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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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세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그리스도인
  • 최태선
  • 승인 2022.10.1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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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
누가 말했는지는 다 알 것이다. 탄핵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으신 박근혜님의 말씀이다. 듣기에 좋은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간절히 바라는데도 우주가 도와주지 않아 홀로 목숨을 끊는다. 간절함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우주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의 말이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말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탄핵을 거쳐 신분이 회복된 그는 지금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국 그 역시 새옹지마인 세상사를 지나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우주가 언제나 그의 편인 것은 아니다. 결국 권력을 가지고, 성공했을 때만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제로섬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정글이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죽지 않을 수 있기 위해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자기분수를 헤아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결과는 불행이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이 잘 조직되고 질서 있게 돌아가는 체제에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체스 판의 말처럼 갈 수 있는 길이 정해져 있고, 이유 없이 그 체스 판에서 사라져야만 한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자신도 모르게 승패를 가르는 게임의 일원이 되어 살아남기도 하고 희생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결과가 자기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체스 판에서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다른 주체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체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체제에 종속된 말로서 살아가고 이기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승패가 갈릴 때까지 계속해서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게임은 지속된다. 사실 박근혜도 이 체제 속의 한 인물이었을 뿐이다.

 

사진출처=elpais.com
사진출처=elpais.com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때론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체스 판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되기란 어렵다. 어쩌면 그래서 “자연인”과 같은 프로그램이 장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탈을 꿈꾸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무의식 속에서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보라. 어떻게 세상에서 실패하거나 병들어 산 속으로 칩거한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의 열악한 삶을 보라. 하지만 자연 속에서 그들은 오히려 풍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일탈이 가져다주는 존재 의미의 회복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체제에 순응하는 체스 판의 말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자연인들의 자유와 풍요를 보면서도 선뜻 그들과 같이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체제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병원에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상품의 구입이 어려워지고, 지인들과의 만남이 어려워지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인들은 건강해져서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병이 낫고, 구입하지 못하는 상품의 필요성이 애초부터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지인들과의 만남은 오히려 고립 속에서 진지해진다는 것을 자연인들이 역설하고 있지만 체제에 순응한 결과로서의 두려움은 좀처럼 극복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인”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체제가 자신을 유지하는 방법은 사람들의 두려움만이 아니다. 체제는 사람들의 꿈을 통제한다.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광고에는 품격을 갖춘 멋진 것들이 유혹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멋진 외모를 가진 남녀 모델들이 하는 행동과 짓는 표정이 그들을 현혹시킨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니 손만 뻗치면 그런 멋진 현실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조금만 돈을 더 번다면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체제 속에서의 순응이 강화될 뿐이다.

그들의 꿈은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그 꿈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자존심은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체제에 순응한 삶을 살아가고 역할이 끝나거나 자신도 모르는 게임 체인저에 의해 제거된다. 그것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예수의 등장은 바로 이런 세상에 대한 반전이었다. 예수가 보여준 것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예수가 보여준 세상은 하느님 나라이다. 하느님 나라는 희생양이 없는 나라이다. 누구나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 곳이다. 핍절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이다. 무엇보다 게임 체인저가 맘몬이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는 샬롬의 나라이다.

그러나 무한반복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일탈이란 죽음이라는 두려움으로 인식된다. 아무리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고, 아무리 자신의 삶이 사실은 체제의 형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도 선뜻 예수의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익숙한 것은 자유가 된다. 사람은 어느 곳에 갖다놓아도 적응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심지어 감옥 속에서도 사람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진리가 주는 자유란 잡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속박처럼 느껴지고 오히려 불행처럼 보인다. 그것이 체제에 순응한 사람이 가지는 한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리를 따르거나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를 체제 속으로 가져온다. 진리는 체제 속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자연인이 되지 않고는 자연인이 누리는 풍요와 행복을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체제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은 많다. 체제 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그리스도교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하부구조가 된 그리스도교는 체제의 일부일 뿐, 복음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를 밀봉하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맘몬의 전진기지의 역할을 할 따름이다. 예배를 드리고, 성체성사를 모시고,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하지만 체제라는 자신들을 가두어 두는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예수는 한 소년이 가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적에 반응할 뿐 그 기적이 가지는 의미를 보지 못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생각은 그런 기적을 일으킨 분을 모셔다 왕으로 삼는 것이었다. 군중들이 보아야 할 것은 그들을 가두고 있는 체제였다.

그렇게 체제 속에 갇히면 왕은 허울이 된다. 그래서 예수는 군중을 떠나야 했고, 배가 부르기 때문이라는, 체제를 강화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그런 그들을 떠나고 그들의 의도를 따르지 않으셨다.

군중들이 보아야 할 것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사람과 하느님의 협력을 통해 일어나는 기적을 보고 용기를 내는 것이어야 했다. 복음이라는 모험 속으로 뛰어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원수를 사랑하는 근본적으로 체제를 허무는 사람들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체제는 이처럼 언제나 공고하다. 복음이 무력한 것은 이 체제 속에 순응하기 때문이고, 체제에 순응하면 맘몬의 노예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희생의 체제인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자연인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 속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지적처럼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거위가 되어 뒤뚱거리며 걷는다. 창공으로 날개 치며 올라가는 독수리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세상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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