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선교를 사람의 일로 바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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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선교를 사람의 일로 바꾸지 마라
  • 최태선
  • 승인 2022.02.2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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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내겐 가끔씩 사람들이 찾아온다. 나 같은 사람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2년 전 극동방송의 한 피디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피디라는 직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히 멋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렇다. 인기가 있고 멋이 있다는 것은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바로 돈과 연결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피디라는 직업 소개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인다. 기자라고 하면 경계심을 가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그를 만나고 난 이후에도 그 피디가 나를 찾아왔던 정확한 이유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대화 내용을 복기해 보아도 딱히 그것을 정확하게 설정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의 이야기 중 김장환 목사에 대한 불만과 그에 저항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던 것으로 유추해보면 자신의 그런 태도가 신앙적이라는 사실을 내게서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와의 대화내용 중 그가 확신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김장환 목사가 아무리 부당해도 극동방송이 내보내는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는 극동방송이 내보내는 복음의 메시지는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나에게 반문했다. 나는 그런 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복음은 무책임하게 던지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생명을 구하고 있다는 확신을 꺾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방송으로 보내는 복음이 정말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복음은 육체를 필요로 한다. 요즘 내가 자주 언급하는 아비투스가 되어야 한다. 복음은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복음대로 살지 않으면서 복음을 말하는 것처럼 해로운 것도 없다. 그것은 어쩌면 발아할지도 모르는 씨앗이 아니라 반드시 악을 잉태하게 만드는 악한 행위이다. 지금이라도 그리스도인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복음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복음 이야기는 절대로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내 생각은 확고하다. 복음대로 살지 않으면서 복음을 말로 전하는 일이야말로 복음을 무력화시키는 첩경이다. 전에는 내가 실천하지 못하는 복음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실패했지만 듣는 여러분은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도 전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복음은 육체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말씀이 되어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복음은 세상에서 살아난다.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한다. 방송으로 내보내는 복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또 설사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나 회사가 있다면 그것은 무익하다. 하느님 나라의 일은 그렇다. 목표가 아무리 거룩해도 그것을 이루는 수단이나 과정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일이 무엇이건 그것은 하느님과 상관이 없다.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이제부터 밝히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이전에도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수적 성장을 위한 수단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느님을 예배했고, 하느님은 그 예배자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변화시키셨고, 외부인들은 그들의 삶과 공동체가 하느님의 성품을 반영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성장은 신비, 즉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권능’의 산물이었다. 성장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접근법은 끈기 있는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선교(전도)의 본질(혹은 定議)이자 오직 유일한 복음전파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그것을 하느님의 선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 선교란 단순한 복음전파가 아니라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권능”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선교란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대로 살아 변화되고 형성된 자신들의 하느님의 성품이 반영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초기교회의 성장은 바로 그런 하느님의 일하심이었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일의 협력자가 되었던 결과였다.

선교는 그렇게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하느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바꾸었다.

“콘스탄티누스와 함께 그리스도인들은 ‘신비’에서 ‘방법’으로 넘어간다. 황제는 올바른 기독교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각종 수단과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수단과 방법 중에는 ‘인간이 나의 수단을 통해 계몽될 수 있다는 소망을 지니고’ 국가의 권력과 조작을 사용하는 것이 포함된다. 콘스탄티누스의 반사작용(아비투스)은 로마 행정가의 그것이었지, 기독교 전통에 속한 신실한 신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조급하게 그리고 방편적으로 사고했다. 그의 통치하에서 국가는 두 개의 측면을 지닌 선교 프로그램의 도구가 되었다. 한 측면은 올바른 종교를 육성하고 확립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 측면은 올바른 종교와 경쟁하는 잘못된 집단들을 벌하고 불법화하는 것이었다.”

이 내용을 읽고 또 읽어보라. 그리스도교가 어디에서 떨어진 것인가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선교를 사람의 일로 바꾸었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인 로마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의 종교정책의 핵심은 ‘일치’(homonoia)였다. 그것은 로마의 모든 이들에게 복을 내리는 신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선교 자체의 의미를 바꾸었다. 선교는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라 로마를 위한 통치수단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영화 <미션>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은 선교를 빌미로 식민지 정복을 합리화했다. 그래서 남미 인구의 대다수가 희생되었고, 아메리카 인디언들 역시 그렇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반복해서 선교가 제국의 영향력 확장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교 자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제국을 위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는 여러 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자랑스럽게 열거하며 이제 "해가 지지 않는" 교회가 되었다고 떠벌리곤 했다. 그의 말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제국이다. 열강이다.

극동방송의 김장환은 왜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반격을 하지 못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북한이 도발하면 응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의 이런 사고가 바로 제국주의의 사고라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미국에 유학을 가서 배워온 것은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제국주의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북한을 선제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윤석열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고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제국인 극동방송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그리스도교 안에서 선교가 실종되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시행되고 있는 선교는 하느님 나라의 확장이 아니라 제국의 확장이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장은 신비, 즉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권능’의 산물이었다. 성장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접근법은 끈기 있는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직 유일한 선교이다. 유감스럽지만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선교는 선교가 아니다. 오늘도 하느님은 일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하느님을 보고 그분이 하시는 일의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선교는 하느님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 아닌 그리스도인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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