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선 건널 수 없는 삶, 사회적 가족 & 신앙적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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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선 건널 수 없는 삶, 사회적 가족 & 신앙적 가족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12.19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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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선교사란 이런 거구나, 생각나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원선오 신부님이지요. 미사 때마다 불러서 익숙한 성가 <나는 포도나무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를 지은 작곡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분은 이탈리아 출신의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신부님입니다. 1954년 일본 도쿄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1962년부터 1982년까지 우리나라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분은 광주 살레시오 중고등학교에 계실 때부터 아코디언을 기막히게 연주하셨다는데, 당시 틈틈이 성가를 직접 작곡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신부님은 일본에서 한국, 다시 아프리카 케냐에서 남수단까지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마다하지 않으셨기에, 진짜 선교사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그리스도인이란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하였는데, 그분이 그런 분이겠지요. 남수단 난민수용소에 아이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지어 운영하다가 한동안 학교 짓기 프로그램에 몰두하셨습니다. “아프리카 주민을 일깨우고 무지와 가난, 부족 간 전쟁을 없애 새 문화를 만들려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길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추한 집이나 따스하오니

원선오 신부님이 작곡하신 곡 가운데 어려서부터 제 가슴을 울린 곡은 가톨릭성가 461번 <엠마우스>입니다.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에게 ‘함께 머물다 갈 것’을 청합니다. 성염 선생님이 고쳐 쓴 가사에는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누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추한 집이나 따스하오니” “주님을 이 집에 모셔 들이면 기쁨에 겨워 가슴 뛰오니” “가난한 인생들 소원이오니” “밤바람 차갑고 문풍지 떠나 주님의 음성이 호롱불되고 주님의 손길은 따뜻하오니” 우리와 한 상에 자리하시어 빵을 떼어 드시고, 이 밤을 쉬어 가시라고 청합니다.

루카복음(24,13-35)에 따르면, 제자들은 당시 그분이 예수님임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결국 어찌보면 불청객이라 할 수 있는 낯선 이를 제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지요. 그이가 예수인양 초대해서 자기 식탁에 앉히는 것이 환대입니다. 가난한 인생들끼리 누추한 집이지만 따뜻한 방에서 호롱불 아래 모여 밥을 지어 먹자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늘 바라시던 가족이 있다면 이런 가족이겠지요. 혈육이 아니더라도 고단한 발을 매만지며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새로운 가정’이겠지요. 성서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라는 책에서,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가족 소집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재구성된 가족을 만드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우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요 자매’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말마따나 새로운 공동체에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 곧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루카 3,33-35)라는 것입니다.

 

사진출처=홈리스행동 텔레그램
사진출처=홈리스행동 텔레그램

각자도생에서 사회적 가족으로

우리시대의 서글픈 초상은 ‘각자도생’(各自圖生)입니다. “저마다 알아서 스스로 살길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4번이나 언급되는 ‘각자도생’이란 말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나라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니 알아서 살 길을 찾아가라는 뼈아픈 전갈입니다. 굳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인민을 위해 있기는 한 건지 다시 물어봐야 하는 시절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마라”는 명제가 사소한 인간관계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책무에서도 적용되는 모양새입니다. 바람 차갑고 문풍지 떠는 겨울입니다. 이럴 때 가난한 인생들 소원은 ‘외로운 그 한 사람’ 곁에 누군가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 속사정을 들어주고, “그래, 그래” 다독거려 주는 그리운 손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고독사가 남의 말처럼 들리지 않는 시절입니다. 홈리스들이 어렵사리 얻은 임대주택에서 다시 쪽방촌으로 돌아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외로워서’라고 합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영우 신부님이 ‘참 소중한...’이라는 공간을 열어 대학동 고시원 동네의 외롭고 누추한 인생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한 것은 참 눈물겨운 일입니다. 혼밥 하던 이들이 라면 한 끼라도 편안한 얼굴로 사람을 마주보며 먹을 수 있다면 참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사회적 가족’이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에서 서울숲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삼십 년 만에 ‘소풍’가서 잠시 행복했습니다. 미리 맞추어 둔 도시락을 까먹고, 게임도 하고 족구도 하고 때 아닌 윷놀이도 했습니다. 서로에게 바라는 바가 적어서 소박하니 더 부담 없는 소풍입니다. 그 자리에 홈리스는 없고 겨울과 꺽쇠와 로즈메리와 강아지, 연탄과 자옥과 달자와 날라가 더불어 먹고 놀고 웃고 떠들었습니다. 이분들은 거의 매일 아랫마을에 잠시라도 와서 지내다 갑니다. 반빈곤 집회가 있으면 함께 가고, 엊그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농성장에 앉아 공부도 했습니다. 내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가족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이들에게 ‘새로운 가족’입니다.

일꾼의 집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면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만, 제가 전라도 무주에 귀농했을 때 이따금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으면 합정동 ‘밀알의 집’에서 자곤 했습니다. 이 집은 지금 한국국제가톨릭형제회(AFI)에서 센터로 사용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예수살이공동체에서 임대하여 몇몇 청년들이 모여 살았던 곳입니다. 늘 손님방이 예비되어 있어서, 아침이면 함께 기도하고 밥을 먹곤 했습니다. 식구들을 경주에 두고 저 혼자 서울 올라와서 지낸 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한동안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먹고 자고 했습니다. 당시 연구소가 집구조여서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출근하는 연구소 직원들을 제가 마중하곤 했습니다. 매일같이 “안녕하세요?”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 복된 일이지요. 머물 숙소를 제공하고, 삶을 나누어 주는 이들이 가족이지요.

요즘은 그럴만한 공간을 찾기 어렵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되고, 제 주변에도 독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1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가구 비중이 2015년(21.3퍼센트)에 비해 9.1퍼센트 늘어나 30.4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우리 가운데 셋 중 하나는 1인 가구라는 겁니다. 20대의 경우에는 53퍼센트가 비혼 독신에 동의한다고 합니다. 문득 이들에게 가족을 찾아주어야 하는 걸까, 생각합니다. 가톨릭일꾼운동에 투신하고 싶어 하는 분들 가운데도 ‘일꾼의 집’ 같은 게 있어, 자유로운 개인들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 함께 살며, 공동의 꿈을 꾸어보자는 제안도 합니다. 잠시 고단한 삶을 곁에 누이고, 잔잔한 대화와 꿈같은 복음적 열정을 나누고 싶은 것이지요. 그게 사회적 가족이든 신앙적 가족이든 절박하게 요청되는 오늘입니다.

 

* 이 글은 <경향잡지> 2022년 1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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