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목사...가장 천대 받는 일과 가장 소중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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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목사...가장 천대 받는 일과 가장 소중한 일
  • 최태선
  • 승인 2021.08.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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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세상에서 가장 천대 받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일까.

저녁이면 골목으로 리어카 한 대를 끌고 오는 분이 있다. 청소부다. 그분은 오셔서 음식물 쓰레기봉투와 일반 쓰레기봉투를 수거한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이미 버릴 때부터 그렇다. 그런데 그게 수거함에서 더 썩는다. 그 냄새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버리다 묻은 냄새는 결코 한 번의 비누질로 씻어낼 수 없다. 한 번 버릴 때도 그렇다. 그런데 그걸 다 모으는 일은 어떨까.

그래서 나는 몇 번 그 일을 하시는 분을 기다렸다 봉투에 이만 원을 넣어 드린 적이 있다. 힘든 일 하시는데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말하고 봉투를 전했다. 그런데 그 일을 알게 된 딸이 그 일을 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 일을 하시는 분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수백 대의 일의 경쟁을 뚫고 그 일을 하게 된 그 사람을 자칫 무시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봉투 수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더러워도 그 일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당연히 받아야 할 천대를 받지 않는다. 그 일은 가장 천대 받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일의 힘듦이나 어려움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결국 일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돈이다!!

그렇다. 일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도 돈이다. 가장 천대받는 일은 결국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이다.

내가 일 이야기로 오늘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어제 쓴 내 글에 달린 댓글 때문이다. 직접 보시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좋은 글이긴 한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몇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1. 목사체면에 일하기 싫어하는 것도 믿음인가?
2. 사도바울도 믿음없는 사람인가?
3. 아내의 희생이 온전히 배제되어야 순수하게 일하지 않는 목사라 할 수 있지 않는가?
4. 목사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논리라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글을 읽다가 드는 생각입니다. 말씀에 근거한 주장이면 수긍이 갈텐데 쉽게 동의가 되지 않아서 몇자 적습니다.

내 잘못이다. 내가 글을 잘못 썼다. 그걸 먼저 인정한다. 독자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은 글쓴이의 책임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섭섭한 마음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분은 목사님이시다.

그래도 나는 지적에 대해 먼저 나를 돌아보는 것은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내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인가. 그것도 목사체면 때문에? 하긴 요즘 내가 책을 잘 안 읽는다. 책이 잘 안 읽힌다. 여유가 조금 생겨 사려고 모아 놓은 책 목록이 있지만 아직 그걸 사지도 않았다. 그런 내 게으름을 주님이 질책하시는가보다는 생각도 든다. 어서 책을 주문하고 읽어야겠다.

나는 목사체면을 생각하는 목사가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목사상은 이방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가. 체면이다. 그러니까 내가 목사체면 때문에 일하지 않는 목사로 이해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거지 목사다. 체면을 차릴 주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된 나를 감사한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나는 체면을 차린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찾아서 한다.

내가 가난해져서 한 일 가운데 이사청소가 있다. 내가 어려워진 것을 알게 된 부동산 일을 하시는 분이 이사청소를 소개해주셨다. 그 일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준다. 사십 평 아파트를 청소하면 이십오만 원 내지 삼십만 원을 받고 이십 평대 아파트를 청소하면 이십만 원 정도를 받았다. 그 일을 하면서 내가 받은 은혜는 멸시와 천대 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하면 먼저 아침에 경비아저씨에게 인사를 잘 드려야 한다. 그 일을 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공손해야 한다. 그래서 창호 일을 하시는 분이나 씽크대 일을 하시는 분들의 일의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가장 힘든 일은 이사 올 집주인이 와서 집 곳곳을 챙길 때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참견을 하기 시작하면 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제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나는 그 일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체면을 내세우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일을 통해 나는 체면 차리지 않는 법을 조금 배웠다.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왔다.

그러나 나는 자발적으로 체면을 차리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했다. 교인들이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 일을 도왔다. 그 일들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을 찾아서 했다. 그래서 음식점 주방에서도 일하고, 서빙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도 했다. 나는 그런 일이 목사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할 때 목사로서 나의 보람을 느낀다.

노동이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농사도 지었다. 작은 이앙기 하나 없이 오로지 삽과 괭이만으로 삼백 평 밭을 농사짓는다는 것은 중노동이다. 그 일을 열심히 한 것은 노동이 기도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일이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열심히 농사지어 수확한 것을 나누어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무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서울로 집을 옮긴 후에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대신 나가서 일하는 아내 대신 집안일을 열심히 했다. 지금은 무슨 요리를 해도 겁이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절이는 과정만 있어도 겁을 내었지만 이젠 발효를 기다려야 하는 과정도 그다지 두렵지 않다.

물론 오늘처럼 아침마다 글을 하나씩 쓴다. 이 일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론 글이 써지지 않아 오래도록 생각만 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때도 많다. 그리고 이 일도 주님이 인도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쓴 내 글이 여러 매체에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실린다. 심지어 가톨릭 매체에까지 실린다. 어쨌든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게 돌아오는 소득은 없다.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이런 일들이 다른 목사들이 하는 일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까 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하는 이 다른 일은 거의 대부분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이다. 더구나 목사 체면을 차리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야기만 더 하자. 나는 오래 전 목회자 영성수련회라는 모임에 참가했다 그곳에 강사로 오신 두 분의 신부님이 점심식사가 끝난 후 설거지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그 다음 식사 후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나도 어느 곳에 강사로 참여하든 설거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런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용납하지도 않아 괜히 소란만 피우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예 가기 전에 먼저 내가 음식을 준비해가게 되었다. 설거지 대신 하는 일이다. 나는 어디에서나 일하는 목사이다.

나머지 질문에도 답을 하고 싶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가 목사체면에 일하기 싫어하는 믿음을 가졌는가.

그렇게 생각해도 할 말은 없다. 나는 남의 생각을 지배할 의도도 없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도 않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이야기 내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다. 공감하는 분이 있다면 고마운 일이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면 더 고마운 일이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일은 돈을 못 버는 일이다.

이방인 노예가 되려는 목사는 바로 그런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사람이다. 목사가 그 일로 천대와 멸시를 받을 때 하느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그 일은 목사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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