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클레버, 가난한 흑인들을 위한 고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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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클레버, 가난한 흑인들을 위한 고백실
  • 브랜든 보트
  • 승인 2022.03.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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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는 노예들이 노예선에 있는 동안만 그들을 섬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노예들이 팔린 다음에도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였다. 카리브 연안의 영국인 소유의 노예들과 달리, 스페인 법은 노예들이 결혼하는 것을 허용했고 가족이 갈라지는 것을 금했다. 피터는 소유주들이 이 법을 존중하는지 확실히 다짐을 받았다. 그는 노예 친구들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하여 카르타헤나의 도시들을 이따금씩 여기저기 방문하였다. 소유주들이 그들의 농장에 피터를 위한 화려한 방들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노예들의 거주 영역에 있기로 했으며, 어떤 긴장상태도 만들지 않기로 했다.

피터는 또한 정기적으로 노예들의 고백을 들었다. 이것이 스페인의 귀족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그들은 피터가 자기들의 고백을 먼저 들어야 한다고 피터의 장상에게 요구하였다(그들은 피터의 거룩한 명성과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피터는 모든 노예들이 다 고백성사를 볼 때까지 그들을 기다리게 만들었고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훌륭한 숙녀분들의 전담 고백자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다른 고백자에게 가야 합니다. 나의 고백실은 절대로 고귀한 숙녀들에게 맞지 않습니다. 그들의 옷에는 고백실이 너무 좁습니다. 그 곳은 오직 가난한 흑인들에게만 어울립니다.”

피터는 1년에 5천 명 이상의 노예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었다. 때때로, 그는 너무 오랫동안 고백실에 앉아 있다가 기절했고 식초를 마시고 깨어나야 했다.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 이외에, 매 주간 피터는 또한 카르타헤나의 세인트 세바스티안, 세인트 라자루스에 있는 두 병원을 방문했는데, 세인트 라자루스 병원은 특별히 나환자들을 위하여 세워진 병원이었다. 피터는 환자들의 영적, 육체적 요구들을 섬겼다. 그곳의 더러운 환경 여건들을 생각하면서, 그는 후에 이렇게 농담했다, “만일 까다로운 입맛이 없고 튼튼한 위장을 지닌 사람이 성인이라면,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일꺼라고 인정한다.”

피터는 또 감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였다. 그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위로했으며 비록 그들의 몸은 창살 뒤에 있지만 하느님의 자유롭고 참다운 자녀들이라고 단언하였다.

어려운 여건은 그의 몸에 경종을 울렸다. 1650년 70세의 나이에 피터는 카르타헤나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치명적 페스트에 전염되었다. 그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피터는 이후 끊임없는 통증에 시달렸다. 또 제어할 수 없는 경련도 일어나서 더 이상 미사를 집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말년을 소수의 방문객들을 맞으면서 고립되어 보냈다. 장상들은 피터에게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매우 취약하고 활동이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다시 세례를 주고 있다는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 수도회 장상들은 더 이상 앞으로 세례를 줄 수 없다는 명령을 피터에게 내렸다. 수천 명에게 세례를 준 사람에게는 잔인하고 모욕적인 처사요 운명이었다.

피터는 이러한 박해 앞에서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부모들과 멘토들에게서 배운 겸손을 따르면서, 그는 자신을 당나귀에 비교하였다: “나쁜 평판을 받을 때 그는 벙어리가 된다. 굶주릴 때 그는 벙어리가 된다. 짐이 너무 많이 실릴 때 그는 벙어리가 된다. 멸시받고 소외될 때에 그는 벙어리가 된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불평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벙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종도 그래야 한다.”

피터는 1654년까지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피터는 스페인의 선교사로서 그의 일을 계속할 목적으로 합류한 디에고 라미레스 파리나 신부를 맞이하였다. 디에고 신부가 있어서 피터는 무척 기뻐했고, 노예들에 대한 그의 사명이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크게 안도하였다. 디에고 신부가 도착한 며칠 후에 피터는 쓰러져 혼수상태가 되었고 이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애동안 내내 지역의 세력가들에게 모욕과 무시를 받았지만, 죽은 후에는 국가의 영웅으로 즉각 인정을 받았다. 사회와 종교계 지도자들은 앞다투어 피터의 삶을 기리기 위하여 달려들었으며, 장엄하고 화려한 장례예식을 거행하였다. 아프리카인들과 원주민들은 그들의 친구요 보호자, “노예들 중의 노예”인 피터를 기리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특별한 미사를 주선하였다. 처음 피터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그의 방을 방문하고 성인의 유물이 될만한 모든 것을 다 가져갔다. 그만큼 피터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컸다.

1888년, 레오 13세 교종은 공식적으로, 피터 클레버와 그의 멘토인 알폰수스 로드리게스를 성인품에 올렸고, 피터를 아프리카 사람들의 선교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미국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성 베드로 클레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888년에 시성된 성 베드로 클레버는 현재 콜롬비아에서 인권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CNS 사진/The Crosiers)
미국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성 베드로 클레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888년에 시성된 성 베드로 클레버는 현재 콜롬비아에서 인권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CNS 사진/The Crosiers)

피터 클레버 성인이 주는 교훈

피터 클레버를 모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고양시킨 모범으로 바라볼 때에 우리는 몇 가지 실천적인 교훈을 얻는다. 먼저. 피터는 우리가 노예 제도의 비극 앞에서 긴급하게 직면해야 한다고 가르쳐준다. 피터 당대의 수많은 사람들은 노예 제도를 모른척하거나 부인함으로써 실천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똑같은 일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지금도 27백만 명의 사람들이 노예살이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숫자는 인간 역사에서 최고에 달하는 숫자다. 이 숫자에는 미국의 약 4만 명 노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여성들과 아이들이고, 노예 밀거래의 희생자들이다.

이 비극은 물론 어느 한 사람이 물리치기엔 너무나 크다 피터 클레버 같은 도량이 큰 사람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우리의 작은 몫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좋은 발걸음은 미국주교회의의 () 밀거래 프로그램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주교들의 이 알려진 프로그램은 인간 밀거래 희생자들을 구조하고 희생자들이 자신들의 존엄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에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프로그램의 웹사이트에는 우리 지역공동체에서 희생자들을 알아보는 방법과 그 해결책에 참여하고 도움이 되는 길에 관하여 많은 정보가 있다.

이 일 말고도, 덜 뚜렷하지만 노예 제도만큼 심각한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알코올과 약물중독 같은 것도 매해 수백만 사람들이 갇혀버리는 굴레의 형태들이다. 포르노그래피는 그것을 보는 수백만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남녀들을 성적 대상으로 축소시키며, 하느님이 주신 그들의 존엄성을 빼앗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성령이갇힌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라고 나를 보내신다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라”(루카 4,18)고 선포하는 예수님을 따라 온갖 굴레에 갇힌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가치와 자유를 다시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피터 클레버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교훈은 변명, 구실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피터가 속했던 많은 예수회 형제들은 노예들을 섬기기를 거부했고, 수많은 이유를 대면서 그렇게 했다: 그들이 아프리카 말을 하지 못하고, 노예무역이 너무나 고착되어 있어 변화시키기가 어려우며, 노예를 섬기는 일은 그들 자신의 건강도 위험에 처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피터는 이런 걱정과 우려들이 그의 자비로운 섬김을 막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어떤 한 곳의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에 위협이다라고 말한 것이 옳다면, 잉태부터 자연적 죽음의 때까지, 존엄성에 대한 모든 공격은 우리가 대면할 가치가 있는 공격이다. 두려움과 소심함, 머뭇거림이 절대로 우리의 애덕 실천을 위축시키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예들이 그들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도록 피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도운 방식은 하느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오늘날에는 흔해 빠진 진부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 “예수님은 나를 사랑해, 이건 나도 알아” - 그러나 이 진리는 여전히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알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고유하게 창조하였고, 우리를 원하고, 우리를 돌보고, 무한하게 우리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사랑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든 개의치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여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무조건적이다. 이 사실이 4백여 년 전의 노예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삶을 존엄하게 만들고 있다.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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