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빵과 포도주'라는 소설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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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빵과 포도주'라는 소설을 읽고서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10.1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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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도로시 데이에게 가장 큰 투쟁은 본능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한데 모으는 것이었으며, 불시에 찾아오는 탐욕과 부주의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한 일상 생활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지적 생활이나 종교적 삶을 피하는 것이기도 했다. 수년동안 나는 여러번 <빵과 포도주>에서 크리스티나한테 한 스피나의 말들을 도로시 데이가 목소리를 떨면서 감정에 벅차 읽는 것을 앉아서 들었다.

한 농부가 그의 동물적인 본능을 극복하는데 성공한다면 그는 프란치스꼬회 수도승이 된다. 한 소녀가 그의 육체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성공한다면 그는 수녀가 된다: 당신은 그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가? 당신은 관상으로 물러나버린 영성과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지배당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이 분리가 우리의 모든 병폐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는 맑스주의자 스피나를 무척 사랑했는데 스피나는 돈 파울로 신부가 되고 다른 장면에서 그의 사제로서의 삶이 묘사된다. 스피나는 공공시위에 대해 지치고 정치적인 설교에 대해서도 피곤함을 느낀다. 그는 다른 사람과 직접적으로 친밀함을 나누고자 한다. “두 남자들은 함께 외로웠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자주 멈추면서 조용히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파울로 신부는 “맨발로 형편없이 옷을 입고 키가 크며 마른” 한 젊은이를 만난다. 그는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에 산다. 그들은 그곳에 가고, 잠시동안 사제는 그의 옛 자아, 구원자인 맑스주의자 자아로 돌아가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꿈을 격찬한다 ­ 그러나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 은총의 개입, 한 사람이 또다른 한 사람과 함께 하면서 인간이해를 향한 여정에 있어 정치를 어떤 부차적인 것쯤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개입이 벌어진다. 실로네의 이런 말들 역시 도로시 데이의 눈을 크게 뜨도록 자극하였다.

젊은 청년은 옥수수 빵을 자르고 토마토 두 조각과 양파를 끼워서 다른 빵 한 조각과 함께 신부에게 주었다. 이것은 청년의 부어오르고 상처자국이 있는 손들로 만들어진 땅의 흔적들이었다. 그가 빵을 자른 칼은 마치 모든 것을 위해 쓰여지는 것 같았다. 돈 파울로는 눈을 감고 빵을 삼키려고 애썼다.

“저기 땅이 있어요,” 사제가 말했다, “거대한 땅이지요. 그곳에서 시골의 농부들이 도시의 노동자들과 합류했어요.”

한편 마타레나(여관 주인)는 숙박객을 찾아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침내 마타레나는 그를 찾아냈다. “벌써 한시간 전에 저녁이 준비되었습니다” 하고 마타레나가 말했다.

“난 배고프지 않아요.” 돈 파울로가 말했다. “여관으로 돌아 가세요. 내 친구와 나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아요.”

“하지만 그 청년이 귀머거리이고 벙어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단지 손짓만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까?” 라고 마타레나가 물었다.

젊은 청년은 그의 오두막집 문턱에, 신부 옆에 앉아 있었다. 돈 파울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눈이 천천히 눈물로 가득차는 것을 보았다. “상관없어요. 여관으로 돌아가세요. 난 배고프지 않습니다.”라고 사제가 마타레나에게 말했다.

두 남자들은 오막살이 문턱에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언변의 선물을 가진 사람도 이제는 침묵하고 있다. 가끔씩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 웃었다. 낮이 사라지고 저녁이 되었고 밤이 떨어졌다. 돈 파울로는 한두 번 기침을 했다. 귀머거리­벙어리 청년이 일어났고 짚으로 된 그의 잠자리 위에 있었던 담요를 걷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담요를 손님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돈 파울로는 이 청년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러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며, 따라서 사제는 일어났고 청년과 악수를 나누면서 잘 자라고 인사했다.

위의 글들을 읽고 난 후, 도로시 데이는 간단한 가구가 있는 그의 방 전체를 둘러보았다. 방은 때때로 거리의 소음이나 동료일꾼들의 목소리 때문에 그 고요함이 깨지곤 했다. 도로시 데이는, 그의 마음이 지나간 시절에 대해 방황하며 더 편안하고 더 사적인 숙소를 기억하고,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 자신에게 물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때때로 그의 의심이나 갈망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 도로시 데이는 “저 기계”(녹음기)가 녹음하지 않도록 나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특히 더 열리고 솔직하게 표현했던 때는 자주 문학에 관한 토론을 할 때였다. <빵과 포도주>를 가까이 두고, 그가 이 책에 심취해 있을 때에 특히 우리는 마음에 와닿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그가 아주 즐겁게 실로네의 수필인 <친구들의 선택>의 한 구절을 나에게 읽어 주었다:

내가 설명하는 영적인 조건은 결코 자랑할만한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의 소유도 아닌 곳에, 터진 공간 속에 우연히 존재하고 있는 피난민들의 쉼터 같은 곳이다. 당신은 피난민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무엇을 하리라고 기대하는가? 그들은 가장 좋은 시간을 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들려주며 보낸다. 이야기들은 확실히 별로 재미가 없을 것이지만, 그들은 어째든 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도로시 데이 자신이 매우 멋진 이야기꾼이었으며 특히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에 그랬다. 또한 그는 기도할 때 조용히 앉아 손을 성서에 얹고서 대화가 그의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재고하기 위하여 대화 한 가운데에서 잠시 멈추거나 조용한 순간을 갖기도 하였다.

“<빵과 포도주>나 <카탈로니아에게 경의를>의 구절들을 읽을 때면,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전혀 읽지 못한다는 사실, 그들이 놓쳤을 부분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난 그런 사람들과 나머지 삶을 함께 보내며 그들에게 <빵과 포도주>에서처럼 빵과 포도주를 주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그들과 함께 앉아서 내가 믿는 것, 즉 하느님께서 그들을 지켜보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이념들, 그들의 제안들을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남들에게 읽히려고 쓰고 있으며, 우리가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을 세상에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실로네는 벙어리­귀머거리 그 청년이 스피나에게 아주 중요한 어떤 것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같이 말하고 쓰는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 긴 고통을 겪고있는 인간의 침묵이라는 사실입니다.

젊었을 때 나는 한 사람을 알았습니다. 그는 귀머거리도 벙어리도 아니었지만 실로네가 <빵과 포도주>에서 그 청년의 모습을 그렸던 것처럼 키가 크고 말랐으며 야생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난 그 사람에 대해 한 마디도 쓰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그 남자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난 그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파티를 할 적이면 나에게 다가와서 우리가 똑같이 잃어버린 영혼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영혼을 찾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나는 다시 영혼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가 아프고 곧 죽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는 정말로 말랐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곧 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미적거리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다만 이 세상에서 그가 백년을 살아도 이 미적거리는 습관을 극복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웃었지만, 그의 눈을 보면서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절실하게 발견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또한 발견되기를 영원히 미적거리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그에게 발견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나는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건 우리의 사랑의 대화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너무나 끌렸으며, 그의 얼굴에는 어떤 마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섬세한 그의 모습, 약간 회색빛을 띠던 그의 머리칼 등 ( 그는 겨우 25살이었습니다. 우리 둘 다 25살이었지요 ). 난 그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고 함께 살며 결혼해서 그의 아이를 갖는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발견될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긴 산보에 초대했습니다. 그는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말 할 꺼리도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둘에 대한 존중으로 침묵하곤 했습니다. 그건 우리 둘을 서로에게 끌리게 만드는 사랑의 침묵이었습니다. 내가 이 부분에서 좀 헤매고 있네요. 그건 일종의 성적인 침묵 같았습니다. 우리 안에 이 모든 말들을 간직하는 모습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거나 그저 도시를 오랫동안 걸으며 돌아다니고 무언가 바라볼 것을 발견하면 열심히 바라보는 우리들이었습니다.

한번은 동쪽 강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거룻배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그것이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면서 우리는 그것을 따라갔습니다. 갈매기가 배에 다가갔습니다. ­ 날아오르고 떨어지고 오르고 떨어지면서 마침내 배에 내려앉아 먹이를 먹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다시 날아오르고 있었지요. 그리고 나서 우리는 한 노인 부부가 앉아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은 뛰어 놀고 그러다가 서로 티격거리고 비위를 맞추기도 하며 들뜨고 피곤해져서 늘어지고 멎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눈을 닦거나 하품을 하고 팔에서 먼지를 털어냅니다.

갑자기 잠시동안 그들은 혼자가 됩니다, 다시 작은 군중 속에 혹은 집단 속에 파묻히기 전에. 아, 그리고 장례 행렬이 기억납니다. 2, 3개의 차에 온통 꽃이 가득찼고 끝없이 많은 사람들이 따라 갑니다. 차들 그리고 말이 끄는 마차들도 따라갑니다. 눈물, 슬픔, 그리고 한 소녀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소녀는 그때 10살 정도였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죽은 사람은 천당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내 친구는 소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아주 크고 따뜻한 웃음을 보냅니다. 소녀도 그것을 보고 응답합니다. 그에게, 그의 사랑에, 소녀가 지닌 믿음에 대한 그의 경탄에 ­ 난 이제야 이 모든 것을 깨닫네요! ­ 응답하면서 소녀는 이렇게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그곳에 가게 될 것이죠?’ 난 울고 싶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했어요. 마침내 그는 우리의 마술 같은 침묵을 깨고 ‘나도 그렇게 희망한다’고 짤막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때 그는 마치 사랑하는 주님이 그에게 오셔서 그를 데려가 달라고, 그가 원하는 어떤 때라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그 큰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마치도 그 소녀에게서 주님의 천사를 본 것처럼, 우리가 그분께 믿음을 두고 신뢰하라는 전능하신 분의 메시지를 가져온 천사를 본 것처럼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가까워 졌어요. 난 그와 사랑에 빠졌어요. 난 그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아닙니다, 그의 침묵은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침묵이 아니었어요. 그의 침묵은 내가 <긴 외로움>에서 묘사했던 포스터의 그런 침묵이 아니었어요. 실제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침묵이었어요, 내가 <빵과 포도주>를 읽기 전까지는.

스피나와 그 벙어리­귀머거리 청년사이의 구절들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에 나는 울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칠 수가 없었지요. 나는 이 부분에서 실로네가 가장 중요한 설명을 하고 있음을 알았어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내 친구를 기억하는 것뿐이었어요. 그는 내가 실로네의 이 책을 읽었을 즈음에는 이미 죽었어요 벌써 수년이 지난 후였어요. 그는 기차사고로 죽었습니다. 서른살 때에 그렇게 죽었어요. 난 그 소식을 훨씬 후에 들었습니다. 나는 가톨릭신자가 되었지요. 나는 그를 위해서 기도했어요. 때때로 난 그를 생각하고 예수님과 성인들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빵과 포도주>를 읽고 디킨슨과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을 때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말을 그쳤을 때 도로시 데이의 얼굴에는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그가 말하고 있었던 그런 침묵이 방안에 내려왔다. 그 사람에 대한 존경이, 기억이 방안에 가득했다. 그는 손에 손수건을 들었으나 사용할 까닭이 없었다. 그는 그곳에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창 밖의 건물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건물들 위로 하늘을, 그날 구름 때문에 약간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에 손수건을 들고 그는 그의 성경을 만졌다. 그것을 바라보았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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