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근심어린 지상의 나그네
상태바
빈센트 반 고흐, 근심어린 지상의 나그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01.10 1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봉의 요한복음 묵상 [지상에 몸푼 말씀]-40

-임여자

거듭나게 씻고 씻어야 보이는 당신
손톱 한 끝만 부실해도
떠나버리는 당신 앞에
오늘 밤은 땟수건이 닳도록 밀었더니
온몸 달아올랐습니다

맑은 매무새로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당신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19-29)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은 언제나 힘겹고 두려운 노릇이다. 이제 예수님은 갔고, 사도들의 시대가 열리려 할 즈음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내적 확신과 용기였다. 여기서 복음적 열정도 나오는 까닭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연후에 제자들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고 전한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찾아와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었음이 분명할 터인데도 여자들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굳게 믿고 있던 제자들은 아직도 어리석은 중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판이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 20,19)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첫마디였다.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만하다는 뜻일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먼저 보여주시는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고서야 그분이 죽음에서 일어나신 것을 믿었다. 구체적 물증을 잡고서야 마리아가 이미 전했던 복음을 받아들였다.

마침 그 자리에 없었던 제자 토마는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그분의 부활을 믿을 수 없겠노라고 했다. 친절하신 예수님은 토마에게도 나타나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20,27)고 하셨다. 토마가 정말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토마는 즉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하였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의 가난한 인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고난을 겪었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아야 믿겠노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경험한다. 자신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서야 지금처럼 호의호식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보면 믿고 그렇게 자기도 살겠다고 쉽게 호언한다. 그만큼 경험은 중요한 모양이다. 그런 까닭일까? ‘감자를 먹는 사람들’(1885. 누에넨), ‘해바라기’(1888. 아를),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1889. 상 레미) 등의 대작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는 광산촌 체험을 통하여 빛나는 구원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참혹한 인간의 삶을 체험하고서야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부유한 노신사 하느님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처음부터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네덜란드 북(北) 브라반트 지역의 꽤 알려진 목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큰아버지의 소개로 여러 화상(畫商)에서 일했다. 그러나 매번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가난한 화가들의 그림을 팔아서 이문을 챙기는 그림장사에 환멸을 느끼고 주인과 싸우곤 했다. 이윽고 자신의 소명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직자가 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이모부 스트릭커 목사의 집에서 기거했다. 그 집은 상류층 주택가에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식당에는 캘빈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천장엔 은식기가 반짝반짝 빛을 냈다. 빈센트의 교사는 멘데스라는 학자였는데, 빈센트는 그의 집으로 가기 위해 예배당과 철공소, 술집과 석판인쇄소 앞을 지나다녔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공부를 해도 빈센트는 늘 허기를 느꼈다. 과연 7년 이상 신학을 공부해야만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멘데스는 새로운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집에 연해 있는 빈민가를 거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종교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 노동자들은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어. 병에 걸려도 의사를 부를 돈이 없지. 오늘 일을 해야, 그것도 중노동을 해야 내일 먹을 거리가 생기지. 이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을 생각하며 위로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야.” 그렇다면 부유한 주택가 사람들에겐 종교가 소용없다는 말인가. “그 사람들이야 좋은 옷 입을 수 있고, 안전한 지위 있고, 불행에 대비해서 돈도 저축해 두었지.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이란 부유한 노신사야. 한마디로 세상일이 뜻대로 잘 되어가는구나 하고 만족해 하는 노신사지.” 빈센트가 말을 받았다. “그들은 좀 숨막히는 사람들이군요.”

그 순간 빈센트의 마음속에는 이모부 스트릭커 목사의 교회가 떠올랐다. 그 교회 신자들은 부유하고 잘 배웠고, 또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에 대해 민감하며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트릭커 목사의 설교는 아름답고 위안을 주긴 했지만 신자들 중에는 위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빈센트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세상 속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굴뚝 청소부 같은 지상의 나그네

빈센트는 브뤼셀의 복음전도위원회에서 전도사 자격을 얻기 위해 교육을 받았으나 즉흥설교를 거절함으로써 파견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유일하게 빈센트의 자질을 인정해 준 피터센 목사의 주선으로 광산촌에 파견된다. 보리나주의 프티밤이라는 광산촌. 이 마을엔 마르카스 광업소가 있었다. 마르카스 주변엔 가난한 광부들의 오두막과 탄진을 까맣게 뒤집어쓰고 죽은 나무 몇 그루, 가시나무 울타리, 똥더미, 잿더미, 쓸모없는 석탄 무더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한눈에 모든 것이 삭막하고 황량하게 보였다. 사람들은 이곳을 ‘검은 나라’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누덕누덕 기운 옷에다 가죽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죄다 굴뚝정소부 같은 모습이었다. 석탄 먼지를 뒤집어쓴 시커먼 얼굴 위로 흰자위만 두드러져 보였다. 그래서 이들을 ‘시커먼 아가리’라고 불렀다. 그들은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갱도 안에서 보냈다. 빈센트는 그들 속에 묻혀서 생활했는데, 얼마 후 전도사 자격을 받고 ‘아이들의 집’이라고 불리는 곳에 예배당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빈센트는 오후마다, 네 살에서 여덟 살까지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읽는 법을 가르치고, 또 성서에 나오는 기초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로 그것이 그 아이들 대부분이 평생을 통해 받게 될 교육의 전부였다.

빈센트는 첫 예배를 위해 난롯불을 지필 석탄을 주워 왔다. 광부의 아내들과 딸들이 그를 도와주었는데, 그들은 함께 부대자루를 들고 테리산 꼭대기에 올라가 석탄 부스러기를 얻어 온 것이다. 그날 빈센트의 첫 예배는 성공적이었다. “우리가 이 지상의 나그네다라는 믿음은,” 빈센트는 검은 얼굴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고 또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례자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르는 머나먼 여행길입니다. …슬픔은 기쁨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뛰어오를 듯한 환희 가운데도 서러움은 있는 법이지요. 잔칫집보다는 초상집에 가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슬픔을 통해 마음의 모습이 더욱 예뻐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당신에게 간구하오니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주옵소서. 우리에게 가난도 부(富)함도 주지 마시고 다만 우리에게 합당한 양식으로 우리를 먹여주소서.”

광부들은 위안을 받았고, 하느님이 곁에 계심을 느끼는 듯했다. 그날 예배가 광부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까닭은 빈센트의 얼굴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검댕투성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비누는 사치품이었고, 빈센트는 예배 전에 제대로 얼굴을 닦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빈센트는 갱도에 직접 들어가 보고, 살인적인 지옥을 경험했다. 돌아오는 길에 더러운 골목길을 지나 광부 데크뤼크의 오두막으로 갔다. 여섯 살 먹은 사내애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빈혈 때문에 창백했다. 이 아이도 두 살을 더 먹으면 매일 새벽 세 시에 탄광으로 내려가 삽질을 하면서 탄차에 석탄을 실을 것이다. 데크뤼크 아내가 돌아왔다. 손과 얼굴이 새카맸다. 그녀가 건네준 커피는 차갑고 설탕도 없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그 착한 여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끝까지 다 마셨다.

집안엔 석탄 부스러기조차 없어서 난로를 뗄 수 없었다. 빈센트는 이 정도로 비참한 삶은 처음 보았다. 최초로 의구심이 떠올랐다. 어린 것들이 얼어 죽어가고 있는데 은혜를 달라는 기도와 복음이 무슨 소용인가.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 빈센트는 호주머니를 털어 몇 프랑의 돈을 집어주었다. “아이들에게 털내의를 사서 입히세요.” 이것마저도 사실상 헛된 것임을 빈센트는 알았다. 다른 수백 명의 아이들도 보리나주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데크뤼크의 아이들도 그 털내의가 낡아 떨어지면 곧 또다시 추위에 떨 것이다.

빈센트는 하숙집을 향해 비탈길을 올라갔다. 그 집은 친절한 드니의 빵집이었다. 빵집 부엌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드니 부인이 그에게 씻을 물을 데워주고, 남겨두었던 토끼고기 스튜로 점심을 근사하게 차려주었다. 빈센트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뱃속이 따뜻하고 포만했다. 침대는 넓고 편안했다. 시트는 깨끗했고 베갯잇이 씌워져 있었다. 그는 서랍장을 열고 차곡차곡 정리된 셔츠와 속옷, 양말과 조끼를 뒤적거려 보았다. 양복장에는 구두 두 켤레와 따스한 외투가 단정히 걸려 있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이 거짓말쟁이이며 비열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광부들에게는 가난의 덕을 설교하면서 자신은 안락과 풍요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멋대로 지껄이는 위선자에 불과했다. 그의 종교는 무익하고 쓸모없는 것이었다. 광부들이 그를 경멸하고 보리나주에서 내쫓아야 마땅했다.

그는 광부들과 운명을 함께 나누는 척하면서 이곳에 따스하고 아름다운 옷과 안락한 침대를 가지고 있었고 또 광부들이 1주일 동안 먹는 것보다 더 많은 음식을 한 끼에 먹었다는데 놀랐다. 스스로 노동한 대가로 편안함을 누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입심 좋게 거짓말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선량한 사람으로 행세했을 따름이었다. 그는 또다시 실패한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비참하게!

 

 

더러운 개들을 돌려보내!

빈센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방을 챙겨 판자로 지어진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집을 안내했던 아낙네가 말했다. “하지만 빈센트 목사님, 여기서 사실 수 없으실 텐데요.”, “왜 못 삽니까?”, “너무 누추하잖아요. 제가 있는 곳보다 더 지독한 걸요. 프티밤에서 제일 고약한 집이에요.”, “바로 그것 때문에 전 이 집을 얻은 겁니다.” 이제 그는 광부들과 똑같은 집에서 살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침대에서 잤다.

그는 자신의 옷 한 벌을 ‘파손 주의’라고 인쇄된 자루를 등에 두른 노인에게 주었다. 속옷과 셔츠들은 겉옷으로 만들어 입도록 나눠주고 양말은 마르카스 탄광에서 일하는 결핵환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따뜻한 외투는 임신한 여자에게 주었는데, 며칠 전 갱이 무너져 남편을 잃은 그 여자는 두 어린 것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편 대신 탄광일을 해야 했다. ‘아이들의 집’은 닫아버렸다. 빈센트는 오두막을 방문하면서 예배를 가졌다. 그리고 치료도 해주고 몸도 씻겨주고, 뜨거운 음식과 약도 만들어 주는 실제적인 의무에 전념했다. 마침내는 성경책을 펴볼 시간조차 낼 수가 없었다. 광부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사치품으로 변해버렸다.

얼마 후 빈센트는 탄광사고로 죽은 57명의 영혼을 위해 장례식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백여 명 정도의 광부와 가족들이 빈센트의 작은 오두막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목이 타는 듯 열에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침묵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굶주림과 좌절로 야위고 무참히 꺾여버린 광부들은 마치 하느님을 바라보듯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때마침 브 뤼셀에서 복음전도위원회 목사들이 방문해서 이 광경을 보고는 질겁을 했다. “놀랍군! 그저 놀라울 따름이야!”

불룩한 배를 두드리면서 어느 목사가 소리쳤다. “아프리카 정글에라도 온 것으로 생각하나 보군.” 그 목사는 사람들을 헤치고 빈센트 곁으로 다가가 낮고 격한 목소리로 “이 더러운 개들을 돌려보내!” 하고 말했다. “하지만 예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요.” 하고 빈센트가 말했다. “예배는 상관없어. 모두 돌려보내라구.” “도대체 자네 무슨 짓을 한 건가? 이런 굴속에서 예배를 드리다니, 어쩌겠다는 건가? 이게 기독교 성직자에게 어울리는 행동인가? 이런 식의 짓거리를 하다니, 자네 완전히 미쳤군? 우리 교회를 모독할 생각인가?”

 

빈센트 반 고흐, 절망뿐인 세상에서 하느님 없이 인간을 그리다

빈센트는 이제 자신이 광부들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하느님조차 그들을 돕지 못했다. 하느님 말씀을 그들 가슴에 심어주기 위해서 보리나주에 왔건만, 하느님에 관한 그 모든 이야기는 어린애 같은 도피로 느껴졌다. 그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춥고 캄캄한 밤에 무서움에 떠는 외로운 인간이 그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필사적인 거짓말이었다.

신은 없었다. 결코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빈센트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이제 빈센트는 더 이상 광부들의 오두막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들의 생활에도 끼여들지 않았다. 그들도 빈센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걸 삼갔다. 그러던 어느날 빈센트는 빈손, 빈 마음으로 탄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모자를 푹 눌러쓴 늙은 광부 하나가 정문을 빠져나왔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등은 웅크린 채 광부는 뼈만 남은 무릎을 절걱거리며 걸어갔다. 그 남자의 어떤 점이,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빈센트의 마음을 끌었다. 그는 무심하게 연필 토막을 꺼냈다. 그리고 그 자그마한 물체가 검은 들판 너머로 타박타박 걸어가는 모습을 재빠른 손놀림으로 스케치했다. 다시금 그는 광부들의 오두막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경 대신에 도화지와 크레용을 든 채였다.

광부들은 전과 똑같이 그를 보고 반가워했다. 흙바닥에서 노는 아이들, 난로 위에 몸을 굽히고 있는 아낙네들, 하루의 일이 끝나고 식구들이 저녁을 먹는 모습을 스케치했다. 높다란 굴뚝들이 서 있는 탄광과 검은 들판, 골짜기를 가로지른 소나무숲과 파튀라즈 근방에서 밭을 가는 농부들을 그렸다. 빈센트는 제 그림이 오히려 정직하게 광부들에게 생기를 주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다. 스스로 사람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만한 영혼이 주어진 것이다. 그렇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탄생하기 시작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