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이 희망이다
상태바
'고려장'이 희망이다
  • 장진희
  • 승인 2023.02.13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난이 살려낸 것들 - 진도에서

공자도 그랬지만 옛 중국의 여러 종족들은 죽을 때 한반도에 가서 죽는 것이 꿈에도 그리는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고려장' 때문이었답니다. 실제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고향에 가고 싶은 심정으로 한반도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옛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곡기를 끊고 마을 뒷산쯤에 마련된 '곳집' 비슷한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다 맞이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어려움이 있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망자( 亡者)를 찾아가 지혜를 구했다"는 것이 '고려장'의 참된 의미였다는 것을 전제로

죽음을 앞두고 산으로 가서 살고자 하는 그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사람에게서만이 나올 수 있는 지혜. 그 지혜집단이 바로 '고려장 회의'라 할 수 있는 '반신반인(半神半人)' 의 "원선(元仙)"집단이었다 합니다.

인간이 한평생 살다 죽을 때 후손을 위해 평생의 앎과 지혜를 아낌없이 물려주는 것만큼 영예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집단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꿈에 그리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이웃 나라 사람들에게 꿈에도 그리는 땅이 된 것이었겠지요.

고려장을 도굴한 사람들은 그 속에 벼라별 것이 다 들어 있어서 놀랐다고 합니다. 우리 산에 약초가 많은 것은 이분들이 죽음을 앞두고 후손을 위해 씨를 뿌려 놓았기 때문이고, 고려장터에서 서로 아픈 데 침을 놓아주며 침술을 발전시켜 후대에 전했다고 합니다.

흔히 박물관에서 화살촉이라 설명되고 있는 차돌로 만든 작은 침은 짐승을 잡는 사냥도구였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고 가늘어서 그것이 일종의 수술도구이거나 침술도구였다는 것입니다. [부도지]에는 의술을 위해 사람의 장기를 열어봤다는 기록도 있답니다.

고려 왕건이 추풍령 고개를 넘어 '고려장 회의'를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대왕은 이 원로회의를 초빙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중국어의 '까오리 빵스'는 '고려 몽둥이'라는 뜻이어서 전민중이 들고 일어난다거나 하는 호되게 당할 일이 생겼을 때 쓰는 단어랍니다. 말하자면 '고려장 방망이' 한 대 맞게 생겼다라는 뜻이 그 어원이랍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방대한 영토를 지녔던 국가는 후대의 권력독점형 국가가 아니라 그 체제와 제도에 감복한 소규모 집단들의 합의체였다고 합니다.

가야국에도 있었다는 이런 '고려장 회의'가 언제부턴가 권력을 독점하려는 집단의 표적이 되었겠지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임금 대신 고려장에 가서 해결을 구하니 국가 권력집단으로서는 그 힘과 권위의 최대 적이었을 것입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버리고 그 모든 삿된 마음도 없는 엄정한 지혜의 힘 앞에 국가권력이 추구하는 지배욕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국가권력의 힘을 강화하고자 이 '고려장 회의' 집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추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 옛 중국의 국가 권력집단에서도 한반도의 '고려장 회의'가 눈엣가시였겠지요. 임금의 말보다도 한반도의 '고려장 회의'에 가서 묻고 답을 찾아왔으니 말이지요.

'고려장'은 국가권력에 의해 불효막심한 풍습으로 호도되어 강제로 폐지되었을 것입니다. 고려말에 그 공격은 극에 달했고 마지막까지 없애지 못한 고려장 원로회의 집단이 박제상의 [부도지]를 포함한 역사서를 간직해온 영해 박씨 집안이었다 합니다.

[부도지]의 '징심록추기'를 쓴 김시습은 바로 이 영해 박씨 집안의 원로회의에서 교육을 받았던 일종의 장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세종 때 모셨다는 '고려장 회의' 집단이 바로 이 영해 박씨 집안의 원로회의였고, 세조 전까지는 왕들이 이 원로회의 집단을 모셨다고 합니다.

세조의 단종 폐위 사건은 단순히 단종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이 원로회의를 죽여서 권력을 독점하려는 음모였다는 것입니다. 그 원로회의에서 길러진 김시습이 세조 때 이것을 살려보려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공주 마곡사에는 김시습이 1년에 한번씩 회의를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한자어원으로 고려장의 흔적을 살펴보면 사당 묘(廟)자는 신위를 모신 곳이라는 뜻이 아니라 바로 아침(朝)마다 가서 문안을 올리고 지혜를 구하는 고려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바위 암(巖)자에도 그 '고려장 회의'의 의미가 있다 합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때 일본으로 바위(巖)가 가버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바윗덩이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다는 얘기가 아니라 바로 이 '고려장 회의' 집단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고대사에 혁혁한 자료가 남아 있다는 '고려장'의 역사적 진위 여부는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가볼 수 없는 이상 역사는 남아 있는 자료와 후대 사람들의 역사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겠지요. 역사는 그것을 보려고 하는 사람,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카더라' 식으로라도 '고려장'에 대해 전하고 싶은 것은 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고려장'에 있다는 반가움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어 저승꽃이라고 하는 검버섯이 피어 있는 사람들조차도 모두 살려고만 하는 시대입니다. 천년 만년 살 것처럼 돈과 명예와 권력을 움켜쥐려고만 합니다. 내 한몸 그 욕망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가난으로 비인간적인 삶으로 내모는 사람이 돈과 권력의 최고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소위 민주화를 위해 여러 분야에서 애써 왔다는 사람들조차 자기를 드러내기 바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황구라니 김구라니 하고 외면합니다. 나잇값을 한다는 것은 이제 '나'를 내려놓고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죽음'밖에 바랄 것이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지혜를 내놓는 일일 것입니다. '고려장'처럼 말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이 딱 맞는 시대입니다. 국가권력을 움켜쥔 집단에 맞서 지금 야당은 이미 제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 어떻게든 살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돈'과 '권력'에 연연하고 그 허울좋은 이름에 목매어 정작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해서, 살려고 해서 지금 죽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국회가 제 노릇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모두 국회의원직을 내놓아야, 그렇게 죽어야 이 시대가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제니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으로서의 입법부니 사법부니 모두 제 노릇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왜 계속해서 대통령제를 고집해야 할까요? 대통령이 필요없는 합의체로서의 체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서로가 살자고만 악다구니를 쓰는 이 시대에 '죽음'의 의미가 새롭고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죽여주는' 것이 절실한 때입니다. 잘난 체하는 마음을 옆에서 죽여주고, '나'를 드러내는 마음도 옆에서 죽여주고, '돈'을 가지려는 마음도 죽여주고, '권력'을 가지려는 마음도 죽여주고 '명예'를 가지려는 마음도 죽여주고.....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만을 바라는,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내놓는 지혜가 절실합니다. 그런 어른들이 절실합니다. 그런 어른들, 그런 지혜 집단에게 후손들, 후배들은 몸으로 시대를 헤쳐나가며 그 방법을 물을 것입니다. 그 지혜집단이 국가 독점권력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를 그려봅니다.

아주 크나큰 영혼 하나가 '죽음'으로 그 시대를 열어 놓고 있습니다.

살 맛이 뚝 떨어져버린 요즈음입니다. 그렇다고 죽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럴 때 개인적으로 '죽음'과 비슷한 삶을 사는 것이 큰 약이 되는 경험을 젊어서 자주 했습니다.

특히 젊은날에는 살고자 하는 힘이 강렬한 만큼 절망도 큽니다. 그때 정말로 살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는 것을 쉬거나 사는 것을 거부하고 싶을 때...

곡기를 끊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죽어버리지는 않으려면 나름대로 공부를 좀 해야 합니다. 물과 소금은 필요하고 가능하면 관장도 해주어야 하고 또 회복식 관리도 잘 해야 합니다.

곡기를 끊으면 비로소 만사가 투명하게 보입니다. 자신이 절망했던 것이 사실을 아주 하찮은 것이며 하루하루 한끼 한끼 먹고 숨쉬고 다리를 움직여 걸으며 만나는 풀 한 포기와 새소리 한 토막에도 삶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을 온몸이 떨며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누구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욕심없이 분수껏 보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온몸의 세포가 죽음을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어서 굳이 곡기를 끊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채우기보다는 버리는 것이 적절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자연스러운 몸과 마음의 변화에 충실히 따르기만 하여도 나잇값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위안해보는 요즘입니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