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집에서 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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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집에서 길을 만나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03.0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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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변방에서 마주친 풍경

그리움은 사랑보다 오래갑니다. 맵찬 바람이 불던 겨울 어느 날 몇 주간 벼르다 새벽같이 차를 몰았습니다. 예전에 전북 무주에 귀농했을 때도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면 화물차를 몰고 천지 사방을 달렸습니다. 한 수녀님을 만나러 무주에서 줄포까지 미끄러지는 눈길을 밟아 갔던 기억도 새삼 그립고 아름다운 마음이었겠지요. 강원도 정선. 코로나19 영향인지 길에 차량은 많지 않았지만, 네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닿았을 때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더군요.

강설과 강풍 예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번 마음먹은 일을 미루면 다시 갈 날이 있을지 염려하여 내친김에 달려간 것이지요. 얼추 살아 보니, ‘다음에 보자.’ 하였다가 영영 보지 못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떠난 길을 함박눈이 지우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높은 고개를 세 개나 넘어야 닿을 길이었습니다. 그이의 집에 닿았을 때 이미 그날로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을 예감해야 했습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길 없는 길

포장된 신작로가 끊어진 곳에서 그 집 진입로가 시작됩니다. 사실 이곳엔 길이 없습니다. 집과 신작로 사이에는 계곡이 있고, 비가 오면 이 계곡은 아무도 지나갈 수 없는 물길이 됩니다. 신작로 끝에 주차하고, 마중 나온 그이를 따라 계곡 돌밭을 10여 분 걷다 보면 왼쪽 오르막으로 그 집 대문이 보입니다. 그곳엔 그 집뿐이고, 일부러 장마가 지면 오도 가도 못 하는 고립된 땅에 집을 지었다 합니다. 다행히 농사용 전기가 들어오지만, 인터넷도 전화도 두절인 세상입니다. 다행히 핸드폰은 터진다고 하니 외부로 열린 교신은 가능한 셈입니다. 집은 부부 둘이서 직접 지었답니다. 솜씨가 대단합니다.

제 친구 한서정은 이곳 정선에 자리 잡기 전에 제주에서 ‘카라’라고 부르는 표현 예술 심리 치료 센터를 운영했습니다. 바다에 가까운 그 집도 참 예뻤는데 산악에 가로막힌 이 집은 더 예쁩니다. 창밖 풍경이 그대로 그림이 되고, 이렇게 눈발이 사정없이 사방에서 몰아치는 날엔 따로 영화를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고적한 땅에서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이 삽니다. 두 사람은 인도를 여행하다가 만나 길에서 사랑하고, 말 그대로 ‘삶의 예술’을 실험하는 중입니다.

이 집 김치와 동치미 맛이 끝내줍니다. 이날 저녁은 스파게티, 다음 날 아침은 누룽지였고, 풍미를 더해 주는 내려 먹는 커피 덕분에 행복한 1박 2일이었습니다.

이 산골에 들어오면서 두 사람은 차를 버렸고 지금은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가능하면 장을 보지 않고 봄여름 가을 키워 낸 작물로 밥을 먹습니다. 저희에게 부탁한 것이 빵과 커피콩이었으니, 아마도 이게 그들이 누리는 복된 호사였던 모양입니다.

인연은 인연을 낳고, 소비는 쓰레기를 낳고

20년 전이지요. 무주 산골에 귀농했을 때, 한서정이 처음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당시 귀농자 마을 대표 역할을 하시던 허병섭 목사님 댁에 왔다가, 아마 목사님이 우리 집을 소개한 모양입니다, 귀농자 가운데 글 쓰는 가톨릭 신자가 있다고. 당시 한서정은 김제 어느 공소에 방을 얻어 살았는데, 그 공소 마당에서 화물차를 받쳐 놓고 올라가 뾰족 감을 따던 생각이 납니다. 공소에 닭장도 만들어 달걀을 얻고, 미술 치료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던 한서정은 바지런하고 혼자서도 씩씩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저랑 나이가 같아서 더 친해진 것 같아요.

정선에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절 인연이라는데, 시절을 넘어 오래 사귀고 깊게 만나는 인연도 있는 법입니다. 근원에서 닿는 구석이 있다면 이들과 목숨이 다하는 길까지 동반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날 우리가 나눈 대화 가운데 하나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입니다. 제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아파트에 살 때도 한 주일에 두어 번 재활용 쓰레기 내놓는 날이면 단지 앞에 박스며 플라스틱, 비닐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경기도 파주의 주택으로 이사 와서도 날마다 쌓이는 쓰레기, 그 가운데 대형 마트와 택배 포장재가 상당합니다. 듣기로는, 재활용 분류를 해 놓아도 결국 비용 때문에 한꺼번에 폐기하는 모양입니다. 이걸 보면 기후 위기 어쩌고 말할 자격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한서정이 사는 시골집에선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사들이는 물건이 별로 없고, 내부에서 생산된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퇴비가 되겠지요. 그래서 한 가지 다짐을 합니다. 집 근처 대형 매장을 못 본 듯 지나가자고, 1일 자와 6일 자에 열리는 금촌 재래시장에 가자고 말입니다. 예전 파주등기소 인근에 열리는 장터에선 소비할 물건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마트에선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들의 얼굴과 몸짓, 그 언어와 삶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잃어버린 샘을 찾아낸 사람

이날 저는 20여 년 전에 미륵 신앙으로 유명한 전북 김제 금산사 인근 모악산 기슭에서 만난 두 수행자, 백인과 인덕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예전에 노동운동을 했다는 백인은 홀로 산에서 수행하던 인덕을 만나 시골집 하나를 얻어 살았습니다. 이들이 처음 그곳에서 한 일은 모악산 계곡에 구석구석 처박힌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이 들어낸 쓰레기가 어찌나 많은지 시청에서 화물차를 보내 여러 차례 나누어 날라야 했답니다. 쓰레기가 사라진 자리엔 샘이 있었고 이들은 그 물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것도 하루 한 동이만 길어 갑니다. 물 한 동이로 하루에 쓸 물을 아껴 가며 씁니다. 물을 받아 밥을 짓고, 얼굴을 씻고, 화초를 가꿉니다.

겨울에는 장작을 쌓아 놓지 않고 날마다 산에서 부러진 가지와 삭정이를 긁어서 그날 하룻밤 구들을 데웁니다. 주님의 기도처럼, 오늘 필요한 것만 청하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따로 돈벌이하지 않고 소금을 구워 주변 농부들의 쌀과 바꾸어 먹던 사람들입니다. 한 해에 한 번 전남 장흥에 가서 메주를 빚고 생활비를 벌었던 사람들입니다. 전기마저 끊어 버린 이 집에서 캄캄한 저녁에 촛불을 켜고 마주 앉아 먹던 나물과 대통 밥이 생각납니다. 참 소박하지만 거룩한 밥상입니다.

이렇게 저보다 저를 더 사랑하시어 새로운 인연의 물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 이 글은 <경향잡지> 2022년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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