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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천사와 성인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유년 시절, 언제나 미사 전례 도입부에는 짧지만 내 생각에는 강력한 기도문이 포함되었다. 바로 통회의 기도이다. 기도는 라틴어로 드렸지만 미사통상문에 번역문이 있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최근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아이였던 나는 볼 수는 없어도 현존하는 천사와 성인들에게 푹 빠졌다. 특히 (곧 돌아가실 것만 같은) 연로하신 부모님과 도시에 살고 있는데다 오빠들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었기에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도움과 인도, 그리고 위안을 받는 영적 세계에 다다를 수 있었다.

Tomas_Cole, The Voyage of Life, 1842, (National Gally of Art)

 

Tomas_Cole, The Voyage of Life, 1842, (National Gally of Art)

천사들

성당에 다니는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어려서 수호천사 기도문을 배웠다.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고 인도하고 다스리소서, 아멘.

우리에게는 나만의 수호천사가 바로 곁에 계시다고 들었다.

어느 순간, 나의 수호천사께 어떤 도움이라도 청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전쟁터에서 함께 위험에 빠진 오빠들의 수호천사들께도 기도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 시절 내내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들이 위로가 되었다.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 신학을 접하게 되면서 천사들의 세계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나의 삶은 <인생의 단계들>로 알려진 화가 토마스 콜(Thomas Cole)의 그림들과 비슷하다. 4점의 작품은 워싱턴D.C 내셔날 갤러리에 영구 전시 중이다.

첫 번째 그림은 소년이 배를 타고 호숫가에서 멀어지고 있는데 천사가 바로 곁에서 지켜본다. 이 그림이 “유년기”이다. 두 번째 그림은 “청소년기”로 천사는 젊은이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져있다. 세 번째 단계는 “성인기”로 천사는 배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고 삶에서 겨우 보인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노년기”로 천사는 다시 가까운 친구가 된다.

아이를 갖게 되자 수호천사는 다시 인생에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 고해 성사에서 전통적으로 라틴어로 말했던 사죄경(the words of absolution)을 자국어(내 경우 영어)로 말한다는 소식이 로마에서 워싱턴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고해실에 들어갔을 때, 담당 사제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독일인이었다. 사죄경은 사제의 자국어(독일어)로 했지만, 더듬거리는 영어로 훈계했다. 물론 그 의미는 이해했다. 자녀들의 수호천사에게 기도를 드리라면서 이것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 설명했다. 나는 사제의 서투른 영어를 감사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이들을 위해 수호천사를 다시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성서를 읽고 묵상할 것을 권고하였다. 다양한 천상 세계에 관한 성서적 해석도 가능해졌다. 우리는 하느님의 메신저인 대천사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성서에 언급되는 존재로 종종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충고하는 대천사들을 이해하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대천사들은 하느님을 믿고 우리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믿으라고 전한다. 낯선 이들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처럼, 어떤 이들은 자애로운 활동 중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다.

수 년 동안, 서로 다른 임무를 가진 대천사 가브리엘과 라파엘을 공경했다. 수태고지를 하셨던 가브리엘 천사와 성모님의 만남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다. 가톨릭 신자가 믿는 모든 것은 가브리엘이 성모님과 세상에 하느님의 계획을 알린 그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라파엘은 토비아와 위험한 여행을 함께하고 사라와의 결혼을 주선했다(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는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넘친다). 이 과정에서 라파엘의 역할은 감탄을 자아낸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랑하는데 인내가 얼마나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미사 마지막 부분에서 대천사 미카엘에게 바치는 기도를 드렸다. 나는 가끔 우리들의 기도가 실제로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회개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분열된 세계를 치유하고 평화를 이루도록 도와달라고 대천사들에게 기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느님의 위대한 특사로 라파엘 천사가 가자 지구를 거닐고 가브리엘 천사가 잠시라도 예루살렘에 머물 수 있지 않을까? 미카엘 천사가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못 할 이유가 없다.

성인들

성인 역시 유년 시절의 관심사였다. 첫 번째 기도 응답은 내가 열한 살 때 받았다. 종교 수업시간에 좋은 의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에 대해 배웠다. 성모님께서는 속상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다고 했다. 당시 나에게는 문제가 있었고 화가 난 상태였다. 바로 질투심이었다. 좋아하는 수녀님께서 다른 학생에게 관심을 보이자 시기했다. 그래서 수녀님과 그 학생을 모른 척 했고(지금 돌이켜보면 수동적/공격적 행동이었다) 그 결과 나는 비참했고 내심 불안했다. 

어느 날 저녁 절망감에 빠져 무릎을 꿇고 좋은 의견의 어머님께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었다. 오래지 않아 울음을 멈췄는데,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사과였다. 나는 수녀님께 사과했다. 사과하기로 결정하자 평화로워졌고 행동으로 옮기자 더 깊은 평화가 찾아왔다. 성인 중의 최고이신 성모님께서 필요한 행동을 알려주셨다. 지금도 성모님은 모든 성인의 통공으로 이르는 입구이다.

어린 시절 침실에 성인들의 석고상을 모았다. 성인들은 선반 위에서 나를 지켜주시며 나에 대해 잘 아시는 지혜로운 존재였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게 도와주시는 안토니오 성인과 임종의 수호성인 요셉 성인(하지만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이 계셔 행복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인은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로 주의 깊고 책임감 있는 작은 행동만으로도 성인의 길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소화 데레사의 “작은 길” 선언은 위안이 된다. 다른 성인들의 기이한 행동을 모방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광장에서 옷을 모두 벗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 비신자인 친구들도 가톨릭에는 필요한 모든 곳에 수호성인이 계심을 부러워한다. 성 제네시오는 배우들과 극장과 관련된 문제들의 수호성인이다. 아폴로니아 성녀는 치과 환자에게 용기를 주시며 도로테아 성녀는 안질환을 위한 수호성인이다. 브렌다노 성인은 뱃사람들을 보호하신다. 이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성인들의 통공

최근 들어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교리에 관한 신학적 조명이 활발해졌다. 성 요셉 수도회의 엘리자베스 존슨(Elizabeth Johnson, C.S.J.)은 이 분야 연구의 선구자이다.

얼마 전 저녁기도문 중 나오는 성인들의 통공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옮겼다. 남편의 죽음 이후 주기적으로 저녁 기도를 했는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기도 중에, 가톨릭 신앙의 기반이며 사도신경에도 언급되는 성인들의 통공을 몸소 체험했다. 전통적으로 성인들의 통공은 죽은 이들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통공은 남편뿐만 아니라 친구들, 유명 인사들, 여러 형식의 문화,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사회적 환경을 포함한다. 고독과 고립의 차이는 새로운 관용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나타나는데, 삶의 경험이 통공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나는 부활, 우리의 부활의 의미에 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인들의 통공 중 성인들이란 누구일까? 물론 교회법에 따른 성인들과 사랑하는 죽은 이들, 이들 모두가 조용히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하고 떠난다. 하지만 산 자도 있다. 개인적 친분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은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가톨릭의 상징은 확신을 반영한다. 세례로 하나됨은 죽음조차도 갈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모든 성인과 죽은 이들, 그리고 살아있는 이들이 언제나 우리를 위해 빌어주신다.

오늘날 천사와 성인들

모든 천사와 성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그들은 언제나 있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 계속 넓어지는 구름 같은 증인들 가운데 계신다. 하느님의 친구들로서 한결같은 사랑을 전해준다. 매일매일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의 실제적 사랑을 보여주시며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믿음을 갖도록 용기를 주신다.

그들은 1세기 무렵 팔레스타인이나 소아시아가 아닌 이 시대의 다양한 장소와 문화 속에서 목적 있는 삶을 살도록 격려해주신다. 우리에게 천사와 성인들의 존재는 축복이다. Deo Gratias(하느님 감사합니다!)


번역/ 임선영 아우구스티나 
원문 출처: Doleres R. Leckey, All the Angels and Saints, What Happened to Them?, Reclaiming Catholocism, Treasures Old and New (New York: Orbis Books, 2010)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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