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음식을 찾아 마트를 돌며 탁발을 생각한다
상태바
값싼 음식을 찾아 마트를 돌며 탁발을 생각한다
  • 최태선
  • 승인 2023.03.28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선 칼럼

나는 걷는 것 대신 마트를 들른다. 서너 곳의 마트와 서너 곳의 과일과 야채 파는 곳,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떡집을 모두 돌면 대략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얼마나 걷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통해 우리집의 먹거리를 조달한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필요한 물건을 검색하여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하루면 문 앞까지 배달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구세대임을 절감하면서 그렇게 사는 내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미련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는 방식을 버리지 않는다. 때론 아이들의 방식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오히려 아이들 방식이 더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이젠 그것을 구분하여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내가 마트를 도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물건을 아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 노력은 “음식 정의”라는 아직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하느님의 정의 가운데 하나인 신념과 맞닿아 있다.

“가난의 한 종류는 “‘먹을 음식이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자 먹는 것이다.”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오정현 목사님이다. 그는 주일에 출장뷔페를 불러 혼자 식사를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사치를 보고 분노한다. 혼자만의 식사를 위해 출장 뷔페를 차린다는 것은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먹는 것이 가난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이들을 본 적은 없다. 이것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가능한 사고이다.

생각해보면 참 중요한 사고이다. 나는 어렸을 적 이모네 가는 것이 좋았다. 이모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곱 아이들이 있었다. 나이는 우리 형제들이 조금 더 많았지만 막내의 경우는 나이가 비슷했다. 내가 이모네 가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는 식사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이모네는 겨우내 반찬이 똑같았다. 커다란 냄비에 김치찌개가 있고 기름 바르지 않고 구운 파래 김과 참기름이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은 외간장이 전부였다. 그런데 할머니까지 계시던 그곳에서 김에 밥을 싸서 김치찌개와 함께 먹던 그 맛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씩 김치찌개를 끓인 후 곱창 김을 구워 참기름을 듬뿍 넣은 간장과 계란말이와 함께 식사를 하지만 어릴 때의 그 맛을 재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위의 내용을 보는 순간 그것이 바로 가난의 부요함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모네는 사실 우리 집보다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이모네 집 식사가 그렇게 맛있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가난이 줄 수 있는 화목함과 더불어 우리가 영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진정한 부요함 때문이었다. 식구가 함께 둘러앉아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부자도 누리지 못하는 풍요함이다. 이제 이모네 형제들과 우리 형제들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셨지만 나는 그때 이모네 집 식사의 풍요로움을 이렇게 내 기억 속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그 오랜 시간 전에 이미 하느님은 내게 진정한 영적 부요함이 무엇인지를 심어주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가난 속에서 다시 그 부요함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식구들이 함께 식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번역을 하다보면 신조어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 일은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신조어에는 시대를 반영하는 시대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런데 번역하는 나는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 문화에는 그런 단어가 없다. 길게 서술형으로 설명하는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나라의 상황을 전하는 것에는 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그런 단어들이 나왔다.

“freegans”과 “opportunivores”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freegans”는 “if it is free, we’ll eat it.” 그러니까 내가 프리건이라고 그냥 음역만 한 이 단어의 뜻은 공짜라면 무조건 먹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 민족에게도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지만 옛날 이야기이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비싸면 무조건 먹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opportunivores”의 경우는 더 난감했다. 다행히 이 단어는 사전에 나와 있었다. “주변에서 얻거나 찾은 음식 (특히 버려진 음식)을 먹는 사람”이다. 나는 가장 먼저 노숙자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 단어는 노숙자 선생님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물론 가난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이다.

다행히 내 경우는 이런 일에도 익숙해져 있다. 나는 오래도록 고아원을 드나들었다. 70년대에는 없던 일이지만 80년대인지 90년대인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푸드뱅크라는 것이 생겨서 그것을 통해 들어온 먹거리들을 나도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렇게 들어온 것들 중에 좋은 것들을 특별히 구별해두었다 내게 주기도 한다.

그런데 아포튜니보어들은 푸드뱅크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음식물쓰레기 수거통에 버린 것들 가운데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먹는다. 그들은 그곳에서 놀라운 보상금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이 일은 영적 수행으로 구걸하고 남들이 원하지 않는 음식으로 생계를 꾸렸던 중세 탁발 수도회의 전통과 맞닿아있다. 나는 늘 목사가 되는 과정에 탁발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탁발의 영적 의미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똑같은 것을 먹고 마셔야 하는 하느님 백성이 되려면 이런 영적 수행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님이 되는 과정에도 있고, 신부가 되는 과정에도 있고, 심지어는 선교단체의 간사가 되는 과정에도 있는 이 일이 목사가 되는 과정에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 오정현 목사님과 같은 목사님들이 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일들의 의미를 지워가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밥알 하나에도 온 우주가 들어있다는 경외심이야말로 창조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와 마찬가지로 개인 한 사람의 노력은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한 개인의 노력이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믿어야 하는 것처럼 음식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절약한 음식 하나와 내가 구축한 음식에 대한 경외심이 단박에 음식 정의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존재는 곧 미래의 가능성이며 그러한 인간의 노력에 하느님의 능력이 더해지면 음식 정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처럼 살게 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마트를 돌면서 발견한 싼 것이 그날의 메뉴가 되고, 즉시 먹어야 하는 과일이 그날의 디저트가 되는 이 삶이 단순히 가난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음식 정의에 참여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늘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나누어 먹을 사람이 없는 것을 가장 아쉬워했는데 그것 역시 영적인 부요함에 대한 갈망이었다는 사실 역시 내겐 너무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음식은 가장 중요한 예배일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영적 예배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하느님의 정의 가운데 음식 정의는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금식에 대한 새로운 시대적 정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음식 정의로 나를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