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와 ‘배려’, 무엇이 진실일까?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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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와 ‘배려’, 무엇이 진실일까? 1편
  • 문지온
  • 승인 2022.10.2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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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온의 심온재 이야기
사진=문지온
사진=문지온

뉴스에선 꽃샘추위 소식이 들려오는 데도 남도의 햇볕은 따가왔다. 햇살 좋은 오후, 마루에 앉아 담벼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 좋다!’ 하는 말이 절로 났다. 야트마한 산을 넘어온 바닷바람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유자나무 잎사귀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흔들리는 것을 보면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가다, 저 작고 반짝이는 잎사귀들을 봐. 사람은 그런 존재란다. 저마다 자기 안에 반짝이는 빛을 가지고 있지. 너도 그래. 난 네가 그 빛을 따라, 그 빛을 드러내며 바람에 흔들리는 저 작은 나뭇잎들처럼 사람들과 부대끼며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삶의 고단함과 어두운 면에 주목하기보다 하느님, 그분께서 네 안에 심어놓으신 존재의 빛과 기쁨을 누리면서 말이야.”

그녀의 전화를 받은 것도 그런 오후였다. 드륵드르륵. 오래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마루에 앉아 햇살을 즐기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고흥에서 만난 칠순의 천주교 신자 M 자매님이었다. 전화를 받기가 꺼려졌다. 그녀를 알고 지낸 지 한 달, 내가 한 말이 그녀의 해석을 통해 전혀 다른 뜻이 되어 내가 깃든 마을의 S 회장님에게 전해지면서 ‘오해의 불씨’로 작용하는 일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전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햇빛과 바람과 유자나무를 통해 들려온 내 안의 목소리가 “그녀 안에도 밝고 아름다운 존재의 빛이 있어. 그 빛을 찾아 그 빛이 드러나도록 도우라고 하느님께서 너와 그녀를 만나게 해주신 거야.” 말하고 있었으므로.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굵고 힘 있는 목소리로 그녀는 간단한 안부를 전한 후 뜬금없이 물었다. 요즘 마을 사람들 중에 우리 집을 찾아오는 분들이 있냐고. 오래된 집성촌이라 모두가 한 가족인 마을에서 외지인으로 혼자 뚝 떨어져서 힘들어할까 봐 걱정스런 마음에서 묻는 거라 생각했고 편안한 마음으로 있는 대로 이야기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S 회장님만 찾아오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길에서 만나거나 나누고 싶은 먹거리가 있을 때 내가 마을회관을 찾아가서 잠깐 보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고. 그런데 돌아온 M 자매님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자매님, 시골은 도시와 달라서 마을 사람들이 이웃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어요. 그런데 자매님 집에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지요? S가 주동이 되어 자매님을 왕따시켜 마을에서 쫓아내겠다더니 벌써 마을 사람들한테 금지령이 내렸네요. 나한테도 S가 그럽디다. 자매님이나 자매님 친구분한테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구요. 그래서 내가 걱정돼서 전화한 겁니다. 자매님은 천주교 신자이고, 천주교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한 가족이니까 자매님을 보호하려구요.”

그 말에 웃으면서 말했다. S 회장님이 몇몇 사람들에게 우리 집 대문을 발칵발칵 열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집중해서 글 작업을 해야 하는 나를 배려하는 차원이었으며, S 회장님이 그 말씀을 하실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그 말끝에 물었다. 고흥에 와서 한 달 남짓, 별다른 갈등이나 마찰 없이 마을 어르신들과 잘 지냈는데 왜 나를 쫓아내려 하겠냐고. 돌아온 대답은 모호했다. 정확한 이유도 없이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S 회장님이 마을 사람을 선동, 나를 왕따시켜 마을에서 쫓아내려 한다는 늬앙스의 이야기...

 

사진=문지온
사진=문지온

믿어지지 않았다. M 자매님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그날만 해도 S 회장님은 읍에 나갔는데 파리바게트를 보니 아침에 빵 식사를 하는 내가 생각나서 샀다며 식빵을 선물로 주고 가셨다. 당신 집 마당에 자라고 있는 푸성귀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서 뽑아가라는 말도 여러 번 하셨고.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M 자매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본 S 회장님의 모습과 M 자매님를 통해 듣는 S 회장님의 모습, 둘 중에 무엇이 진실이고 S 회장님과 오랜 친구라고 하면서 둘이서 속닥거린 말을 몇 번 만나지 않은 나에게 전하는 M 자매님의 숨은 의도는 무엇인지. 그런 내 상태를 읽었는지 M 자매님은 S 회장님이 보기와는 다르게 무서운 사람이란 증거로 자신이 입은 상처를 길게 늘어놓다가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그러니 자매님은 나만 믿고 따라오세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고흥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을 겁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의 마지막 멘트는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통제하기 위해 나르시시트들이 자주 하고 즐겨하는 멘트라고 배웠던 것이 생각나면서 나보다 몇 년 앞서 귀촌했던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고흥으로 이사를 하기 전에 그녀는 누누이 당부했었다. “아가다, 시골 사람들은 겉으로 봐서 서로 잘 알고 친한 것 같아도 속에는 갈등이 많고 서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을에 새 사람이 오면 서로 자기 편을 만들려고 없는 말도 지어내서 퍼뜨리고 상대방의 험담을 많이 하는데, 그런 갈등 구조 속으로 들어가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니까 많이 조심해. 그리고 처음부터 너한테 너무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대개가 요주의 인물이니까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마. 귀촌해서 외로운 마음에 그랬다가 뒤통수 맞는 사람들 허다하니까.”

내 맘 같아서는 당장에 S 회장님에게 달려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M 자매님이 하는 말이 사실이냐고. 사실이라면 다른 좋은 마을을 찾아 이사를 갈 테니 그 이유나 알려달라고. 당신은 대체 누구냐고, 내가 아는 당신은 그렇게 앞 다르고 뒤 다른 사람이 아닌데 내가 잘못 본 거냐고도.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질문에 솔직히 이야기할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테고, M 자매님이 자기들끼리 뒤에서 한 말을 나에게 전한 것이 드러나게 되면서 또 다른 분란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내가 신앙인, 굽은 자로도 직선을 그리시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이 일을 통해서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있을 테니까.

 

문지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몇몇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을 통해 따뜻함에 이른다"는 뜻으로 필명을 문지온으로 정했다. <남은 자들을 위한 800km>(ekfrma, 2016)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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