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교회처럼, 가정집 모임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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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교회처럼, 가정집 모임을 시작하며
  • 이원영
  • 승인 2021.09.1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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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사진=이원영
사진=이원영

코로나19는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특별히 사람과 사람의 간격을 만들었다. 바이러스의 전염성 때문이다.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곳과 면식이 없는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게 되었다. 비대면으로 화상모임을 갖고 특정한 거리나 마스크와 같은 작은 장벽을 둔 상태에서 타인을 만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보다 가정 혹은 소규모의 모임으로 전환되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평소 잘 알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이는 폐쇄성을 갖게 되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교회에는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각 교회마다 예배의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인들은 교회에서 모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사는 교인들을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헌금으로 운영되는 교회는 재정상황이 악화되고 교회직원과 교회건물에 관련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될 쯤 나는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를 나와야 했다. 공동체를 나온 후 예배모임은 자연히 가정으로 축소되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이제 그리스도인보다 비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다. 신앙 모임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로 축소되었다. 어쩔 수 없는 폐쇄성을 갖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교회란 무엇이고 예배란 무엇인지 다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그리스도교 공인 이전 초대교회의 모습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제도적 교회 안에 있으면서 형제애보다 위계질서를,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생기 없고 지루한 예배를 보면서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던 중 요즘 두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는 진 에드워드의 <오래된 교회 가정집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1세기 관계적 교회>다.

두 책에서 공통되게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분, 설교중심적 예배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신앙생활에 대해 전문가 그룹을 만들고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도와 자발성을 떨어뜨려 모임의 생명력을 잃게 한다고 말한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조명하는데 첫번째는 애찬(아가페)의 성격을 갖는 식사와 주중 삶을 나누고 격려와 축북의 시간이다. 이 때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한다. 그 과정 속에 성령의 인도로 하나되게 하는 다시 말해 주제가 하나로 모이게 되는 시점이 있고 여기에서 기도와 삶의 방향과 함께 힘써야 할 일들이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설교(또는 강론)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사도행전과 바오로 서간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순회사역자가 지역 교회에 도착했을 때 오늘날 교회에서 진행되는 수련회나 사경회 같은 형식의 집중되는 시간은 있지만 주중 모임에서는 설교보다 공동체적 나눔만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회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추고 격려와 책망, 위로와 축복이 있었다. 예배는 모임 안에서 갇힌 제도적 행위가 아니라 교회 벽을 뚫고 주중 생활로 이어지게 되었고 신앙적 결단과 반추가 반복되는 가운데 삶이 살아있는 제사가 되었다.

신앙공동체를 경직되고 유기적 생동을 잃게 하는 설교 중심적 예배, 교회 중심적 모임, 목사 중심적 결정과 위계는 초대교회에 없었다. 그리스도 안에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애찬의 식탁과 삶을 나누는 교제가 중심이었고 이 모임을 이끄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었다.

초대교회는 새로운 신자가 유입될 때 입회과정을 길게 두었다. 또 세례를 받고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 확인될 때까지 식사는 같이 해도 모임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교회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분명하다. 예배에 참석하는 입회만으로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앙적 세계관과 회심이 없는 상태에서 교회생활을 하니 교회의 잡음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교회 교인을 늘고 헌금의 액수가 많아지는 세속적 가치관에 따른 교회운영이 교회를 망친 결과다.

우리 가정은 가정집이란 중심단어로 신앙공동체를 시작하기로 했다. 2020년 9월 1일.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구(9)원(1)하는 날로 아내와 나는 선포했다. 우리의 예배는 타인을 우리 가정의 밥상으로 초대하는 환대로 시작한다. 그리고 주중 삶을 자유롭게 나누고 성경적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가고 격려와 위로를 나누는 모임을 가지려고 한다.

가정집 예배는 우리 가족이 갖는 매일의 밥상이고 타인을 초대하는 주말의 밥상이다. 또 함께 삶을 나누며 신앙적 삶을 결단하고 격려하고 살아가는 주중 삶이 예배로 이어질 것이다. 나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직장을 갖고 생활하면서 삶을 예배와 찬양으로 드려지게 살아갈 것이다.

덧니: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교인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산 게 전부인 목사가 신앙적 엘리트주의에 빠져 섣부른 판단과 좁은 식견으로 가르치려 들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하다.

가정집 모임, 관계적 교회를 시작하며 모든 이들을 환대하고 기다린다.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자유롭게 함께 식탁을 나누며 삶의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 내 삶을 다듬고 가정을 잘 지키련다.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를...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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