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깊으면 슬픔도 깊다
상태바
사랑이 깊으면 슬픔도 깊다
  • 최태선
  • 승인 2022.07.03 2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선 칼럼

작년에 손자가 생겼다. 손자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고 다행이었다. 나는 손자로 인해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엄마인 딸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 이상하게 녀석은 그런 엄마를 외면했다. 엄마가 외출을 해도 쳐다보지도 않았고, 외출에서 돌아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런 녀석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마침내 녀석이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가 외출하고 시간이 지나면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를 부르며 슬퍼한다. 아직도 엄마가 돌아오면 반갑게 달려가 안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를 보고 안심하고 즐겁게 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녀석이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역전되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엄마를 더 선호한다. 다행이다. 또 당연하다. 내가 중간에 끼어든 것 같아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이젠 마음이 편하다. 녀석이 내게 안겨 있다 엄마에게 간다고 해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다. 사랑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모차르트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밀로스 포만 감독, 1984)에서 살리에르가 한 말이 생각난다.

“사랑이 깊으면 슬픔도 깊다.”

맞다. 사랑이란 학습되는 것이며 특히 어려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것을 학문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안나 프로이트다. 그는 누구나 다 아는 프로이트의 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학문적 유산을 승계했다. 다만 아버지와 다르게 그의 연구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에게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부모의 마음속에 자리를 찾지 못한 아이는 세상에서 자신이 있을 곳이 사라졌다고 느끼게 된다.”

나는 그녀의 말이 실감난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안도감이 체화되어야 한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고 깨달았다.

나는 청년 시절 보육원을 방문해서 그곳의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한 후 그곳의 후원자가 되었다. 내 삶에서 그 보육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나는 보육원을 알게 된 것을 내가 받은 하느님의 가장 큰 은혜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그 복지법인을 드나들면서 그곳 아이들과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이제는 성인이 된)을 보고 있다. 특히 그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늘 기도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사리 행복해지지 못한다. 시설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관문 하나를 통과했다 싶으면 어느새 다른 난관이 나타난다. 물론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어려움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과는 언제나 다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처럼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목사가 되어 그다지 그들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나는 그런 그들을 하느님께서 보호해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또 언제라도 그들이 어려울 때는 내가 가진 적은 것으로 도울 준비도 되어있다.

하지만 그들이 쉽사리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출신이 그들의 발목을 잡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보통의 아이들이 배운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 안나 프로이트가 지적하는 대로 그들은 찾고 싶었던 부모의 마음속의 자리를 가지지 못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고, 그렇게 그들은 영원한 방랑자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다.

지금은 그 보육원에 아주 작은 영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작은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슬프다. 그 아이들이 자리할 부모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헌신적으로 그 아이들을 안아주는 선생님들도 계시다. 그건 정말 큰일이다. 그들의 그런 헌신이 그 작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선생님들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만큼 확고할 수는 없다. 그 아이들의 미래는 그래서 이미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

오지랖이 넓은 나는 그런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나는 정말 내가 그런 아이들에게 작은 둔덕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 그러나 이미 가난해진 나는 그곳의 관심에서 배제된 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무기력한 상태가 그리스도의 능력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는 내 절망감을 주님은 아실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게 된 아이들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아이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감춘 위선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그런 사랑 없음을 감추려는 과장된 몸짓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그곳에서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던 아이들 가운데 신앙을 가진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회에는 다만 자신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만큼만 마음을 연다. 그것은 그들의 하느님 사랑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말과 같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부모의 사랑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린=오토 딕스
판화=오토 딕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부러운 것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자신들의 자녀들 역시 장인과 도제식 방식으로 양육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정도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아이들이 머물 곳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절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양육되지 않은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 사랑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최소한 한 세대를 지나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지금 모태신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 부모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서나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부모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준비된 사람인 경우 에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하느님은 그런 인간들의 실존을 아시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부어주시기도 하신다. 하지만 그런 사랑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양육된 자녀 세대 그리스도인에게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딸아이가 아이를 기르는 모습을 보고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내가 딸아이에게 심어준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장하여 손자에게 더 안심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본다. 손자 녀석의 재롱만으로도 이미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손자 녀석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해진 엄마의 사랑 안에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사랑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되었다. 교회 안의, 부모의 마음속에 자리를 찾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교회 안의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진 부모를 위해, (...) 자신을 희생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되는가. 나는 교회에서 얼마의 사례비를 받든 목사는 그 교회에서 가장 가난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자식은 아픈 손가락이다. 목사에게 교인은 더 그래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은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랑의 실종이 그 원인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다른 것을 보지 말자. 그 사랑이 자녀에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보자. 그리고 그 사랑이 자기의 속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가를 보자. 그러면 아무도 사랑에 대해 쉬이 언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