는 그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고통 속에서도 기쁨이 차오르는 이유는 그분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자고 먹고 일하고 울고 웃고 말하는 것은 그분 때문입니다. 나를 지금 움직이게 하는 모든 힘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하물며 도둑질을 하더라도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게으른 사람을 곧추세우고, 사랑은 잠든 영혼을 깨웁니다. 고단해도 먼 길을 가고, 심정 상해서 모욕을 참아 넘깁니다. 루미가 사탕수수에게 “너는 누구 덕에 그렇게 단 것이냐?” 하고 물으면, 사탕수수는 루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리라 예감합니다. “저는 임의 숨결을 맛보았어요.”

이런 시어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분이 만해 한용운입니다. 그이에게 임은 모든 것이고, 삶의 의미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임이 곁을 떠난 듯 침묵할 때에도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한용운은 <복종>이란 시에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라면서, 임에게 오롯이 제 자유를 반납할 것을 결심합니다.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신앙이란 사랑에 빠지는 길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경험한 황홀경을 끝내 잊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부를 때,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 “(주)님”이라 발음합니다. 나를 온통 차지하실 분은 당신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리니, 신앙이란 연모의 마음이며, 영원한 연인을 찾아나서는 여정입니다. 가톨릭일꾼운동을 시작하면서, 기도문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이 ‘가톨릭일꾼의 기도’ 첫 소절은 이렇습니다.

“사랑하올 주님,그 사랑 안에서 오늘도 내일도 걷게 하시고그 사랑 안에서 세상과 이웃을 만나게 하소서.제 일상의 하나까지 당신께 봉헌하오니그 일상 안에서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유튜브 강의: 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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