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있는 동네가 요즘 재개발로 어수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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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 있는 동네가 요즘 재개발로 어수선합니다
  • 서영남
  • 승인 2021.07.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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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은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이 여섯 개 있습니다. 한꺼번에 스물 네 명이 앉아서 식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손님들이 충분한 거리를 두고 식사할 수 있게 한다면 한 번에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려고 했지만 관공서에서는 아예 문을 닫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년 2월말부터 도시락 꾸러미를 나눠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국수집 앞 도로에 천막을 치고 도시락을 가지러 오는 손님들에게 어묵을 드리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냉커피와 아이스크림 또는 삶은 감자, 떡 등 간식거리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오후 3시쯤 손님들이 찾아오면 비빔국수 또는 잔치국수를 대접하기도 합니다. 국수를 좋아하는 손님들이 참 맛있게 먹습니다. 두 세 그릇을 먹고서야 충분하다고 합니다. 초복이 다가옵니다. 손님들에게 오후 3시쯤에 보양식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어떤 날은 삼계탕을 대접하고 어떤 날은 냉면도 대접하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동네는 요즘 재개발로 어수선합니다. 2009년에 재개발을 한다고 하다가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18년 말에 다시 시작된 재개발로 또 다시 어수선합니다. 재개발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아마 2027년 9월이면 높다란 아파트 단지가 될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이야 세 들어 살고 있기 때문에 국수집이 헐리면 언제든지 가난한 우리 손님들이 있는 곁으로 가면 됩니다만 개신교 도시산업선교회인 "일꾼교회"는 그 자리에 굳건히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재개발이 되면 어디로 가느냐  걱정해 줍니다.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한 것처럼 하면 됩니다. 작게 겨자씨처럼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신문을 만드는 건 좋지만, 우리한테 무슨 돈이 있습니까?" 도로시가 현실적으로 말했다. "선한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돈은 중요한 게 아니예요. 중요한 건 사람이죠. 그들이 기꺼이 그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으로 된 겁니다. 아낌없이 베푸는 데서 하느님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돈은 어떻게 해서든 해결되게 되어 있어요." 모린이 말했다. (도로시 데이 중에서).

처음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려고 할 때 제가 쓸 수 있는 돈이라곤 삼백 만원뿐이었습니다. 10제곱미터 정도의 아주 작은 가게에 식당을 차렸습니다. 여섯 명이 앉으면 꽉 차버리는 식탁 하나 놓았습니다. 국수 여섯 상자를 사 놓고 시작했습니다. 국수집을 찾아온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손님들에게 식사 순서는 선착순이 아니라 꼴찌부터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손님들이 서로 배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다른 무료급식소와는 달리 식사 시간이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입니다. 두 번이나 세 번 오셔서 식사해도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오전 열 시에 문을 여는데 3시간 4시간 전에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식사를 드릴 준비만 되면 오전 여덟 시라도 밥을 차려 드렸습니다. 언제든지 와서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손님들이 자유롭게 오고 싶을 때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급식 횟수나 양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재개발로 민들레국수집을 옮긴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허름한 식당을 세 얻으면 됩니다. 동인천역 근처의 상권이라고는 없는 구석에 있는 식당이면 좋습니다. 아니면 낡은 여관을 세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손님들이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냥 일반 식당처럼 손님이 자연스럽게 들고 나면 됩니다. 그리고 옮긴 민들레국수집 옆에 민들레 희망센터도 오고, 민들레 가게도 오고, 민들레 진료소도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손님을 따뜻하게 환대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민들레 꿈 공부방과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도 곁으로 오면 좋겠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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