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이 좋다고 예수의 제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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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이 좋다고 예수의 제자는 아니다
  • 최태선
  • 승인 2022.01.14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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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해라!”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영화나 책을 보면 하산을 하기 전에 제자가 겪어야 하는 일들은 배워야 하는 것과 관계없는 매우 하찮은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주로 허드렛일들입니다.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하는 일들은 제자가 배워야 하는 일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산할 시점이 되면 그런 일들에도 다 의미가 깃들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영적인 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나 영적 성장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일상이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런 허드렛일처럼 보였던 일들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더구나 영적인 경우에는 하산을 한 후에 하는 일이 배움과 수련을 하기 전 일상과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똑같아 보이지만 완전히 달라진 일상입니다.

모든 가르침에는 이와 같은 과정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물론 중간에 아무런 필요 없는 스승의 월권행위에서 이루어지는 권력남용이 여러 모양으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런 경우까지 전혀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장인과 도제가 되어 복음을 가르치고 배우고 전달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매우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식이라는 것을 새삼 공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중요한 복음의 전달방식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도 복음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일은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르치고 배워도 매우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고,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날 성서는 더 이상 르네 지라르가 말한 ‘산고(産苦) 속에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무지 생명의 발현이 없는 죽은 의문儀文이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자훈련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교회들에서 행해졌던 교육입니까. 그러나 본산인 교회에서조차 예수의 제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자훈련을 받은 분들 가운데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 생명의 본질과는 무관합니다. 다른 종교도, 모든 철학도, 다른 모든 학문에도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는 내포되어 있습니다.

 

‘산고(産苦) 속에 있는 텍스트’라는 표현이 절묘한 것은 그것이 바로 성서를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올바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산고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는 고통입니다. 인간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산고입니다. 그것은 온몸을 찢는 고통입니다. 성서란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빚어지고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한 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만일 새로운 생명이 그런 고통 가운데 태어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리에 버려질 것입니다. 고통이 사랑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서를 읽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포기와 단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소유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일까요. 그것을 산고에 비교한 르네 지라르는 참으로 탁월한 사람입니다. 말 그대로 그것은 산고 이외에는 적절한 비유의 대상을 찾을 수 없는 고통을 요구합니다. 욕망의 존재인 인간이 욕망을 내려놓거나 거스른다는 것은 고통 속으로 투신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가난과 비능력과 무력함을 경험하는 일은 산고라는 단어 이외에는 비교할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고통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인과 도제가 되어 복음을 가르치고 배우고 전했습니다. 초기교회가 초보신자들의 목표로 삼았던 “이교식 생활 방식에서 빠져나오는 초보 신자들의 인식의 습관과 판단 기준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꾸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산고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새 생명으로 태어나 성서가 말하는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새 사람이란 더 이상 욕망의 존재였던 옛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꿈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인식의 습관과 판단 기준이 옛 사람의 기준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냥 달라지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냥 달라지기만 했다면 언제라도 다시 옛 사람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새롭게 생긴 인식의 습관과 판단의 기준은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이교식 생활 방식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나 판단에 의해 좋은 것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좋고 기뻤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한 후에 다시 이전의 나쁜 것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게 된 것입니다. 말 그대로 그들에게 복음이 좋은 소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순히 배움을 통해 터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산고라는 고통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태어난 새 생명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새 사람이 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은 물론 어떤 박해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가지게 된 복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수입의 일부 혹은 가진 것의 일부를 헌금으로 드리고, 시간의 일부를 희생하여 예배에 참석하거나 봉사하는 데 활용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 됨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만 신실하게 잘 해도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평판을 듣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평판을 듣는 분들이 정말 예수의 제자일 수가 있을까요. 그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분들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일까요.

천천만만의 말씀입니다. 그분들의 인식의 습관과 판단 기준은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보다 돈이 더 필요하고 세상에서의 성공이 그들의 판단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은 가난을 싫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 곁에는 가지도 않으려 하는 분들이 되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장 두드러지던 특징이었던 원수나 적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적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차별과 배제를 삶의 신조로 삼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들이 아니라 악을 더 큰 악으로 갚으려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서가 더 이상 ‘산고(産苦) 속에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써의 텍스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인과 도제가 되어 겪어야 했던 쓸데없어 보였던 허드렛일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엄격한 과정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고통스런 산고의 과정 없이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모르게 된 것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은혜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장인이 있어야 도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남은 자들을 남겨 놓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공동체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 공동체에 임한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은혜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가운데 마침내 “하산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분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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