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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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최태선
  • 승인 2022.09.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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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박스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고 계셨다. 처음에는 우산을 씌워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무게에 흔들리는 리어카를 보니 밀어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언덕이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밀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분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평지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비도 오고 힘드시죠?”라고 말한 후에 식사는 하셨느냐고 물었다.

제가 식사대접을 한 번 해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물은 후 핸드폰에 꽂아놓은 오만 원짜리를 드렸다. 얼굴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제가 깡통 같은 것을 모았다가 드리고 싶은데 전화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으시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자신은 핸드폰이 아예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자신이 근처 마트의 박스를 수거하러 그곳엘 수시로 들린다며 그곳에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할 때마다 분명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기쁨과 함께 세상의 불평등에 관한 생각과 겨우 돈 한 푼 드리는 내 사랑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런 분들에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드리거나 함께 살 수 없는 내 믿음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내 사랑은 보잘것없다. 내 사랑은 함량미달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내 삶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이런 나에게 절망하지도 않는다. 내게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이런 작은 실천이 신앙 자체라는 생각도 한다. 특히 다른 사람과 내 실천을 비교하지 않는다. 나처럼 살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조금씩 하게 되기도 한다. 때론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그러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조금 더 쉽게 행동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그러나 내가 이런 실천을 멈추지 않는 것은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0”

그렇다. 나는 나의 작은 사랑실천을 통해 하느님을 알아간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은 애간장이 끊어지는 긍휼로 특징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아버지를 아셨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시고 그 일을 하셨다. 그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위대한 일도 아니다. 그 일이 바로 사랑하는 것이고, 혼자 사랑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란 그래서 반사행동이 되어야 하고 일상이 되어야 한다. 사랑을 할 대상이 눈에 띄는 순간 생각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사랑해야 하고 그런 반사행동들이 그리스도인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기적인 사랑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랑 때문에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인 타인을 위한 사랑으로 단 할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동안 그리스도인 사업자들과 기업들을 유심히 보아왔다.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보지 못했다.

하느님의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은 똑같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하느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은 사람과 같이 되셨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그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님처럼 그렇게 낮아져서 이방인 노예의 자리까지 내려가야 한다. 일단 거기까지 내려가면 십자가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을 칭찬이나 세상의 칭송일 것이라고 짐작하거나 기대하지 말라. 세상은 그런 사람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십자가는 영광이나 승리가 아니라 가장 처참한 몰락이자 패배이다. 그러나 그것이 패배와 몰락으로 끝나고 그것으로 기억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런 몰락과 실패를 영광으로 바꾸시고 승리로 바꾸신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사랑이신 하느님의 가장 대표적인 선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은 십자가라는 몰락과 처참한 실패를 부활이라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선으로 만드셨다. 십자가보다 처참하고 비참한 실패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기꺼이 순종하신 예수님의 그 실패를 하느님은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온 인류를 위한 소망과 영광의 승리로 바꾸어놓으셨다. 세상의 가장 악한 악을 선으로 바꾸신 것이다. 하느님은 가장 악한 악도 선으로 바꾸실 수 있으시다. 하느님의 이 능력에는 어떠한 제한이나 한계도 없다.

나는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그가 누구라도 완벽할 수 없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에는 성인추대라는 것을 통해 그런 사랑이 있다고 믿고 있고, 그런 일을 한다. 나는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그리스도인은 없다. 그리스도처럼 완벽하게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모두가 그리스도를 닮을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조차도 선한 분이 아니시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마르 10,18) 

맞다. 아무리 완벽한 그리스도인도 하느님처럼 선할 수 없다. 아니 선한 그리스도인 자체가 없다. 따라서 성인추대란 어떤 의미에서 그런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모두가 부족한 사랑이고 함량미달의 사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런 우리 사랑을 선의 도구로 삼으셔서 우리의 사랑을 완성해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려놓은 사랑 그림은 어린아이가 개발 새발 그려놓은 엉성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사랑 그림을 완벽한 그림으로 걸작으로 만들어주신다. 하느님의 선을 만드시는 능력이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우리의 사랑은 허물투성이이고, 괜히 했다는 후회가 수시로 들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라. 엉성한 사랑이라고 실망하지도 말라.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그런 우리 사랑들을 선으로 만드실 것이다.

사랑해야 할 이유가 천천이라면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만만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랑해야 한다. 실패해도 된다. 부족해도 상관없다. 함량미달이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랑을 통해 우리는 거듭난다. 거듭나야 하느님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랑의 사도가 된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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