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연필 깎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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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연필 깎는 마음으로
  • 김선주
  • 승인 2022.12.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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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 중에 ‘손맛’이란 게 있다. 나는 그 손맛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연필을 사용하고 그 연필을 직접 손으로 깎아 쓴다. 연필을 깎을 때, 칼날에 힘을 가하는 정도와 속도를 계산하는 것은 내 이성이 아니라 육체적 감각이다. 그 감각이 바로 손맛이다. 산을 깎아 길을 내듯 통나무를 다듬어 흑심을 드러내고 그것을 뾰족하게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내 정신은 잠시나마 몰입의 쾌감을 즐길 수 있다. 물고기기 파닥거리는 듯한 느낌이 연필 깎기에서 얻는 손맛이다. 그런데 이젠 연필을 사용하지도 않고, 설사 사용한다 하더라도 연필깎이를 사용함으로써 그 손맛을 잃어버리고들 산다. 편리함이 신체적 감각과 몰입의 쾌감을 빼앗아간 것이다.

2천 년 전 교회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제의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렇다. 교회는 유대교 전통의 바탕 위에 선 제의공동체였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재림에 대한 기대로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그 모임을 에클레시아(교회)라고 했다. 교회는 초월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한스 큉의 주장처럼 실존적이고 현세적인 공동체였다. 이 공동체는 지속되는 사건의 외연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제사(예배)하고 친교를 나누는, 사건의 지속성이 역동하는 공동체 말이다. 교회는 살과 뼈가 있고 피가 흐르는 육체들의 회합이었다. 구약의 제의가 살아있는 동물의 몸을 드린 것처럼 신약의 제의는 살아있는 예수의 몸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육체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교회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교회사의 시작과 함께 강력한 이단 사상이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영지주의다. 그것은 마르시온에 의해 교회를 위협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의 극단적 이원론은 육체를 부정함으로써 예수의 육체마저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 2천 년 역사에서 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이단 사상이었다. 지금도 신천지 이만희 같은 이들은 영지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단 사설을 말하고 있다. 영지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탈육체화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본질은 영성(이성)에 있다고 보면 인간의 모든 실존적 가치는 부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모 대형교회에서 ‘온라인교회’를 창립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시대에 맞는 기발한 종교상품을 들고 나온 것이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기독교방송의 설교와 예배들, 그리고 특히 해마다 수능 시즌에 반복되는 오륜교회의 다니엘기도회 등이 교회의 기능을 약화시키게 될 것을 우려해 왔다. 그것들은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상당히 약화시킬 수 있다. 더 비극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몰락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그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미디어영지주의(Media Gnosticism)’라고 말하고 싶다.

온라인교회는 역사와 사회, 인간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이 없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종교 상품일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이 항상 모든 사람에게 유익할 수 없고, 자기 교회에 선한 것이 항상 모든 교회에 유리한 건 아니다. ‘24시간 예수님만 바라보자’는 기발한 종교상품으로 예수를 힌두교의 구루(Guru)처럼 만든 교회에서 또 다른, 그럴듯한 종교상품을 만든 것일 뿐이다.

도덕적으로 붕괴한 교회가 세상에 설득력을 잃어버린 이 즈음, 교회 걱정만큼 쓸데없는 게 있을까마는 그래도 교회에 발붙이고 사는, 마지막 목사 세대로서 교회가 염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연필을 깎는 마음으로 교회를 산다. 교회는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다. 이것이 목사로서 교회에 대한 나의 성서적 이해다. 편리하다고 연필깎이를 돌리기보다는 연필을 깎는 마음으로 내 뼈와 살이 교인들의 뼈와 살을 실존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이것이 목사로서 내가 살아내야 할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사명이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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