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일을 하며, 성인이 따로 없다...“응, 그래. 나도 아멘.”
상태바
식당 일을 하며, 성인이 따로 없다...“응, 그래. 나도 아멘.”
  • 이슬
  • 승인 2021.09.22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슬 칼럼-살면서 한 마디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내게 먹는 건 그냥 배만 부르면 되었다. 잘 차려졌다거나 먹음직스럽다거나 음식을 먹기 좋게 정성스럽게 차려낸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만 있는 일 같았다. 그러던 내게 음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왔었는데, 내가 만든 음식에 사랑과 책임이 들어간다는 걸 알기 시작한 건 엄마가 되고서 첫 이유식을 만들 때였다. 이유식은 정말 맛이 없다. 그 아주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을 서투른 엄마가 다리가 아프도록 몇 시간씩 서서 끓여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먹으며 방실방실 웃는 내 새끼 얼굴에 한 순간 힘든 건 다 녹아내리고 오직 싱싱하고 좋은 재료들만 찾아서 건강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밥도 그랬다. 재료를 음식에 맞게 적절히 손질 하는 것부터 음식 저마다의 성질대로 요리하는 법까지 검색하면 어떤 것도 정확하게 쏟아져 나오는 레시피들처럼 아주머니만의 요리 비밀 노트가 분명하게 몸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깨끗하게 씻어놓은 재료들 앞에 서시면 그리도 이쁜가, 연신 “아이고 색이 곱기도 해라. 아이고 이뻐라.” 하신다. 날마다 맛있지만 더 만족스러운 요리를 하신 날에는 “간이 정말 딱 맞다. 이리 와서 먹어봐라. 엄~청 맛있다.” 아이처럼 신나라 자랑하신다. 혹 다른 사람 손에서 재료 손질이 잘 못 된 날에는 버려지는 재료들 때문에 또 혹시 잘못된 재료들로 인해 제대로 맛이 나지 않을 음식들을 미리 생각해 보시고는 너무나도 속상해 하신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정확하게 양을 맞출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음식들이 버려지기도 하는데 조금이라도 버려야 하는 날에는 “아이고 이러면 벌 받는다. 벌 받아. 나는 못 버린다.” 하시면서 살을 떼어 내는 듯이 질색하며 싫어하신다.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으면 음식 할 맛도 난다.” 하시면서 그 넓은 공간을 순식간에 반들반들 윤기 나게 닦아내신다. 음식 하는 일도 주방을 청소하는 일도 어떤 것도 자신의 일처럼 매일 그렇게 정성스럽게 해내신다.

 

온몸으로 기도하는 청소부. 그림=이슬
온몸으로 기도하는 청소부. 그림=이슬

옛날부터 그랬다고, 음식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먹이는 일을 하면 하늘에서도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했다고 내게 아주 중요한 비밀을 알려 주시듯 살짝 귀띔해 주는 이들, 내가 노력해서 정당하게 벌지 않은 것은 조금도 가지기 싫다 하는 이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가진 힘을 다 쏟아내고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힘들까봐 또 일을 찾아 돕는 이 착한 이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들. 이유식을 만드는 엄마의 마음처럼 오백인의 밥에 사랑과 정성을 가득 넣고 그들이 먹고 건강하기를 바라며 스스로 책임을 싣고 계신다.

온 몸이 땀과 양념으로 범벅인 채 요리 삽을 뒤적이는 그 몸짓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음식을 만들면서 온 몸으로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 분들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지만 몸짓 하나하나에 어떠한 확신과 믿음이 가득 차 있고 확신에 찬 그것을 어떤 망설임도 없이 행하고 그리고 마침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있다. 일터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상념을 접어놓고 온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우고 오랜 경험에서 익혀 온 노련함과 섬세한 움직임으로 그렇게 오백인의 한 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끼가 그냥 밥은 아니지 않은가.

텅 빈 마음을 붙잡으려고 다시 성당을 찾고, 몸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봉사 하는 척 하고, 성경도 읽어 보고, 수많은 강의들을 돌려가며 보기도 하고, 끊임없이 묵주알을 돌리고 있는 때에도 자꾸만 더 목이 말랐다. 조금만 더 오르면, 여기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내가 만족할 만한 어떤 경지에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허공에 손만 더듬거리던 그 때에도 곧 찾아 헤매던 어떤 것을 마침내 만날 것이라고 그렇게 안달내고 조급해 했었는데, 그럴수록 이상하게 영혼은 더 배고프고 더 상처 나고 더 메말라만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내 곁에 이 아주머니들은 무엇을 하고 계신가. 아주머니들의 몸짓에서 오래전 성인들의 것과 같은 신비하고 용감한 기운을 받는다. 마치 오래 된 그 이야기 <성자가 된 청소부>처럼 우리는 우리 자리에서 성인이었거나 이미 성인이고, 곧 성인이 될지도 모른다. 완전한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 빈털털이에 깨지고 깎이고 낡게 되어도 아무래도 하느님은 또 다시 인간 안에서 발견되길 바라시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둘러앉은 점심시간에 식사 전 성호를 긋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곁에 앉으시며, “응, 그래. 나도 아멘.” 하신다. 이미 온 몸으로 기도를 올린 그녀가 함께 “아멘” 하고 말하는데 무언가 다 이루어 진 후인 것만 같아서 무의미 하게 그어지는 성호가 손을 부끄럽게 했다. 정말 다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한 끼 점심을 위해 우리가 쏟은 힘이 합해져서 함께 올리는 기도가 되었고, 그 기도는 밥을 먹는 모든 이에게 언제나 건강과 사랑을 빌어주는 일이 되리라. 아멘.

 

이슬 비아
세상에 온 의미를 찾아가는 촌스러운 이파리.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