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주부도(極主婦道)로 일구는 하느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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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주부도(極主婦道)로 일구는 하느님 나라
  • 이원영
  • 승인 2021.10.2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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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코로나19 감염의 우려는 작은 소동으로 끝났다. 어제 딸아이가 받은 코로나19 검사결과는 음성이라고 연락이 왔다. 아내는 9시까지 출근을 미루다 소식을 듣고 서둘러 나갔다. 아이도 비대면수업에 들어갔다.

아내는 올초부터 장애인근로지원인으로 일하다 몇 달 전부터 노동인권센터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내의 직장생활과 나의 농사연수로 집안일을 서로 미뤄서 주말이 되어야 청소와 정리를 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집에 있으니 주부로 생활해야 한다. 더구나 아이도 한주간 집에서 생활하니 청소, 빨래, 식사를 책임져야 한다.

추위가 누그러진 오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먼지를 털고 집을 정리한 후 바닥을 청소했다.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고민으로 가득했는데 복잡한 걱정거리를 날리기엔 청소만큼 좋은 일이 없다.

늦은 아침을 위해 냉장고를 뒤지니 얼린 모닝빵 두 개가 나왔다. 전자렌지에 데우니 겉은 젖고 속은 바게트처럼 딱딱해졌다. 녀석을 먹거리로 살리기 위해 칼로 썰었다. 장말 바케트처럼 딱딱하다. 토스트처럼 후라이팬에 살짝 구웠다. 마늘을 칼로 다진 후 달궈진 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볶은 후 소금과 설탕을 첨가한 후 자른 모닝빵 위에 올렸다. 베이컨 토마토 스프를 다시 소환해서 끓인 후 간단한 식사를 준비했다. 맛있게 먹는 모습에 배가 부르다. 아이는 점심으로 순두부 열라면을 주문했다. 수업이 끝나면 주민등록증을 위한 증명사진을 찍으러 가야 한다. 아이가 벌써 성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하루종일 딸과 생활하니 옛 추억이 스친다. 딸이 태어날 때 나는 신학대학원생이었고 아내는 속기사로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내가 경제를 책임지니 집에 있는 날에는 가사를 맡아야 했다. 방학이 되면서 온전히 육아를 맡았다. 이유식을 시작하는 때라 이유식책을 보면서 매번 다른 음식을 준비했고 집안일을 했다. 하루를 마치면 육아와 가사에 지쳐 골아떨어졌다. 아이를 돌보는 기쁨과 함께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는 슬픔이 공존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주부우울증이 왜 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일상이 무료해지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곤 하는데 일본애니 <극주부도>를 만났다. 암흑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조폭이 과거를 청산하고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극주부도란 제목처럼 최고(극)의 주부가 되는 길을 수련하듯 살아간다. 한동안 나도 전업주부로 살아가야 하기에 재미있게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대학> 1장에 이런 내용이 있다.

3.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일의 선후를 알면 도에 가깝다.

4. 예전에 온 세상에 밝은 덕을 밝히고자 한 사람은 먼저 자신의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집안을 반듯하게 하였다. 자신의 집안을 반듯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몸을 닦았다. 자신의 몸을 닦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로 잡았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 잡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였다.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앎을 극한까지 확충시켰다. 그와 같은 앎의 확충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

5. 사물이 탐구된 뒤에 앎에 도달한다. 앎에 도달한 뒤에 의지가 성실하게 된다. 의지가 성실하게 된 뒤에 마음이 올바르게 된다. 마음이 올바르게 된 뒤에 몸이 닦여진다. 몸이 닦여진 뒤에 집안이 반듯해진다. 집안이 반듯해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진다.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온 세상이 태평해진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성서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오는데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 일을 맡기겠다고 칭찬하는 내용이 있다. 적은 일, 보잘 것 없는 일상을 놓치면 기초가 부실한 건축물처럼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 동안 얼마나 일상의 삶을 소홀하였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어제 읽기 시작한 <더 나은 삶을 향한 여행, 공동체>에서 옮긴이 황대권 선생님은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유교 사회의 체면 문화와 결부되어 이젠 한국인의 국민적 기질이 되지 않았나 싶다. 성에 대해 가장 고루한 의식을 견지하고 있으면서도 성매매가 손쉽게 일어나며, 정치인의 언행불일치가 정치적 능력으로까지 인식된다. 직장에서는 무자비한 상사가 가정에서는 더 없이 자상한 아빠가 되며, 반대로 직장에서는 무능한 직원이 가정에서는 지극히 폭력적인 가장으로 돌변한다. 정말이지 우리 사회에 남녀를 불문하고 밖에서는 이런저런 능력과 품성으로 인해 존경받으면서도 안에서는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껍데기를 치장하느라 내면을 가꾸지 못한 인생, 회칠한 무덤처럼 속이 썩어 냄새나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성장과 성공만이 미덕이 된 이 땅에서 자신을 돌보지 못한 인간으로 인해 세상은 아비규환이 되어간다.

일상이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극주부도의 실천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집안과 텃밭을 일구며 태평세상,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려야겠다.

오늘도 모든 이에게 평화를…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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