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에서 의심을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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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에서 의심을 하거나
  • 이원영
  • 승인 2021.07.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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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사진=이원영
사진=이원영

나는 밥을 빨리 먹는다. 무슨 음식이든 맛있게 먹는다. 짠맛, 단맛, 신맛, 고소한 맛, 떫은 맛, 매운 맛, 느끼한 맛, 톡 쏘는 맛 등. 맛의 조화로움과 함께 이로 씹는 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음식을 입에 가득 넣어 먹는다.

또 몇 번 씹지도 않고 삼킨다. 이로 씹고 음식이 혀에 감기는 느낌도 좋다. 음식을 입 가득 넣으면 혀끝의 단맛, 가장자리의 신맛, 안쪽의 쓴맛과 감칠맛, 혀 전체로 느끼는 짠맛을 폭발하듯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요즘은 음식의 온도도 중요하다. 음료는 차가운 맛으로 국은 뜨거운 맛으로 먹는다. 혀 뿐 아니라 음식이 목으로 꿀떡하고 넘어가는 느낌이 좋다. 차가운 음료를 마실 때 쩡 한 느낌, 뜨거운 음식으로 코 끝에 땀이 모이는 느낌도 좋다.

이런저런 느낌이 좋아 음식을 먹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보다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음식을 급하게 먹으면 식탁에서 대화하기가 어렵다. 음식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먹고 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민망함이 몰려온다.

루미의 잠언집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를 씹어 읽고 있다.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Mevlana Jelaluddin Rumi)는 1207년 9월 30일 당시 페르시아의 영토였던 아프가니스탄 발흐에서 태어난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이며 수피교단의 창시자이다.

왕의 밥상에서
의심을 하거나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은
배은망덕이다.

사진출처=designstack.co
사진출처=designstack.co

의심을 하면서 먹는다는 건 맛없는 음식은 아닌지, 먹지 못할 것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하면서 음식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말한다. 한편 배가 고파서인지 식탐 때문인지 음식을 털어넣는 행태는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이다. 그의 글에 내 식습관을 비춰보면 나는 게걸스럽게 먹는 쪽이다.

농사를 배우고 실천하면서 씨앗이 발아해서 모종으로, 그 모종이 자라 열매가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람의 땀이 필요한지 체험하고 있다. 곡식과 채소가 조리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본다면 그 밥상이 진수성찬이든, 소박하든 상관없이 왕의 밥상이라 불러야 한다.

그런 소중한 밥상 앞에서 음식을 투정하는 것도, 급하게 입 속으로 털어넣는 것도 배은망덕한 일이다. 모든 수고와 손길, 무엇보다 해와 비를 내려주신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상을 맞아야겠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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