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직이 문제, 교회는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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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직이 문제, 교회는 다른가?
  • 최태선
  • 승인 2021.10.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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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임은정 검사를 통해 검찰이 얼마나 조직에 충실한 곳인지가 드러나고 있다. 오래 전 해군 소령의 조달업무 비리에 대한 양심선언이 생각난다. 소령이면 실무자 급에서는 책임자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그렇다면 그가 밝히는 비리에 대한 증거는 충분했다. 그러나 해군의 조달업무 비리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조직을 배반한 소령만이 처벌을 받았고 결국 해군 조달업무에서 배제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사람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해군의 비리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면 조직에는 관행이라는 것이 생긴다. 대부분의 관행은 편리와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묵인과 방조가 전제된다. 개인의 묵인과 방조에는 물론 대가가 주어진다. 그래서 비리 사슬이 형성된다. 비리 사슬이 형성되지 않는 조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리 사슬이 형성된 조직의 일원이 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비리 사슬의 일원이 되는 수밖에 없다. 비리 사슬을 거절하는 순간 조직이 그 사람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군대에서 경험했다. 나는 공군 관리 장교로서 예산과 예산집행을 담당했다. 예산과 예산집행을 함께 담당하는 조직은 작은 조직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니까 공군은 비리 사슬이 아주 자연스러운 조직이었고 실제로 모든 부대 관리부서에는 그런 사슬이 존재했다.

월말이 되면 구매를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하사관이 부대와 거래하는 모든 거래처를 돌며 그 달의 실적에서 일정 부분을 거두어온다. 그것을 부서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니까 나는 한 달에 한 번 월급 이외의 돈을 받은 것이다. 부서장으로부터 말단 방위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계급과 맡은 역할에 따라 차등 지급되었다. 부대의 책임자와 권력 있는 부대 부서장에게도 그것이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이 일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비리 사슬이다.

나는 내가 돈을 받는다는 것이 불의한 일임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관리부서의 일원인 한 그것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을 받지 않으면 내부고발자의 혐의를 받기 시작하고 결국 조직의 모든 일에서 배제되는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주의해야 한다. 어떤 혐의라도 약점이 잡히면 그것으로 내 군대생활은 끝장이 난다.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군의 특성상 약점은 언제라도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내가 비리 사슬을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거나 벗어나려는 순간 나는 불명예제대라는 희생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에는 이런 비리 사슬이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조직은 비리 사슬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가끔은 그런 비리 사슬이 드러나 사회적으로 한동안 문제가 되기도 한다. ‘관피아’ ‘원전피아’ ‘군피아’ 등등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에는 ‘피아’라는 단어만 붙이면 되는 비리 사슬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사람의 문제로 인식하고 사람들을 바꾸는 것으로 비리 사슬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을 바꾸고 부처님 가운데토막 같은 사람들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해도 비리 사슬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리 사슬이 한 번씩 드러날 때마다 비리 사슬은 더욱 공고해지고 은밀해진다. 위험부담이 높아지는 만큼 비리 사슬은 더 단단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비리 사슬의 문제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검찰 역시 조직이다. 아무리 임은정 검사가 폭로하고 또 폭로한다고 해도 검찰이 조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냥 놔두라는 말이냐고 반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아니다.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 검찰의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 치환하지 말라는 것이다. 검찰의 문화는 검찰만의 문화가 아니라 모든 조직의 문화이다. 그래서 검찰이 조직폭력배와 비슷한 것이다. 조직이 조직인 한 비리 사슬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로 그것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는 있지만 조직의 특성인 비리 사슬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합리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견제할 수 있는 수단과 비리 사슬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시대와 상황에 맞추어 끊임없이 보완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영원한 경계는 자유의 대가이다

영원한 경계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끊임없는 의심이라는 말과 같다. 조직은 영원히 신뢰할 수 없는 의심의 대상이다. 민주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의심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판에 영원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민주 시민에게 주어진 투표권이 상징하는 것은 그러므로 심판이자 가장 강력한 권력이다.

그러나 사실 개인에게 주어진 투표권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력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민주 시민은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깨어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관성을 끊임없이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깨어 있는 민주 시민의 전제이고 의식 있는 민주 시민의 태도이다. 민주 시민이 자신의 이익에 함몰되는 순간 민주 시민이 아니라 비리 사슬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자신의 이익에 함몰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은 이익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욕망의 존재가 아니라고 믿는 것과 같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성서가 왜 그리스도인을 소금과 빛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느님의 정의를 위해 산다. 더 이상 옛 사람이 아니고 새 사람이다.

조직으로 형성되지 않는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 시민에게만 깨어 있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시대 모든 문화, 모든 정치적인 제도에는 깨어 있는 존재들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세상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조직은 언제라도 조직 자체에 걸림이 되는 존재들을 제거하기 마련이다. 그 제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희생양이다. 그래서 세상을 ‘희생의 체제’라고 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1위를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세상이 ‘희생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와 정치 체제가 달라도 ‘오징어 게임’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있는 존재로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그것이 다가 아니다. 소금과 빛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조직으로 형성된 ‘희생의 체제’가 아닌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교회는 바로 그런 하느님 나라인 공동체가 되어 조직으로 구성된 ‘희생의 체제’인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세상(하느님 나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것이 성서가 말하는 ‘산 위의 동네’의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조직을 당연하게 여기고 세상의 그 어느 조직보다도 더 강력한 조직이 된 그리스도교를 떠난 것이다. 조직을 떠나지 않으면 복음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떠나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조직이 아닌 유기체로서 다른 세상을 구성하고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고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명이다.

아무리 말해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는 이런 글을 매일 쓰는 것은 이 지점에 이르면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견딜 수 없어 항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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