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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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교회
  • 최태선
  • 승인 2021.12.0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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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수수료 30%. 나는 이런 내용을 볼 때 화가 난다. 노인들이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지하철 택배를 할 때 일감을 나누어주는 사장이 떼는 수수료가 30%라고 한다. 이 일도 일종의 플랫폼 일자리인 것이다. 사장은 가만히 앉아서 수수료 30%를 먹는다.

물론 순기능이 없지 않다. 일하는 노인들은 그렇게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사장에게 고마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악랄하다. 특히 노인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많은 수수료를 떼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노인들은 당연히 노동자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것을 악용해 더 많은 수수료를 떼는 것이다. 마치 상처를 파고드는 병균과 같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기사를 보면 나는 화가 난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는 사장보다 이 땅에 그토록 많은 교회들을 향해 더 많이 화가 난다. 도대체 교회란 무얼 하는 곳인가. 구원팔이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일을 하면서라도 노인들과 같은 지극히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노력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그 많은 이중직을 한다는 목사들 가운데는 이런 플랫폼을 운영하는 이가 없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기왕 이중직을 가지려면 이런 플랫폼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아니 이런 플랫폼 일 자체가 교회가 아닐까.

노인들에게 일거리를 나누어주는 일을 하는 사장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일까. 알 수 없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 중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없을까. 그런 일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수수료가 30%가 아니라 노인들이 하루 벌어갈 수 있는 돈과 같은 정도의 수입을 가지는 사장이 될 수는 없을까. 아니 조금 더 가져서 다른 사람보다 노동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노인 일꾼을 배려하는 일에 사용할 수는 없을까.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너라도 나서서 그 일을 해야지, 그런 말만 하고 앉아있느냐는 질책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는 네가 하고 있는 일은 도대체 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내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그 일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쁨으로 그 일을 할 것 같다. 지금이라도 주님이 내 걸음을 그리로 인도하신다면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일자리를 창출하는 교회”에 대해 여러 번 글을 썼다. 교회의 일자리 창출은 교회가 처음부터 애써온 일 중에 하나이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줄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초기교회가 일자리 창출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예수님께서 하신 포도원 품꾼들 이야기는 얼마나 자세하게 하느님 나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가. 그것이 죽은 후에 있을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정보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포도원 주인과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하고 품꾼이라면 노동의 능력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기꺼이 동일임금을 받는 것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이다. 하루 일이 끝나면 모두가 한 데나리온이라는 같은 임금을 받는다.

특히 포도원 주인은 그 일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기꺼이 불이익을 감수한다. 어떤 사업가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치 품삯을 주는가. 그것은 노동자들의 불평등이 아니라 사업가의 불이익 감수이다. 그러니까 사업가와 품꾼들 모두 오늘날의 사고와 다른 사고를 가져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런 성서의 이야기들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가.

나는 윤석열이 노동과 관련하여 연일 폭탄과 같은 발언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주 120시간이라도 일하기 원한다면 일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든지 주 52시간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던지 재해 현장을 방문해서 피해자 본인의 잘못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 사람이 살아온 세상에서는 그런 것이 질서로 인식된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에서 나와 적어도 한 나라를 운영해보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앞으로 자신이 일해야 할 세상은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왔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라는 것 정도의 인식의 전환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사람을 나서서 지지한다는 선포를 한 일군의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오늘날의 교회가 복음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에 반하는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 약자들을 보호하려는 정부를 공산주의로 몰아붙이는가. 소수자들에게 차별 받지 않는 공정한 대우를 받게 하자는 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붕괴시킨다는 것인가. 더구나 교회가 나서서 시장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교회 스스로 맘몬의 노예로 살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결국 노인 지하철 택배노동자들에게 30%라는 악질적인 수수료를 뗄 수 있는 것은 오늘날 방향을 잃은 그리스도교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를 해왔다. 특히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님이 <사선을 넘어서>라는 책의 인세를 모두(당시의 일억은 어마어마한 액수다) 협동조합을 세우는 일에 쏟아 부었다는 사실에 공감과 함께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다.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님이 하신 협동조합 일은 하느님 나라 운동이었다. 그분이 하신 협동조합은 품꾼들이 공평하게 나누는 일의 실천이었고 나아가 불공평을 정의로 주장하는 사업가들(세상)에 대항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동대문종합시장의 노인 지하철 택배 일이 그런 노동조합으로 운영될 수 있다면 좋겠다. 노동조합이 아니라면 그 일이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될 수 있다면 좋겠다. 누군가 그 일에 정통한 그리스도인들이 그 일을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주인이나 품꾼이 될 수 있다. 품꾼의 입장에서 모두가 함께 일하고 모두가 같은 품삯을 받는 것에 동의하고 나아가 그 일을 하느님 나라의 일로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주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사회적 기업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수익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라는 목사가 낯설게 보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 일이 내가 하는 일이고 주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신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일하지 못하는 노숙자 선생님들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것이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분들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만으로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분들도 시설이 아니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보육원을 떠나야 하는 청(소)년들도 걱정을 하지 않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하느님 나라 운동이 구원의 첩경이라는 사실을 목사들은 물론 교회에 나가는 분들 모두가 깨달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 깨달은 분들은 수수료 30%라는 이야기에 분노가 치솟아야 한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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