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죽거나 천천히 죽어가기-산업재해 노동자들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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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죽거나 천천히 죽어가기-산업재해 노동자들을 위로하며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10.0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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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추석 당일 저녁 일산 백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다니는 식품회사 직원이 이날 새벽 심정지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물류가 입고되기에 미리 공장에 나가서 재고정리를 하다가, 지게차에 기대 죽어있는 것을 사장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물류과장으로 일하다가 이번에 공장장으로 승진했는데, 한 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과로사로 이승을 떠난 것입니다. 아내는 아침에 소식을 듣고,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다가 저녁참에 다른 직원들과 함께 조문을 갔습니다. 엊그제 그분은 아내가 싸준 삶은 달걀을 들고 와서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는데, 물류 일 깔끔히 마무리하고 생산부서로 옮겨 새출발하려던 고인과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명복을 빌어 봅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지난 한 해 동안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린 사람-굳이 프레스 공장이 아니어도 이런 일은 기계를 다루는 업종에선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손등이 눌린 사람을 여럿 보았다고 합니다. 기계는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자기 궤도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그냥 보기에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무심한 물건에 부딪치면 상당한 찰과상이나 타박상을 입기 마련입니다. 기계에 끼이면 손목이 쓸려 들어가지만 기계를 탓할 수 없습니다. 기계는 악의가 없지만, 사람을 배려하지도 않습니다. 부주의 탓이라고 하지만, 사고는 순간적으로 발생합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안전규칙이 있어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생겨 이따금 통증완화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식노동자가 겪어야 할 운명이라 여기며 견디고 있습니다. 예전에 잘 알고 지내던 정형외과 의사에게 물어보았더니, 치료법은 단 하나 손가락을 안 쓰는 방법밖에 없다더군요. 그게 일인데, 일을 안 할 수 없으니 대책 없는 대책이라 하겠지요. 가급적 쉬어가며 일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극단적 고립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직업도 있습니다. TV에서 ‘극한직업’이라 부르는 게 다 그렇습니다. 시청자들은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직업군에게 더 열광할지 모르겠지만, 당사자가 ‘먹고살기 위해’ 일하며 느끼는 절망감이란 예측을 불허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2018년 12월 발생한 김용균 사망사건은 하급노동자들의 절망을 드러내고, 급기야 사회여론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작업현장에서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급격히 줄었다는 보고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현실을 방조하는 국가는 사실상 ‘살인공모집단’에 불과합니다. 김용균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습니다. 그런데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은 김용균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11개월 전인 2018년 1월에 이미 한국서부발전에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설비 개선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낙탄을 사람이 직접 치우지 않고 고압의 물로 쏴서 처리하도록 시설을 개선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부발전은 이들이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이 요청을 무시했고, 하청업체는 컨베이어벨트가 자신들의 소유 설비가 아니라 권한이 없다고 회피했습니다. 결국 이 상황에서 김용균이 죽었습니다. 이들은 ‘살인방조집단’입니다. 이런 사망사고 등 산업 재해는 95퍼센트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한겨레>에서 보도한 ‘청년 산업재해 기획보도-살아남은 김용균들’에 따르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 그 경계선에서 죽을 때까지 고통받는 삶”도 있습니다.

치명적인 산재로 장애나 질병을 얻어 노동력을 100퍼센트 상실한 중장해인(장해 1∼3급)은 1만1533명(2022년 4월 기준)이나 됩니다. 이들 가운데 20~30대 청년은 187명이나 되는데, 83.5살인 한국 평균 기대수명(2020년 기준)에 비춰보면 이 청년들이 살아갈 날은 50~60년 이상 남은 셈입니다. 이들은 김용균처럼 재해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살남은 사람들입니다. 청년 산재노동자 가운데 15살 때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맞은편 차량과 충돌해 장기 등 손상(내부기관상해·뇌심혈관 질환 포함)으로 1급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케이티(KT) 서비스 직원이었던 하씨는 2019년 1월 9일 통신선과 고압선, 변압기가 함께 걸린 전봇대에서 작업을 하다가 감전되어 양팔을 절단했습니다. 2011년부터 9년째 케이티의 자회사인 케이티 서비스남부 진주지사에서 인터넷 개통·수리 작업을 담당했던 그는 “포크레인 작업을 하다 인터넷 선이 끊어졌으니 당장 와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일정에도 없는 작업이었고, 이미 출근해서 10건이 넘는 사건을 배당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난감했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회사가 권고하는 하루 적정 작업량은 7건인데, 일하는 도중 접수되는 사건까지 맡다 보면 하루 처리 건수가 15~20건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산재사고와 관련해 박승호 교수(가톨릭대 사회복지학)는 이런 경우 ‘사회적 재난’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산재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이고 가족에게는 갑작스러운 재난”이니, 재난안전관리기본법에서 규정한 ‘재난’에 산재를 포함시키자는 것입니다. 자연재난(홍수 등)과 사회재난(화재·붕괴 등)으로 한정된 재난안전관리기본법상 재난 개념에 산재도 포함되면 ‘재난에 직면한 위기가족의 긴급지원’을 규정한 건강가정기본법이 산재 가족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는 어떤 이유로든 산재에 노출되지 않는 노동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면, 정부든 기업이든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온갖 방책을 내놓을 것입니다.

유용주 시인은 ‘가장 큰 목수’라는 시에서, 예수님 역시 “그도 처음 목수 일을 배울 때에는/무수하게 자신의 손가락을 내리쳤으리라/으깨어진 손가락을 장갑으로 감추우고/20년 가까이 세상 공사판을 떠돌아다닌” 분이라 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나무에 못을 박아야 할 위대한 목수를 십자가 나무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 세상은 제 손으로 일해 위태로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지금도 차갑게 천천히 무고하게 살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제, 그만!”이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성인성녀들은, 이들을 위해 빌으소서. 아멘.

 

* 이 글은 <서울대교구노동사목위원회 웹진> 2022년 9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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