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골이가 반가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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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골이가 반가운 이유는?
  • 이원영
  • 승인 2021.10.18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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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Gustav Klimt, Death and Life, 1915 ©Leopold Museum, Vienna
Gustav Klimt, Death and Life, 1915 ©Leopold Museum, Vienna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 딸은 12시간 이상 잘 수 있다고 한다. 정말 12시간 이상 잘 때도 있다. 나도 잠이 부족할 때가 있었다. 늘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자꾸 밤잠을 설친다. 2시간마다 잠에서 깨고 심하면 1시간마다 깬다. 덕분에 잠이 많이 줄었다.

새벽에 뜬 눈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잠에서 깨면 아내의 얕은 코골이를 듣는다.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없는 나는 괜히 아내의 코골이를 탓한다. 갑자기 멈춰버린 코골이로 아내의 코끝에 손가락을 댄다.

죽은 사람을 보면서 ‘깊은 잠에 든 것 같다’는 표현을 한다. 성서에도 죽은 이를 잔다고 말한다. 잠들었다는 말은 잠에서 깰 것이란 전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성서에서 죽은 이를 잠들었다고 표현하는 말에는 부활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예수가 죽은 이를 살리는 기적 앞에 잔다고 말한 부분이 있다.

주말이면 아내와 딸은 늦잠을 잔다. 밀린 숙제를 하듯 못 본 드라마, 웹소설, 웹툰을 새벽까지 본 결과다. 아침에 일어나 텃밭에 나갔다 들어오면 잠들어 있는 아내와 딸을 본다. 코골이를 하면 자고 있구나 싶지만 숨소리도 없이 잠든 모습을 보면 꼭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 불안한 마음에 숨결을 손가락으로 확인한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물질육체, 영혼, 정신으로 이루어진다. 영혼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로 구분하는데 에테르체는 물질육체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고 아스트랄체는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인지, 기억, 사고의 역할을 한다.

슈타이너의 인지학에서는 인간이 잠을 잘 때 아스트랄체는 육체를 빠져나가 정신의 세계를 왕래하는데 이 때 사람이 꿈을 꾼다고 한다. 그래서 잠은 휴식이며 짧은 죽음이라고도 말한다. 잠이 많은 성장기의 아이들은 아직 아스트랄체가 정신세계에서 땅(물질육체)으로 내려오지 않아 몽상적이고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몸으로 하는 일을 귀찮아 한다고 본다.

인지학적 관점에서 수면을 짧은 죽음으로 보지 않아도 죽은 것처럼 자는 건 사실이다. 깨워도 잘 일어나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숨소리까지 들리지 않으면 죽은 건 아닐까 하고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 때 코골이는 반가운 소리다. 살아있다는 확증이기 때문이다.

잠 못드는 새벽. 반가운 아내의 코골이를 들으며 책장을 넘긴다. 생태여성주의와 관련된 내용이다. 책의 내용과 아내의 코골이를 들으며 고단한 일과 후 단잠에 빠진 모든 여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아스트랄체에 실어 보낸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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