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은 가족과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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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은 가족과 함께 시작된다
  • 브랜든 보트
  • 승인 2022.04.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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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 그리고 참여에의 초대-로마 성녀 프란체스 3

프란체스의 남편 로렌조는 수많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완전히 프란체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425년 초에 그는 아내를 불러 모든 결혼의 의무에서 자유롭게 해 주겠다고 선언했다. 프란체스는 관상 생활에 대한 오랜 염원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남편의 유일한 요청은 프란체스가 장원에 계속 사는 것이었다.

프란체스는 기쁨에 떨었다. 수 년 동안 그는 젊은 귀족 가문의 여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 프란체스의 가족에 대한 헌신과 애덕 활동을 경탄하는 처녀들이 있었다. 프란체스는 오랫동안 이 처녀들의 그룹을 공동체로 만들고 싶어 했다.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애덕 활동을 수행하는 공동체로. 그는 이 계획을 돔 안토니오에게 보이면서 수정해주기를 청했고, 1425년 8월 15일, 그의 수정을 거친 후 프란체스는 공식적으로 마리아의 봉헌회를 출발시켰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 그룹은 수도회가 아니었다. 그들은 서원을 하지 않았고, 우선 그들 자신의 집에서 살았다. 또한, 프란체스도 결코 자신을 수도회 창설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로렌조를 돌보는 일에 계속 매달려 있어서, 공동체는 그의 축복 하에 아그네스 데 렐리스를 첫 번째 장상으로 선출했다.

1432년, 프란체스는 한 낡은 건물을 인수하고 그것을 수도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과부들인 몇 사람들을 초대하여 공동체에서 함께 살도록 했다:

“나의 사랑하는 동료들이여 … 7년 동안 우리는 특별히 봉헌 되었습니다 … 정결과 순명 속에 살고 우리에게 부과된 규칙들을 지키는 일에…그러나 마침내 주님께서는 저에게 당신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제가 이 도시에 새로운 영적건물을, 오래된 신앙의 요새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 건물은 관대하게 세상의 모든 미끼들을 버리기로 결정한 여러분과 같은 여성들의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 여러분이 이 건물의 기초이고,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새로운 영적 집의 머릿돌입니다. 여러분은 풍요로운 추수가 이루어지는 씨앗입니다.”

수도원을 세운 후에도, 프란체스는 로렌조와 충실한 관계를 유지하여, 집에 남기로 선택하고 그를 돌봤다. 1436년 마침내 로렌조가 세상을 떠났고, 그는 충실하고 헌신적인 아내를 칭송하기 위하여 마지막 말을 이렇게 남겼다: “나는 나의 온 인생을 마치도 가장 순수한 행복의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통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의 축일 날, 프란체스는 그가 창립한 수도원에 맨발로 걸어들어 갔다. 그는 바닥에 엎드렸고, 공동체에 자신을 받아들여달라고 간청했다. 물론 공동체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나서 프란체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그네스 데 렐리스는 장상 자리를 내놓았고, 공동체로 하여금 프란체스를 새로운 장상으로 선택하도록 했다.

그 후 공동체의 4년간은 더 없는 기쁨 자체였다. 프란체스는 하루 종일 애덕활동과 관상 그리고 다른 수녀들을 상담하는 일을 번갈아 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는 기도하면서 신비체험을 하였고 몇 가지 기적을 행했다. 삶의 마지막 몇 년 동안, 프란체스는 섬김 중에 그를 도운 수호천사를 직접 보았다고 전해진다. 1440년 3월 9일 저녁, 프란체스의 얼굴은 마지막 말을 할 때 빛났다: “천사가 마지막 일을 끝냈습니다. 그는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리스도교적 삶의 첫 번째 학교

거의 모든 성인의 뒤에는 거룩한 가족이 있고, 이것은 특히 리지외의 성녀 테레즈의 경우가 그랬다. 이 젊은 성녀의 아버지, 루이는 어렸을 때부터 테레즈를 기도 안에서 훈련시켰다. 자주 그를 가까운 숭어냇가로 데려가 관상과 겸손의 교훈을 가르쳤다. 성녀의 어머니 젤리는 그에게 커다란 사랑으로 하는 작은 행위의 가치를, 그리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있어도 그들을 섬기는 가치에 대하여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테레즈에게 “그리스도교적 삶의 첫 번째 학교”가 되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2008년 10월19일, 베네딕토 16세는 존경할 만한 삶과 부모됨에 대한 증언으로서 젤리와 루이 부부를 복된 사람들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부부는 테레즈 때문에 공식적으로 “복자들”이라고 선포되지는 않았다. 테레즈는 부모 때문에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부모와 그리스도인 가족들의 목표는 성인들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로마의 성녀 프란체스가 주는 교훈들

열한 살 난 프란체스가 그의 소명을 분별했던 것은, 비록 실행되기에는 수십 년이 걸렸지만, 옳은 분별이었다. 그는 수도공동체에 부름을 받았다 – 다만 시간을 잘못 맞추었을 뿐이다. 하느님은 그를 다른 형태의 공동체로 가는 여정을 포함하여 마리아의 봉헌회로 이끌기 전에 다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계획이다. 프란체스의 삶, 장원과 수도원에서의 삶은 오늘날 많은 가르침을 준다.

먼저, 거룩함은 가족과 함께 시작된다는 교훈이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에 따르면, “가족이 제대로 가면, 국가와 전 세계가 제대로 간다.”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은 가족이 사회를 만드는 기초돌이며 첫 번째 공동체의 학교라고 여긴다. 우리 모두가, 특히 가족을 키우는 우리들은, 우리의 가정을 떠나지 않고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선물을 추구할 수 있다 – 즉 깊은 기도, 자선, 정결, 그리고 친교를 추구할 수 있다. 프란체스의 초기 삶은 우리의 배우자,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이 공동체적으로 살고 이웃 섬김을 통하여 주님을 섬기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고 보여준다.

두 번째로, 프란체스의 삶은 영적 우정의 가치를 강조한다. 동서인 바노짜의 도움과 지지가 없었다면, 프란체스는 거룩함의 추구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바노짜는 프란체스에게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어떻게 하느님께 자신을 바칠 수 있는가를 보도록 도와주었다. 바노짜는 프란체스가 모방할 수 있는 모형을 마련해 주었고, 시련의 시기에 격려를 보냈다.

거룩함의 여정에서 우리를 도와줄 영적이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자주 어렵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섬길 수 있는 친구들을. 그렇지만 바노짜가 보여주듯이, 그런 친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 영적 동반자들을 찾도록 도와달라고 청해야 한다. 특히 그런 동반자들이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인가를 알아보도록 도움을 청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을 열도록 노력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취약함을 보이고 우리의 영적 희망과 갈망을 나누도록 노력해본다. 우리는 그들의 반응에 놀랄 수도 있다. 그들은 윌리암 바클레이가 영어로 된 가장 강력한 말이라고 부른 말을 하면서 응답할 수 있다. 즉 “나도 그래요”라는 말로써. 그리고 그런 반응은 깊고도 거룩한 우정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세 번째로, 프란체스는 우리가 어느 곳에서나 공동체를 찾을 수 있다고 보여준다. 성장하면서, 프란체스는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수도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삶의 처음 50년 동안, 그는 많은 다른 자리에서 공동체를 발견하였다. 그는 공동체를 취약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자기의 장원에서, 내분으로 가득한 영토에서, 또한 전쟁이 끝난 후 복구 작업에서, 음식과 안락함이 거의 없는 곳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서 성화를 추구하는 부유하고 젊은 여성들과 함께 하며 공동체를 발견했다. 프란체스의 경험은 우리가 어디에 있게 되든지, 도시이든 교외이든, 작은 한 칸 방이든 농장이든, 본당이든 식당이든 간에 하느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우리가 통교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프란체스의 충실함을 따라야 한다. 결단, 투신이 위험하게 흔들거리며 약한 우리 시대에, 그는 충실함의 위대한 모범을 보여준다. 그는 로렌조에게 충실했고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그를 자극하는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돌봄을 요구하는 로렌조의 형편없는 건강에도 불구하고 충실함을 견지했다. 그는 그의 수도공동체의 여성들에게 투신하였다. 그의 지지와 참여를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느님께 유보하지 않고 투신했다. 마음속에 품은 길이 멀어지고 바뀌는 것 같이 보여도 하느님의 길을 믿었다. 모든 공동체는 다른 사람들의 선에 투신하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프란체스는 전 생애동안 이 사실을 보여주었고 우리에게 중요한 모형을 주고 있다.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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