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도덕성과 사회적 행동은 분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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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도덕성과 사회적 행동은 분리되지 않는다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3.15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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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8

도로시 데이는 비가 시끄럽게 퍼붓고 있었던 창문가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내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1920년대에는 그가 친구들을 별로 인정하지 못했겠지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순간에 그들이 방안에 나타난다면 더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위로를 받지 못했다. 실상, 그는 성가시게 느꼈던 것 같았다. 창문에서 눈을 돌리며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발아래 바닥을 응시하였다. 이어 그는 발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불안해져서 침묵이 깊어지는 것을 깨고 싶었다. 그는 커피잔에 손을 뻗쳤다. 난 잔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커피 좀 갖다 드릴까요?”
“아니오, 괜찮습니다.”
“갖다 드릴께요.”
“아니, 괜찮아요. 스프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난 그때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난 이 침묵의 마법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느낌이었다. 내가 어쨋건 나타났던 초점을 놓쳤다고 침묵이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그는 기침을 하고서 코를 풀고 마치 두 번째 생각을 하고 있는 것같이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제안을 하려고 하던 참에 그가 갑자기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에 너무나 혼란스럽게 해서 미안합니다. 젊은 시절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끌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 또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 손자들도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어요(난 늘 그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오고 있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무언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모두 매우 애쓰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어떤 것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를 기다리며 나는 이 젊은이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날 한 친구가 나에게 말한 것을 다시 기억하면서 그에게 말했던 것이 옳은 말이었는가 혹은 무언가 말하지 않았던 다른 것을 말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다음날 일어나서 나는 꾸었던 꿈을 기억합니다 ­ 그리고 내가 이곳 가톨릭일꾼의 젊은이들과 나누었던 대화만큼 꿈을 계속 꾸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나의 옛날 친구들, 나 자신을 생각나게 해주고 나의 의문점과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나의 결심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나는 혹독했습니다. 너무나 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혹독함은 어떤 사람이 당신을 밀어붙이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당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방문객들에게 이곳에 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가톨릭이 아니며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계속 일러주어야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말하지요. 그들은 이곳에 우리들과 일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가톨릭이거나 그리스도신자거나 혹은 유대교인지,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타 다른 종교이건간에 그것을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오 하느님,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신상카드를 쓰라고 요구하지 않으며 종교를 밝히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해 줍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곳에서 우리는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고 우리에게 오는 그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비 리그 대학의 한 학생이 나에게 와서 우리와 구세군 사이의 차이가 무엇일까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지요. 나는 그가 내 자존심을 건드렸으며 내 말 하나 하나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문학 과목에서 <바바라 중령>을 읽고 있는데,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아, 나는 그가 나를 늙은 바바라 중령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가톨릭의 탈을 쓴 구세군의 장성쯤으로 짐작했겠지요.”

“얼굴이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웃고나서 그에게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며 설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냉정해지고, 입을 열어 어떤 말이 나올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가 믿는 것을 다 설명할 작정이었습니다(난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은 실제로 말을 할 때까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윤곽만 알뿐입니다).

원래 내 생각은 우리 가톨릭일꾼의 철학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지만, 때마침 만일 내가 그에게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연설을 했더라면 그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나는 그가 반쯤 짐작하고 있었던 바바라 중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조금,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음식을 어떻게 준비하고 나누는지를 말하고 이곳에 와서 돕고자하는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도움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그는 나를 계속 응시하며 내 눈을 곧바로 쳐다보았고, 나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려고 애썼습니다. 내가 그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까봐 두려웠으니까요. 그러자 그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셀러리와 감자를 깎았는데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만큼 잘 되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그가 서투른 것을 보고 어떤 만족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 내 자만심이 발동을 했지요. 나는 혼자 생각했어요. ‘예일이나 하바드에서는 스프 만드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군. 도로시 네 혀는 사악해. 네 태도나 조심해,’ 하고 내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그 날 저녁 기도 때 나는 그 젊은이와 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는 내가 알고 있지만 누군가의 자극으로 계속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지요. 그것은 내 안에 자만심이 있다는 것, 우리가 그것과 싸우고 있을 때조차 대부분의 우리들 옆에 아니 내 옆이라고 말해야겠지요, 바바라 중령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날밤 나는 당신에게 말했던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가 꿈속에 있었지요. 그는 가톨릭 교회가 아니라 장로교회의 설교단에 있었습니다. 바로 밑의 좌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공동기도책을 보았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요한 1서 제 4장의 구절들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항상 사랑했고 어머니도 좋아하셨던 구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4,7-8).’ 나는 이 말들이 공동기도책에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지금 나에게는 그 기도책이 없지만요.”

“난 이 말들이 나에게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냥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목사가 왔고 그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 설교대에 섰습니다. 그는 성서를 열었고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우연한 일이었을까요: 그는 요한1서에서 같은 구절들, 같은 말씀들을 읽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그가 누구인가를 알아차렸다는 말입니다. 그는 바로 그 학생이었습니다. 그 젊은 친구였습니다. 나는 꿈속에서도 얼굴이 빨개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나는 꿈에서 깼습니다.”

나는 그의 뺨이 약간 붉어졌다고 생각했다, ­ 아니면 아마 그렇게 내가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있는 어떤 비꼬임, 아니면 직업적인(정신과적인) 영리함으로 그렇게 상상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웃고서 오른팔을 성서 쪽으로 뻗쳤다. 무릎에 성서를 올려놓고 몇번 가볍게 두드렸다.

난 그가 성서를 들고 펼쳐서 요한 1서의 그 구절들을 자기자신에게 혹은 우리 둘 모두에게 큰 소리로 읽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책을 열지 않았다. “사는 동안 내내”,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하느님이 어떻게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 보살필 수 있을까 궁금해왔습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삶에서 너무나 많은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고, 그리고 수백만, 수십억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계속 태어나고 죽어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기서 멈추었고, 나는 그의 이런 탐구가 다음에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익살스러운 구석이 연상작용을 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거대한 크기의 천상 컴퓨터를 하느님이 끊임없이 사용하고 계신다. 그가 눈치챌 만큼 능글맞은 웃음이 내 얼굴에 퍼졌고 나는 “그건 아무도 소화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이겠군요. 우리 인간들이 이 행성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내 장난을 알지 못하거나 아마도 샅샅이 알았는지 몰라도 도로시 데이가 웃음을 지었다.

 

“머리가 펄쩍 뛸 일이라는 것을 나도 알아요. 손자들이 어렸을 때 나에게 그런 일에 대해 묻곤 했어요. 착하신 주님께서 어떻게 수많은 우리들을 보살필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알 수 없다고,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해 주면서 하느님은 바로 그런 분이고, 우리들에게 정말 너무나 많은 측면에서 신비라고 말해 줍니다. 이런 대답에 그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시 말합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내가 말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고, 다만 우리가 그분께, 하느님께 신앙을 가지고 그분께 하고 싶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그분이 도와주기를 희망하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순간에 나는 성서를 들고 요한 1서의 4장을 그들에게 읽어줍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들은 그 구절로부터 무엇을 만들지 알고 있어요. 그들은 그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침묵 중에 동의하며 그곳에 앉아있었지만 그때 나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주장이 너무나 쉽게 세상적인 진부한 말이 될 수 있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도로시 데이도 이런 측면을 분명히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말을 나에게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 “나는 몇몇 나의 불가지론자 친구들, 무신론자 친구들이 요한 1서의 그 구절을 잘못된 이유로 좋아하는 것을 압니다. 그건 일신론(삼위일체를 부정하는)교회밖의 칠판에서 내가 보았던 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기를. 난 그들을 비판할 생각이 없지만, 그들에 대해서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멈추었고,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 어떤 기억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약 5초쯤 지난 후 그는 머리를 들어 천장을 보면서 웃었다. “젊고 과격했던 시절에 가톨릭 교회를 찾아갔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긴 외로움>에서 그는 이 방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카고에서, 특히 뉴올리언즈에서 그는 교회를 찾아 그곳에 앉아서 꼭 말을 하거나 생각도 하지 않고 또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단순히 그곳에 있곤 했다. “난 언제나 큰 성당에 찾아가곤 했었다,”고 그는 <긴 외로움>의 “탐구의 시절” 결론 부분에서 말해준다. 그는 뉴올리언즈의 잭슨 광장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가톨릭 성당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교회를 찾아가는 일은 그를 차분하게 했고 생각에 잠기게 했지만 위축시키기도 했다. “나는 가톨릭 용어에 익숙해졌지만 때때로 용어들은 생소하게 보이고 알 수가 없었다: ‘선교를 위하여, 어떤 사람의 뜻을 위하여 기도하다’ ­ 도대체 이런 말은 무슨 뜻일까?”

그는 자신이 표현하는 것처럼 “탐구하고” 있었으나, 사회적 정치적 확신에 대해서는 단호했으며, 그 확신의 중요한 어떤 측면들은 수년동안 변하지 않았다. 시카고에서 감옥에 갔던 일은 그를 수치스럽게 느끼고, 후회하며 자신에 대해 경멸하도록 만들었다. 수일동안 감옥에 갇히고 대중 앞에 매춘부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 국제노동자연맹 사람들이 머물렀던 집에서 체포되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이 그 집에 있었던 일은 체포한 사람들에게 오직 한가지로만 해석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도덕위반”으로 고소되었던 것이다.

자서전에서 그는 이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며 그와 그의 여자친구들이 공산주의자들을 기습하고 있었던 연방관리들의 손아귀에 넘어갔던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당시 하딩 행정부의 악명 높은 팔머 급습 작전이 진행중이었고 실제로 그는 그 시기에 몰락하고 있었던 정의의 한 희생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또다른 번민을 표현하고 있다 ­ 1950년대 초기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관습에 대한 부주의”에, “급진파들의 느슨한 도덕기준들에”, 물론 급진파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시키면서, 당황함을 표현한다.

나는 젊은 시절의 이런 측면에 대해 토론할 의도가 없었고 만일 다른 사람이 이 주제를 꺼냈다면 꽤 많은 거부감이나 당황함이 있었겠지만 스스로가 꺼냈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런 감정들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수도생활이 요구할 수 있는 어려운 제약과 의무들처럼, 급진적인 삶이 어떤 사람에게 부담시켰을 요구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도로시 데이가 이런 말을 했다:

“난 사회행동가의 도덕적인 삶이 어떤 분리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서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위를 할 때나, 정치적 입장을 세울 때 서로를 개인적으로 괴롭히면서 플래카드를 계속 들고 우리의 이상을 세계에 선포한다면, 우리는 위선자가 됩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맹목적인 위선자가 됩니다. 난 내가 젊었을 때 그런 문제에 빠졌었던 것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그는 자기와 직면하는 이런 어려운 성찰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그 시절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긴 외로움>에 쓰는 것을 끝냈을 때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온 우리 삶에 대해 절대로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그 사실을, 어떤 부분도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젊은 급진파들에게 그들이 하는 정치적 항의는 개인적인 삶과 너무나 얽혀 있어서 어떤 부분이 밖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알기가 매우 힘듭니다.

나는 그때 어리석었지요. 나는 폭풍 같은 애정사에 사로잡혔고 정신 없이 빠져들었습니다. 그 이상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게는 어떤 도덕적인 행동거지나 취지가 없었습니다. 어쨋건 충분치 못했습니다. 시카고에서 한 여자가 나에게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어느날 내가 어른이 되서 정착하면 그렇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그 여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난 그 여자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라고 그 여자는 계속해서 말했고, 나는 점점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정말로 냉철하고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그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알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세상은 무서운 곳이고 우리는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데, 우리에게 시간과 우리를 위해 일해 줄 좋은 운만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우리자신을 거울 속에서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을 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세계는 비참한 모습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들이 일어서서 우리가 믿는 것을 말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와 공평함과 평등에 대해 이런 아름다운 말들만 오랫동안 하고 서로에게는 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질투했고 험담을 했으며 변덕이 많았고 어려웠고 예의가 없고 무심했습니다. 나는 왜 ‘우리’라고 말하고 있는가요? 나는 내가 그런 모든 모습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갈까를 어렴풋이 알게 될 때에 나는 교묘하게 피하고 머리를 숙이며 나 자신을 방어합니다. 월 가의 금융가들은 얼마나 끔찍한가요. 그들은 대부분이 끔찍했으며 우리 모두도 그들과 똑 같았어요.”

그는 심판을 부드럽게 만드는 어떤 웃음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긴 외로움>에서 다음의 글들을 읽었다: “나는 사람들이 결코 자신이 말하는 것의 반도 진지하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은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의 행동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도 믿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마음속에 자신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어떤 “행위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웠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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