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혼령 있는 세상이 훨씬 근사하고 괜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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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혼령 있는 세상이 훨씬 근사하고 괜찮은
  • 장진희
  • 승인 2022.08.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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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5 - 무주에서: 큰나무 할아버지

순이 아줌마와 같이 사는 분은 돌이 아저씨입니다. 어렸을 때 조금 다친 다리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덧나기 시작해서 갈수록 걷기가 힘들어집니다. 수술비는 시골 집 한 채 값이니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늘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돌이 아저씨는 여간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지팡이 하나 짚고 다니면서 남들이 힘들다고 부치지 않는 비탈밭, 다랑이논을 알뜰히 거둡니다.

경우지고 야무진 순이 아줌마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지만, 돌이 아저씨는 당신 육신이 그래서인지, 천성인지, 우리한테도 필요한 건 곧잘 달라고 합니다. 내 속 짚어 남의 속 안다고, 내남없이 그럴 양이면 당신도 남한테 곧잘 그런다는 얘깁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 피눈물 나는 육신으로 농사 지어 도시에서 고생하는 자식들한테 한푼이라도 보태주려고 못 입고 못 먹고 모아둔 돈을 그만, 그놈의 연대보증인가 뭣인가 서 줬다가 홀라당 날리고 말았습니다. 사람 환장하겠습니다.

마음 착한 사람일수록 걸려들게 되어 있는 그놈의 연대 보증, 특히 우리나라 시골처럼 아직도 공동체의식이 강한 약점을 이용해 은행만 손쉽게, 절대로 손해 안 보고 장사하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제도. 평생 땅만 파먹고 살아온 촌로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빚쟁이가 되고, 전답을 날려 도시 사람 아구에다 처넣게 되는 것이 연대보증이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망등양지 우리 집과 순이 아줌마네 전답을 굽어보고 있는 뒷산, 7부 능선쯤에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할아버지처럼 서 있습니다. 순이 아줌마네 밭 중에서 가장 높고 비탈진 밭이 그 아래 있습니다. 뒷간 가려고 나오는 밤이면 그 커다란 소나무가 영락없이 망등양지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산 능선과 어울어져 달 밝은 하늘에 드러난 자태가 근사합니다. 할아버지가 지켜 주고 있으니, 뒷간에서는 빨간 손도 파란 손도 안 나옵니다.

워낙 오래된 나무라 말이 할아버지지 사실 그 용모로 보아서는 준수한 청년입니다. 푸르른 기상이며 잘 뻗은 몸매며 힘찬 허우대며 빼어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소나무를 베겠답니다. 어떤 작자가 집 짓는 데 기둥으로 쓰겠다고 얼마 돈을 주고 계약을 했답니다.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땅과 그 밑에 비탈밭은 돌이 아저씨네 문중 소유입니다.

돌이 아저씨에게 찾아갑니다. 돌이 아저씨는 마침 집에 누워 계십니다.

"아니! 어디 아프셔요?"
"으응! 엊그제 좀 다쳤어..."
"어쩌다가요?"
"으응, 누가 집 짓는다고 여기저기 좋은 나무를 구하러 댕기는디, 그것 나무 짐 싣는 디 디다보다 나무한테 한 대 얻어맞었어. 뼈가 뿌러진 건 아니고 메칠 안 움직이고 쉬믄 괜찮어지것디야, 병원서."

"아이고, 아저씨. 큰일날 뻔하셨네요. 안 그래도 걱정이 돼서 찾아왔더니, 오늘 우리가 오기를 잘했네요... 아저씨! 비탈밭 우에 소나무도 파셨다고요?"
"으응! 아, 그 소나무 땜시 우리 밭에 그늘 지고, 또 그 나무가 꼬추에 준 비료 다 묵어부러. 그래 그짝은 꼬추가 통 안 된당께... 누가 산닥 한께 그라자고 그랬제, 뭔. 돈이야 내가 받나? 문중 돈이제..."
"하이고오! 아저씨! 겁도 없으시네. 큰 나무 잘못 건드렸다가 사람 상한 것 한두 번 보셨어요? 어쩌자고 그래 그 나무를 비어가게 하셨어요오?!"
"으응! 그래애? 맞어. 옛날에는 나무 잘못 건드렸다가 잘못된 사람 더러 있었제...... 에이, 그래도 요새는 시상이 개명한 시상인디, 뭣이 그랄라고오?"

"아이고, 아저씨! 뭔 소리요오? 아직 비지도 않고 비가라고 말만 했어도 이렇게 사람을 주저앉혀 놓는디, 그 나무 비어가게 했다가는 아저씨든, 아줌마든, 자식들이든 일을 쳐도 단단히 칠 것인디요!"
"허억! 글고 봉께 그라기는 그라네..."
"아이, 그라기는 그란 것이 아니라, 얼마 전에 여주 사는 내 친구네 동네에서도 나무 잘못 비었다가 사람이 고약하기 짝이 없게 죽어 나갔는디요."

돌이 아저씨에게 들려준 사연은 이렇습니다.

두 팔로 안으면 한 아름 이상 되는 제법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심을 때는 누군가 은행이라도 주워먹으려고 귀한 마음으로 심었겠지만, 세월이 가고 땅 임자도 바뀌어 어느 날에 고약한 인간 하나가 임자라고 들어섰다. 그 아래 밭이 제법 건 땅이라 흙도 검고 부드러워 소출도 괜찮은데, 그럴수록 그러는지, 은행나무 그늘에 밭 한귀퉁이가 햇볕이 가려지는 게 눈에 가시였던 모양이라.

밭일 하다 말고 은행나무 아래 땀도 식히고 할멈이 새참 챙겨오면 오순도순 사랑도 나누면 딱일 만큼, 두 사람 그늘 겨우 만들어주는 그런 정도 그늘이었는데, 그걸 꼴 못 보고, 이 영감탱이 어느 날은 나무에 오르더니 밭쪽으로 난 가지를 씀벅씀벅 베어냈더란다. 그래 반푼이가 된 나무꼴을 보고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그 인심 사나움에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더란다.

그래, 그래도 그만만 했으면 그 지경을 안 당했을라나, 또 어느 날은 뭣이 씌었는지 나무에 올라가 나머지 가지들도 무참하게 꺾고 분질러 놓았단다. 그러고도 살아 있는 한, 새 봄이면 여지없이 물오르고 이파리 키워낼 생명인지라, 이 영감탱이 며칠 곰곰 생각해보다 맘이 안 놓였는지, 나무 둥치에서부터 한 자 높이로 빙 둘러 나무 껍질을 다 벗겨내 허연 속살이 드러나게 해놓았단다. 아닌게 아니라 나무는 뿌리에서부터 가지에, 이파리에 물이고 식량이고 싣고 올라가는 목숨줄이 다 말라버린 것이었단다. 이제 새 봄이 되었는데도, 나무는 이파리를 피워내지 못하게 되었단다. 죽어버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혀를 끌끌 찼더란다.

그런데 바로 그 해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철, 뭔 일로 두 영감 할멈이 그 나이에 부부싸움을 하였더란다. 나이 칠십이 넘도록 살았으면 부부싸움 한두 번 했을 것이며,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열받을 일이야 있겠냐만은' 할 것인데, 그만 부부싸움 하고 나가 그 길로 이 영감 농약을 병째로 마셨드란다. 농약 먹고 뽁뽁 기다가 바로 그 나무 밑에 엎어져 있드란다.

으흐흐! 위 사건은 실화입니다. 21세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돌이 아저씨 얼굴이 하얘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최후의 협박까지 한마디 보태 쐐기를 박습니다.

"글고 요새는 자기 산에 있는 나무도 자기 맘대로 못 비어내요. 신고해서 허가받고 안 비믄 걸린다니까요! 벌금 내실라믄 한두 푼이 아니고, 돈 못 내면 징역살인데요, 뭐. 산림청에서 나와 봐도 저렇게 오래되고 좋은 나무를 비라고 허가가 나겠습니까?"
"오메, 그라믄 이 일을 어째야 쓰까?"
"돈 받은 거, 아직 있지요?"
"으, 으응! 쪼금 축나긴 했어도 그거야 도로 채워주믄 되제, 뭔."
"아! 그라믄 언능 도로 줘불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셔요."

"......"

괜히 마음이 짠해집니다. 준비해간 돈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꾸욱 참습니다. 그래도 뻗을 자리 보고 누운다고, 마음이 섭섭해진 돌이 아저씨, 씨익 웃으시면서 말하십니다.

"그라믄 자네들, 유기농 농사 짓는다고 군에서 퇴비 지원 나온 거 그거 좀 노놔 다오. 소나무가 잡숴간 꼬추밭 거름이라도 더 넣어 주게......"
"아, 예. 그거라면 얼마든지 드리지요. 내일 져다 비닐하우스 앞에 놓아 드릴게요. 한 열 포대면 되겠지요?"
"열 포대? 으응... 그라믄 조오체."

농사 짓는 사람은 비료 아니면 거름 넉넉한 것이 제일로 부러운데, 소 돼지 똥에 톱밥하고 발효시켜 나누어준 퇴비 쌓여 있는 것이 욕심났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흥정은 끝났습니다.

들어선 지 못 돼도 수백 년은 되었을 마을인데 당산나무, 느티나무 한 그루 제대로 살려 놓지 않은 마을을 봅니다. 야박하기 짝이 없는 심성들이 되었는지, 참으로 보는 사람 팍팍하고 사는 사람 팍팍할 일입니다.

텔레비전의 무슨 '기담괴담' 프로그램에서는 기껏 '혼령이 붙은 나무' 취재를 해놓고도, 미신이 어떻고, 심리학자 얘기로는 어떻고 해서 나무에는 혼이 없다고 해야 뱃속이 편한 모양입니다.

'나무에도 혼령이 있다. 그러니까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살아야겠다.‘

옛 조상들은 그렇게 알았습니다. 요새 사람들처럼 과학적으루다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해도 지혜의 눈은 훨씬 밝았던 것입니다. 나무에 혼령이 없는 세상보다 나무에 혼령이 있는 세상이 훨씬 근사하고 괜찮은 세상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매일 꾸는 꿈, 일상 속에 버젓이 살아 있는 꿈 하나도 제대로 해석한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세상을 다 알 수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식물의 기운, 물의 기분까지 과학적으로 밝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좀 믿을 때가 되었겠지요?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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