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겸이 지은 [민중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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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겸이 지은 [민중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 박철
  • 승인 2021.01.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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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칼럼

우린 성서의 곳곳에서 고통당하는 민중들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시편 기자는 “야훼여!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영 나를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밤낮 없이 쓰라린 이 마음, 이 아픔을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시편13,1-2) 하며 울부짖는다.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당하시는 그리스도는 최후의 절규를 부르짖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찬가지로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과 시대의 선각자들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마침내 절망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실감한다.

이처럼 하느님 이해에 대한 표현 양식은 다양한 방법으로 고백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표현양식은 반드시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그저 막연한 기대감이나 찰라주의적인 환상이나 아무런 고민 없는 일방적인 찬양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수십년 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엘리 위젤은 그의 대표적인 소설 <흑야>에서 시편 기자가 가졌던 절절한 물음을 던진다. “지금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수백만의 유대인이 죽어가는 마당에 하느님은 과연 무엇을 하고 계신가? 하느님은 진정 죽은 것인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사일런스], 2016. 스틸사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사일런스], 2016. 스틸사

그러나 그런 고통, 절망 가운데 그는 신비한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한다. “하느님은 지금 유대인과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그 책의 커버스토리에는 오줌을 질금거리며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어느 젊은이의 지친 모습에 예수의 환영이 오버랩되고 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도리꼬 신부는 인간의 가장 나약한 한계에 섰을 때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밟아도 괜찮다. 너의 발을 지금 아프겠지. 오늘날까지 나의 얼굴을 밟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아플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그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갖겠다. 그 때문에 나는 존재하니까.”

이런 시좌로 볼 때, ‘민중의 아버지’라는 노래는 참으로 신앙적이고 성서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우리 기도를 들으소서 귀먹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죽어 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렸나 가엾은 하느님“

김흥겸 님
김흥겸 님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이 독재 권력에 의해 입이 틀어 막히고 눈이 뽑히고 귀가 막혔을 때 예수처럼 살겠다고 나선 김흥겸이라는 신학도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마 그는 이 민족의 암울한 역사의 골목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민중들의 삶을 목도하고 처절하게 절망했나보다. 그러나 종당에 하느님은 가진 자들에 의해 독점되거나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고, 민중과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하느님으로 승화하여 고백하기에 이른다. 아득한 절망 너머로 보다 깊은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노래한다. 그야말로 영성의 신비로 체험되는 하느님의 이해이다.

이 노래가 젊은이들에 의해 애창되고 있을 때 한국교회는 철저하게 민중들의 아픔을 외면했다. 저 멀리 빌라도의 법정에서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다수의 기독권자들에게 아첨하는 하수인들의 몸짓도 보인다. 빌라도의 무거운 방망이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왜 예수가 침묵해야 했던가를 수긍하게 된다.

20여 년 전 어느 신학대에서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해서 농성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학생들이 ‘민중의 아버지’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민중의 아버지 유감>이라는 칼럼을 어느 신문사에 기고했는데, 원고를 분실했다. 20대 초반, 나는 진보적인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아웃사이더, 비주류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껏 내가 생각해도 잘 한 일은 기성질서와 타협하지 않고 내 나름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때 만난 노래가 ‘민중의 아버지’였다.

나는 나의 젊은 시절, ‘민중의 아버지’ 노래가 가져다준 감동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내 삶의 실존에 대해서 고민할 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민중의 아버지’이다. 우리는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혀가 잘리고 귀가 먹고 화상을 당한 채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릴 수밖에 없었던 하느님을 기억하면서 이 민족과 그리스도 앞에 통회 자복해야 할 것이다.

 

박철
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샘터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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