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홈리스에게 ‘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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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홈리스에게 ‘방’이 필요합니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05.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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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서울역 광장은 홈리스의 ‘슬픈 성지’처럼 보입니다. 온갖 성인들의 초상과 성화들이 걸려 있어서 평생 하느님을 사모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끔 하는 성지처럼, 서울역에는 늘 그들이 있습니다. 조롱과 멸시를 피해갈 수 없는 거리를 지나 성문 밖 낯선 돌밭에서 목숨을 바친 예수님처럼, 세상의 남루함이 한꺼번에 집약된 공간이 그곳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매년 동짓날마다 홈리스추모제를 이곳에서 열고 있습니다. 옛 서울역사 첨탑 주위로 몰려드는 비둘기들은 이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며 같은 하늘을 이고 있지만, 사정은 홈리스보다 더 나은 듯합니다.

“누군가에는 소중하게 불렸을 그 이름을 기억하며, 또 각자의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을 기억을 추모하며, 장미꽃 한 송이를 가슴에 올려드립니다.”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라고 부르는 서울역 광장 계단에서 2021년 겨울 홈리스추모제가 열렸는데, 계단에는 지난 한 해 동안 사망한 홈리스 395명의 명패가 놓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리와 병원 그리고 쪽방 등지에서 생애를 마감한 사람들입니다. 2020년보다 딱 100명이 더 늘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사랑을 받았을 사람들, 항시 사랑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기억’ 안에서만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도 아직 그리워할 고향이 있고, 서로 외면하고 싶은 마음만 남았지만 가족이 있습니다. 결국 ‘연고 없는 죽음’으로 이승을 떠나게 될지라도 여름장미처럼 붉게 타오르던 날이 있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모든 아기들이 축복 가운데 태어났을까

덧없고 쓸쓸한 죽음만큼, 참담한 출생도 있습니다. 예전에 ‘노숙인다시서기센터’에서 일하던 성공회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던 가운데, 한 여성 홈리스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한 여인이 공중화장실에서 아기를 출산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홈리스 산모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넬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없었다고 해요. 이 아기의 출산을 기다려 준비된 공간이 화장실이라면, 이 아기도 하느님의 축복 가운데 지상으로 초대받은 것일지 신부님은 자못 괴로워했습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홈리스 사목을 하면서 아직 하느님께 분명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신부님입니다.

루카복음서에서 따르면,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빵 굽는 냄새가 달콤한 베들레헴에서 그날 밤 방을 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축복처럼 다가온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급하다고 주인 허락 없이 마구 들어갈 수 있는 헛간은 없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방이 아니어도’ 쉴만한 공간을 내어준 것입니다. 누추하지만 안정된 공간이 아기 예수님에게 주어졌습니다.

헨리 나웬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는 방이 많다”고 했는데, 그 방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배고픈 군중들을 바라보시며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가 방을 내주어라” 하고 명령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지금 배고픈 사람들, 지금 당장 묵을 곳이 없어서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곧 ‘그리스도’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말은 하지만, 기꺼이 이들에게 밥과 방을 내어줄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그들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톨릭일꾼운동’ 창립자인 도로시 데이는 “사실상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 사람들이 모두 거룩하고 멋지며, 네온사인처럼 빛나는 그리스도를 그들이 모시고 다닌다면,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내는 일은 아주 쉬워질지 모른다. 만약 성모 마리아가 요한 묵시록의 이야기처럼, 발밑에 달을 두고, 태양을 입었으며, 머리에 12개의 별로 장식된 관을 쓰고 베들레헴에 나타났다면, 마을 사람들은 마리아에게 서로 방을 마련해 드리려고 싸웠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리아를 위해 마련한 하느님의 길이 아니었다. 그리스도 자신을 위한 길도 아니었다. 이제 그리스도는 땅을 걷고 있는 다양한 인간들 속에 숨어 계신다. 그리스도가 살아계실 때, 군중들이 그분에게 보여준 무시와 홀대를 보상해주었던 몇몇 사람을 복음서는 기억한다. 목자들도 그런 사람이었다. 이들이 서둘러 구유로 달려온 행동은 나중에 스승을 등지고 달아날 사람들의 행동을 미리 갚아주고 있다.”(Work of Mercy>, Fritz Eichenberg, Orbis, 1992)

여성 홈리스, 삶의 끝에서 위태롭게 걷는

2016년에 실시된 보건복지부의 거리와 시설을 중심으로 한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노숙인은 약 1만1340명입니다. 그중 여성은 2,929명으로, 전체의 25.8퍼센트 가량입니다. 20년 넘게 여성 홈리스를 위해 일해 온 열린복지디딤센터의 김진미 소장은 거리에 머무는 여성 홈리스들은 그 가운데 5퍼센트 정도라고 합니다.

“여성에게 거리 노숙이 굉장히 힘들다. 현장에 술을 마시는 문화가 있다 보니 폭력사건이 휘말릴 위험이 크다. 게다가 여성은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어 잘 보이지 않는 데 숨어서 노숙하는 경우도 많다. 공중화장실에서 청소 노동자가 일을 끝내고 나가면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자기도 한다.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남성 홈리스와 어울리는 분도 있긴 하지만 소수다. 똑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여성은 성매매 등 노숙 외 다른 위험에 빠지기 쉽고 거리로 나오기가 어렵다.”(<빅이슈>, 2020.7.27.)

여성 홈리스가 주로 머무는 장소는 찜질방, PC방, 만화방이 가장 많아서 실태조사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과 조금 다른 이유로 거리로 나옵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2010년 발간한 <서울시 노숙인 지원정책 성별 영향 평가>를 보면, 남성은 60퍼센트 이상이 실직과 사업 실패 등 경제적 어려움을 들었으나,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이 46.7퍼센트, 바로 뒤이어 ‘가족 관계의 어려움’이 43.3퍼센트입니다. 노숙인 자활·재활 시설에 입소한 여성들은 60퍼센트 이상이 가정폭력 등 비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이들에게 요긴한 것은 ‘안전한 공간’입니다. 자신들의 고유한 경험 때문에 사람들 눈을, 그것도 남성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무료급식을 받으러 줄을 서기도 힘듭니다. 얼굴을 알고 달려드는 남성 홈리스들의 성추행과 시선 폭력을 참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여성 홈리스는 위험을 피하려고 밤에는 계속 걸어 다니거나 좀 더 안전한 낮에 잠을 자는 분도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나 대형 서점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경험한 분 가운데는 롯데리아 등 24시간 영업점에서 햄버거 하나 놓고 의자에서 쪽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 주변에서 잘 때는 자신이 여성임을 감추기 위해 우산으로 가린다고 했습니다. 이 여성 홈리스에게는 지상의 방 한 칸이 필요합니다. 누가 이들의 손을 잡아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 이 칼럼은 <경향잡지> 2022년 4월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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