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선행에 스스로 도취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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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행에 스스로 도취되지 않으려면
  • 최태선
  • 승인 2021.12.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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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올해 내가 가장 잘못한 일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올해 금기 하나를 깼다.
남의 주머니를 빌어(털어) 선행을 하는 것이다.

기사를 하나 보았다. 필리핀에서 온 여성노동자의 이야기였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수년 간 한국에 와 모진 노동을 했지만 돈 한 푼 없이 불법체류자가 되어 쫓겨나게 된 이야기이다. 정말 화가 났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그분에게 무엇이라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일을 주제로 글을 쓰고 모금을 했다. 몇몇 분들이 그 일에 동참했다. 그래서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한 단체를 통해 그분에게 얼마간의 돈을 전해드릴 수 있었다. 모른다. 우리가 보낸 돈에서 얼마가 그분에게 전달되었는지, 그분의 소감도 어땠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한 것이 뿌듯했다. 사실 내가 모금을 하면 정말 모금에 참여하는 분이 있을까 하는 곁가지도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동참해준 분들이 계셨다. 이런 일에서는 언제나 그렇지만 전혀 예상 못한 분들이 동참했고 동참해주신 분들에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내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일이었다. 나는 결코 남의 주머니를 빌어 선행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벌써 오래 전부터 결심하고 실천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내가 할 수 없을 때 나는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내 능력과 내 소유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성서에서는 그 상태를 약함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시작되고 하느님께서 일하시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가장 먼저는 내 주머니를 모두 비우는 것이다. 거기를 지나 조금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금식 하는 것이다. 물론 진짜 금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내 필요를 내려놓고 불편이나 고통을 감수하는 모든 노력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애통해 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나의 애통해 함을 들으신다. 우리가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 애통함을 해결해주신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무슨 일에서도 먼저 자기 힘을 의지하게 된다.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선행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영적으로 해로운 일이 된다. 순기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있다.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방식이다.

세상의 방식으로 선한 일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아가 부푼다. 그리고 자기 의라는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그러나 제 힘이 곧 하느님이라고 여기는 이 죄인들도 마침내 바람처럼 사라져서 없어질 것이다.”

인간은 힘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하느님으로 여기게 된다. 다만 바빌로니아 제국만이 아니다. 나라들만이 아니다. 누구건 힘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이 커지면 그것을 하느님이라 여기게 된다. 예외가 없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가는 길이고 세상의 방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는다. 자신의 선행에 스스로 도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행의 중심에 선 자신에 도취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많은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해서도 안 된다. 어떻게 하든 자신을 비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성공에서 물러나야 하고, 자신이 한 일을 감추어야 한다.

나는 오래 전에 이것을 자끄 엘륄에게서 배웠다. 그리스도인은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그것을 자끄 엘륄은 그리스도인의 선전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선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엘륄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의 삶의 지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인간은 일을 통해 커진다. 생각해보라. 일이 커지면 인간이 커지지 않는가. 인간이 큰일을 해도 되는 오직 유일한 길이 바로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에 열심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알려지지 않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알려진 후에는 얼른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은 자아가 부풀고 자기 의라는 치명적인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일을 세이비어처치의 고든 코스비 목사님이 이루어내셨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결코 세이비어처치의 중심이 되지도 않으셨고, 많은 일이나 더 큰 일을 위해 선전을 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그분은 자신의 교회 교인들이 초기교회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일에 몰두했다. 실제로 세이비어교회 정식교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어쨌든 내겐 좋은 경험이었다. 내가 혼자라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아니 무슨 일이라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무력해져야 하느님이 일하실 수 있다. 내가 애통해 할 때 하느님이 움직이신다. 그분이 일하시면 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내가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애통해하는 그 일을 하느님이 완결하셨다는 의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난한 사람은 늘 우리 가운데 있다. 그분들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구원자들이시다. 가난한 사람들이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는다. 나자로의 이야기를 음미해보라. 거지 나자로가 한 일이 무엇인가. 그는 다만 가난하게 살았을 뿐이다. 그런 그가 어떤 말을 들었는가. 누구의 품에 안겼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이것이 천국(하느님 나라)의 신학이고 예수님의 신학이다. 하느님 백성은 세상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면 안 된다. 누릴 수 있는 호사를 온갖 괴로움을 없애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천국의 잔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생각을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올해 모금을 해보았다. 그 일은 올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못한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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