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쳐다보는 종교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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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만 쳐다보는 종교가 되지 않으려면
  • 유대칠
  • 승인 2021.04.0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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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칼럼

1946년 10월 3일 부당한 현실에 대한 대구 경북 민중의 외침을 향하여 돌아온 것은 총알이었다. 해방되었다지만 온전한 주권을 누리지 못한 우리 민중은 그 부조리한 현실에 대하여 소리 내어 아프다 말할 수도 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총알뿐이었다. 그리고 74년이 지나서야 그 날의 죽음을 위로하는 작은 위령탑이 2020년 11월 외로이 대구 달성군 가창의 공간에 세워졌다. 빨갱이라는 말에 그 억울함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한 이들에 대한 너무나 작은 위로이다. 하지만 그 역시 너무나 늦었고 너무나 작다.

 

1946년 10월 대구 인민항쟁을 진압중인 경찰

가해자는 무탈하게 지내며 피해자만이 아파하던 시간, 사실 그 시간을 어찌 뒤돌리겠는가. 1948년 4월 3일 역시나 부당한 현실 속 제주의 수많은 민중들이 죽어갔다. 부조리의 시대를 산 것이 죄였을까. 죄도 없이 그저 죽어갔다. 그리고 73년이 지난 올해 2021년 드디어 수형인 355명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 무죄가 얼마나 그 삶의 아픔을 덜어줄까. 억울하게 잔인하게 죽어간 그 수많은 혼들은 어찌 달래여 줄 것인가.

1946년 10월 1일 대구와 경북 민중의 앞에서 부조리를 외치던 목사들이 있었다. 최문식 목사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대구에서 태어나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노동 운동에 관심이 많은 목사였다. 노동자의 아픔이 그에겐 남의 아픔이 아니었고 민중의 시대적 부조리도 그에겐 남의 아픔이 아니었다. 그는 10월 1일 그 항쟁의 날, 앞에서 민중 항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민중의 정당한 외침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역시 총알뿐이었다.

최문식 목사는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을 느끼고 경찰과의 마찰을 막아섰다. 무장 경찰과 민중의 충돌을 막아섰지만, 그는 이후 구속되고 재판에서 그 날 민중의 외침이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다. 최문식 목사의 글 가운데 하느님 나라에 대한 고민이 담긴 글이 있다. 그는 그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바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에게 신앙은 교회 속에서 전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 속 민중의 아픔과 더불어 있어야 했다. 그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민중의 옆에서 민중과 더불어 부조리함에 분노하였다. 그러나 그 날 그 부조리함의 책임을 져야하는 권력자들은 무탈하게 살아가며, 그는 빨갱이 목사로 기억되어 이 땅의 역사에서 지워져갔다.

1948년 4월 3일 제주 비극에 가해자로 거론되는 이들 가운데 서북청년회가 있다. 그들 상당수가 개신교 신앙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개신교는 제주 4.3의 가해자라는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힘들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극우 수구 개신교는 이를 외면했다. 물론 최근 들어 개신교계 일부에서 보이는 지난 과거에 대한 사과의 분위기 없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그 날 제주의 비극을 자신들의 왜곡된 기억 속에서 폄하(貶下)하고 있다. 오히려 이 나라 역사를 위한 자신들의 공덕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1946년 민중의 편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향하여 소리 친 최문식 목사를 뺄갱이로 폄하하며 기억하는 이들이 1948년 제주의 비극을 폄하고 조롱하는 이들과 교집합을 이룰지 모른다.

1946년과 1948년 그날 우린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1946년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르려 애쓴 최문식 목사는 잊혀져버렸다.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겨우 74년이 지나서야 그날 억울한 민중의 혼을 달래는 추모탑 하나 섰을 뿐이다. 1948년 제주 비극의 그 시간, 성경을 손에 들고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가졌다면서 말로 담기 어려운 잔혹한 학살자가 되어 버린 이들을 잊어버렸다. 신앙의 양심을 가진 이들은 무엇을 기억해야할까? 이 땅 민중의 아픔, 그 아픔과 더불어 있는 신앙이라면, 무엇을 기억해야할까?

정말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문식 목사의 그 신앙과 잔혹한 학살자의 모습, 이 둘 다 우린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앙은 이 모두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조리 가운데 침묵하지 않은 신앙도 잊지 말아야하고, 신앙이란 이름 속에 미화된 잔혹한 학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며 해야 할 것도 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할 것도 부끄러워하지 못하는 이상한 종교가 되어 버릴 것이다. 독재자의 손을 잡고 권세를 누린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그런 종교가 되어 버릴 것이다. 세상의 조롱 속에서 하느님만 바라본다면 하늘만 쳐다보는 그런 종교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그 하늘에 하느님에 계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아픔이 어느 지역 일간지의 만평 하나에 다시 아파하게 되었다. 어쩌면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모두 잊어버리면 저리 되는 것이 아닐까. 참. 부끄러운 현실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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