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 시인, 현장에서 피해자와 함께하는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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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시인, 현장에서 피해자와 함께하는 절규
  • 전점석
  • 승인 2021.06.2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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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시집 , [산이 바다에 떠 있듯이] 불휘미디어, 2021

어떤 이들은 시대의 아픔을 자기 일로 생각하는 시를 비난하면서 시가 아니라 성명서라고 한다. 그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나 어울리는 서정시에 갇혀 진실을 볼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시절에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적과 싸우기 위한 무기가 되어야 한다.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인 이태준은 단편소설 <아무 일도 없소>에서 “나의 붓은 칼이 되자. 저들을 위해서 칼이 되자.”라고 했다.(<우리 고전을 찾아서>, 임형택, 한길사, 2008, 727쪽) 시인 김남주는 생전에 “나는 시인이라기보다 무슨 글쟁이라기보다 전사여, 전사!”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다. 독재의 시대, 분단의 시대에는 작가도 국민이고, 시민이기에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김유철 시집 <산이 바다에 떠 있듯이>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시대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다에서는 비(非)상식과 역(逆)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 바다에 떠 있는 산은 바로 험한 시절을 그가 버틸 수 있게 해준 시이다. 말하자면 비빌 언덕인 셈이다. 세상의 악에 맞서서 싸우는 용감한 모습만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늘 어렵고, 어지러웠다고 한다. 계속해서 세상 탓만 하는 것도 지겨울지 모른다. 판화 그리는 이철수는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어서 힘들었다고 한다.(<나무에 새긴 마음>, 이철수, 컬처북스, 2012, 8쪽)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세상 이야기보다 마음 이야기가 더 많다. 이 시집에서 우리는 세상 일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목소리와 함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장에서, 낭송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김유철 시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성이다. 생생한 현장이다. 읽는 이가 자신이 지금 투쟁전선에 서 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투쟁의 전선에 함께 서 있는 동지의 목소리가 시에 담겨있다. 시인은 아예 현장에서도 시를 쓴다. 마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중계방송을 할 정도로 생동감이 있다.

「천개의 바람」은 2014년 5월 비바람이 치는 제주 따라비오름에서 썼고, 「팽목항 노을은 유죄를 선고했다」는 2016년 8월 팽목항 방파제에서 썼다. 2008년 9월에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노동자 김소연 단식장을 방문했다가 「민중의 아버지시여」를 썼다. 그래서 그의 시는 현장에서 사랑받는다. 거리에서도 가장 많이 읽히는 게 그의 시다.

「진달래 여기 지다」, 「또 진달래지다」, 「꽃들이 가는 길, 잎들이 가는 길」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추모행사에서 낭송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겨울 광주」는 2013년 12월 창원민예총이 주관한 광주 추모제에서, 하늘의 별이 된 세월호를 기다리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세월, 그 노란 바다에서」, 「녹슨 배에서 맞는 부활의 새벽」은 세월호 추모행사에서 낭송되었다. 열거하자면 수도 없이 많다. 대부분이 그렇다.

시인의 시는 그냥 낭송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기도 하고, 그의 시를 찾는 행사에 더 도움이 되기 위해서 시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또 진달래지다」는 국민대 작곡과 정미현이 가곡으로 작곡했고, 「오월, 갚을 수 없는 빚」은 음악인 이경민이 작곡하였고, 「천개의 바람」은 음악인 우창수, 하제운, 이경민이 각기 작곡했다. 「동백, 맹골수도에 피다」는 음악인 송철식이, 「햇살은 부활하지 못한다」는 음악인 우창수가 작곡하고 시노래로 불렀다.

 

김유철의 시는 직선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인의 시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느끼는 데에는 그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두 가지 특징 덕분이다. 첫째는 그의 시는 짧은 직선이다. 짧아서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복잡함으로 인하여 핵심을 놓치고 있는 우리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준다. “숯이 된 사람이 있다”로 시작하는 「숯덩이」는 명쾌하게 “전태일은 숯이다”라고 군더더기 없이 요약하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태일이 죽은 지 50여 년이 흐르는 동안에 우리 사회에 제2, 제3, 제4의 수많은 전태일이 있음을 알고 있는 시인은 제목을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숯덩이」라고 하였다.

무위당 장일순을 ‘민들레’라고 한다. 왜냐하면 “언 땅에서 꽃을 피운 선생님을 따라/ 흩어진 민들레의 씨앗이 이렇게 해해연년 곳곳에서 모여/ 눈떠서 생명평화를 살자고/ 손잡고 한살림을 이루자고 작당”하고 있어서 이다.

두 번째 특징은 그의 시가 한쪽 극단에서 출발해서 맞은편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읽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는 점이다. 시 「노동, 여성 그리고 여성노동자」는 누구나 인정하는 노동자와 여성의 척박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노동자로 산다는 것 참 버거운 일이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 좀 더 버거운 일이다/ 여성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약자 중에 약자/ 최약자로 산다는 것이다”라고 시작한다. 그리고는 끝부분에서 완전히 정반대로 뒤집는다. 여전히 사는 게 버겁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노동자로 산다는 것 참 신나는 일이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 좀 더 신나는 일이다/ 여성노동자로 산다는 것 강자 중에 강자 / 최강자로 산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함께 가자고 한다. 글의 리듬도 똑같다. 함께 연대하면 정말 좋은 세상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거움이 신나는 일로, 최약자가 최강자로 뒤집어지는 일대 역전이 일어나는 그의 시는 그래서 통쾌하기도 한다. 제주 서귀포 사려니숲을 그린 「신령한 숲」에서도 글머리에서는 “그대/ 이제 숲으로 들어가라”고 해놓고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대/ 이제 숲에서 나오라”고 한다. 시인의 시는 정(正)과 반(反)을 오가며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아프고 처절한 절규 또는 기도

그의 시는 단순히 생생한 현장감뿐만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서 아픔을 함께 하는 처절한 절규이고, 간절한 기도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어김없이 현장에서 반생명 세력을 향해 외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밀양 송전탑을 세우는 자들을 향하여 “그대 멈춰라 제발/ 아니 하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 동작그만!”이라고, 4대강과 한미에프티에이를 추진하는 지들에게는 “살려내라 4대강/ 그만둬라 한미에프티에이/ 제발!!!” 낙동강 함안보를 보면서 “너의 욕심을/ 감추어진 너의 욕심을/ 온당치 못한 말들로 포장된/ 너의 어리석은 욕심을 이제는 포기하라”고 한다.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는 노동현장을 보면서 “노동자를 더 이상 죽이지 마라”고 외친다. 경북 성주 소성리 사드 배치현장에서는 “물러가라/ 썩 물러가라/ 죽음과 죽임의 사드 귀신은/ 생명과 평화의 땅에서 당장 사라져라” 하며 질타한다. 시인은 죽임의 현장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온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의 시에 담겨있는 뜨거운 분노는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간절한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절절한 이 주장이 상대방을 겁나게 만들면 좋겠다.

시인에게는 물리적인 중립이란 아예 없다. 중립은 죄와 같은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완전히 약자와 함께 하는 철저함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러나 간혹 다툼이 일어나는 전선에서도 상대와의 싸움뿐만 아니라 상대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성찰이라는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찰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현장감 넘치는 뜨거움뿐만 아니라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그의 시도 보고 싶다.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8호, 2021년 여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전점석
칼럼리스트. 한국작가회의.
경상남도 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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