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도 아름다운, 광산촌 화가 황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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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아름다운, 광산촌 화가 황재형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2.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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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십수 년 전에 인터넷언론사를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상본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이때 도판으로 사용한 것은 조세희의 산문집 <침묵의 뿌리>(열화당, 1985) 표지에 박혀 있는 어느 소녀의 사진이었습니다. 입을 다물고 애잔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탄광촌 어느 여자아이였습니다. 명함사진처럼 반듯한 모습이 더욱 슬픔을 자아내는 사진입니다. 여기에 “사랑하라, 희망없이”라는 캡션을 달아주었습니다.

 

침묵의 뿌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문학과자성사, 1978)으로 유명한 조세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침묵의 뿌리>를 서가에서 다시 찾아봅니다. 도시빈민에서 광부들의 삶으로 시선을 옮기신 조세희 선생님은 사북 어린이들이 쓴 등사판 글모음집에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삼학년 때 밥을 안 싸 가지고 갔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밥이 없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아무나 때리고 싶었다.”(5학년 김상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는데 돌이 떨어졌다. 어머니가 밤에 갔다. 내 동생이 울었다. 그래서 내가 깜작 놀라 깨어났다. 그래서 내 동생을 울지 말라고 했다.”(1학년 정미현)라고 했습니다. <침묵의 뿌리>에는 100여 점의 사진이 담겨 있는데, 조세희 선생님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책에는 사진이 들어 있다. ‘슬프고도 겁에 질린 시대에 적합한’ 것이 사진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지만, 인화를 끝내 공장으로 넘긴 다음에 접한 이 말에 나의 서툰 작업을 연결지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 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참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그분이 책을 헌정한 사람은 먼저 ‘광부들’일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고난받는 그리스도를 떠올렸던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보리나주 광산촌에서 선교사로 일하면서, 그들처럼 갱도에 들어가고, 그들처럼 숯검정 얼굴로 광부들의 움막에서 예배를 보았다는 고흐입니다. 세상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던 그들을 그려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싶었던 화가가 고흐입니다. 고흐에게 그들은 세상의 고난을 짊어지고 가는 어린 양이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광부가 된 화가, 황재형

1981년 결혼 2년차에 태백에 들어가서 여태껏 살고 있는 화가 한 분이 계십니다. 황재형 선생님입니다. ‘출구가 없는 갱도’ 같다는 태백은 1990년 무렵 석탄산업이 정리단계에 들어가면서 광업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 뒤로도 전교조 활동과 벽화 그리기, 현장미술교육에 이어 왔으며, 폐교를 고쳐 ‘반야의숙’이라는 미술연수원을 운영하면서 태백에 머물고 계십니다. <작품의 고향>(임종업, 소동, 2016)에서는 황재형 선생님의 제자들 이야기를 싣고 있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늘 무슨 얘기를 하냐면, 돈만 벌면 나는 떠난다며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여기가 절대로 우리 고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20년, 30년을 살죠. ... 이곳은 삶의 중심이면서 가장 멀리하는 곳,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싫어하는 곳이에요.”

하지만 탄광이 문을 닫아도, 주민들이 핵폐기장을 유치하려고 나서는 행동을 보여도 황재형 선생님은 태백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태백을 떠난다 한들, 가난한 사람들에겐 우리나라 어디나 ‘막장’일 따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장에서도 곷은 피고 희망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믿는 분입니다. 그래서 미술공부를 해서 태백을 떠나고 싶어 했던 제자들에게 “너희들의 서투름, 거칠음, 무뚝뚝함, 꼬질꼬질함이 힘이 될 것”이라며 시커먼 탄천에서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발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황재형, 광ㅂ
황재형, 광부 예수, 1985

광부 예수

황재형 선생님은 화가이기 전에 광부였습니다. 태영광업소에서 일했는데, 문제는 안경을 쓴 사람은 취업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렌즈를 끼고 취업을 했는데, 석탄과 돌가루가 자꾸 눈에 들어와서 결국 만성결막염에 걸려 광부 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노동현장의 현실을 단순하고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판화를 주로 했고, 지금은 그들의 다양한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입힐 수 있는 유화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광부 예수>(1985)란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통해 황재형 선생님은 “대가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가는 너희 아버지가, 노동자 예수임을 왜 모르느냐?”고 묻고 있는 듯 합니다.

“육질성을 극복하고 정신 쪽으로 가려면 청색을 사용하는 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황재형 선생님의 작품에는 겨울 풍경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를 두고 그분은 “피서지에서 철학을 할 수 는 없는 노릇”이라고 합니다. 겨울에 태백에 오면 눈이 많은지라 흑백 대비가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여기서 천연색이 활기를 띠는 계절에 보지 못했던 삶과 욕망이 또렷해지고, 산을 헤집는 광산과 비탈에 앉은 집,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생각에 사로잡힌다고 고백합니다. 이를 두고 “나는 탄광에서 자본주의의 명암과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황재형 선생님은 “예술가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희망을 찾는 사람”이라면서 “작가는 더럽고 지저분한 탄천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작가의 마음이 중요할 텐데, “자본주의에서 사는 게 지치고 끔찍하지만 버릴 거냐, 버릴 게 아니면 뜨겁게 살자” 말합니다. 그분은 빈센트 반 고흐를 연모하였지만, 반 고흐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반 고흐는 “민중한테 잘하고 싶다며 극단적으로 자기 삶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생계도 해결 못하고 무너졌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황재형 선생님은 “지속성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소모적으로 변한다”면서, 오래 이곳에 남아 그들처럼, 삶을 견디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때로는 광부가 되어, 때로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 미술교사로서 화가로서 시민단체 구성원으로 ‘오래 살아남아’ 지루한 싸움을 이어가자고 합니다.

 

* 이 글은 <경향잡지> 2023년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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