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이 급진적 여성을 처음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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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이 급진적 여성을 처음 만났을 때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1.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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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서문

1952년 봄에, 나는 의학을 포기할 마음이 있었던 의과대 학생이었다. 학과가 끝난 어느 날, 나는 브로드웨이와 서쪽 165번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지하철을 탔다. 어디로 갈지 나도 몰랐다. 다만 내가 있던 곳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기차가 정거장을 빠져나오면서 유니온 신학교의 정경이 내 의식 속에 들어왔다. 나는 그곳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곳에서 몇 과목을 청강하고 있었으며 특히 라인홀드 니버의 탐구적이며 독립적인 정신에 기울어져 있었다.

난 데이비드 로버츠라는 또다른 신학자도 알고 있었는데, 그는 심리분석에 강한 관심이 있었지만 그에게 빛이 되어주는 신구약 성서와 바꿀 마음은 없었다.

두 사람이 나에게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일꾼의 “환대의 집”들이 전국에서 하고 있는 좋은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말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1930년대 후반에 <가톨릭일꾼> 신문을 읽고 있었고, 아버지도 그렇게 열광적이지는 않지만 그 신문을 읽고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날 5월의 아침, 지하철에 앉아있을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갑자기 나는 유니온 신학교 수업도 아마 끝났을 것이라고 깨달았다. 나는 시내로 더 들어가는 걸 생각했다 - 현대미술관을 가서 이번에는 학교 공부 걱정 없이 천천히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미술관에, 모든 미술관들에 싫증이 났다. 그것들은 내가 탈출하고 싶은 바로 그 세계였다. 예술이든 생물학이든 모두 분석의 세계인 것이다.

나는 뉴욕시의 거리번호들이 지나치는 것을 보았다. 내 마음은 한순간 비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너무나 꽉차버렸다. 마침내 거리 번호들이 점점 줄어들어 나는 할 수 없이 한 곳을 정해야 했다, 맨해튼에서 내리던가 아니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부르클린으로 가든가를.

후자를 결정했을 바로 그때 나는 한 나이든 여인을 보았고, 내 의학교육은 그를 바라보면서 얼굴의 황달기, 약한 거동, 부어오른 발목 등을 보도록 괴롭혔다 - “당뇨병인가?” 다음 정거장에서 문이 열리자 나는 재빨리 문밖으로 나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었다. 그때에야 나는 당황스럽고 어리석은 순간을 지나쳐 의학으로부터 또다른 탈출을 했다는 사실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계속 걸으면서 가게나 사람들을 살펴보고, 미친 듯이 자동차 경주를 하는 모습들도 보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나는 나의 목적 없는 방황을 마침내 그치게 했던 어떤 일을 기억한다. 그

때 나는 길모퉁이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서 “아,” 그리고 다시 “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니, 한 여인이 시멘트 보도 위에 쓰러지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를 붙잡으려고, 그를 쓰러지지 않게 하려고 했으나 너무 늦었다.

그는 길 위에 쓰러져서 조용했다. 나는 그에게로 허리를 구부렸고, 말이 자동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괜찮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괜찮습니까?” 또 대답이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아직까지 내안에서 힘든 것을 느낄 수 있다. 거기서 빨리 떠나 그냥 가던 길을 가거나, 아니면 그 여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알아보고 도움을 주고 싶은 욕구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몇 사람들이 둘러서서 보고 있었지만 우리 중의 누구도 감히 더 가까이 가거나 그를 만져보고 조금 더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내,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무릎을 꿇고서 같은 질문을 했다. “괜찮습니까?” 그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난 그의 눈이 내가 아니라, 분명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난 무서워졌다. 위를 쳐다보니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고 그에게 경찰을 찾아달라고, 한 여인이 쓰러져서 큰일났다고 소리쳤다. 그는 바쁜 군중 속에서 경찰을 찾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한 남자가 가게에서 뛰어나와 이 광경을 보았으며 경찰을 불렀다고 말했다. 경찰은 즉시 도착했고 차안에서 경찰복을 입은 두 사람이 내리고 그 중 한 사람이 설명도 없이 단정짓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여인은 죽었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맥을 짚어보지도, 일으켜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도 맥박을 재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했었다면, 난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세 사람이 서성거리며 남아있었다. 경찰은 전화를 했고 곧 여인의 몸과 머리 위에 담요가 씌워졌으며 그는 갈 길로 갔다. 더이상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놀람이나 두려움 혹은 성찰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봤던 우리들은 각자 나름대로 본 것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계속 걸었고 무슨 까닭인지 그 여인과 만났던 장면을 기억하지 않고 유니온 신학교에서 라인홀트 니버와 데이비드 로버츠가 학생들에게 계속 주지시켰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즉 삶은 짧고,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기 전에 기회가 있을 때 삶의 전체적인 의미를 생각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시간쯤 후에 나는 시내 아래쪽 동편에 있는 가톨릭일꾼 급식소에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도움이 되려는 일을 하려고, 자원봉사자 일을 하려고 결정했으며 이곳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날 오후에, 지금부터 거의 35년 전에 나는 도로시 데이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식탁에 앉아서 한 여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여인은 꽤 술에 취했으나 대화를 계속 하려고 했다. 옆에 서서 한편으로는 들으려고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 혼란스러운 여인과 몇시간 전 보도 위에서 본, 죽은 여인을 연결시켰다.

두 여인은 나이가 얼추 비슷했고 몸집과 살색, 머리카락도 비슷했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여인의 오른쪽 이마 위에는 붉은 자주빛의 큰 반점이 있었다. 여인은 그 반점을 만지면서 감탄사를 연발했으나 맞은 편에 앉아있는 사람으로부터 아무런 기척도 얻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두 중년여성들이 기본적으로 모순 같아 보이는 대화를 한없이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언제 끝날 것인가. 술취한 사람은 고함을 지르고 조용한 쪽은 고개만 끄덕이고 가끔가다 짧은 질문을 하지만, 이런 질문은 오히려 이미 수다스러운 사람을 가라앉히기보다는 더욱 더 시끄럽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마침내, 침묵이 방안에 내려앉았다. 도로시 데이가 상대방에게 잠깐 실례하겠다고 청했다. 도로시 데이는 일어나서 나에게로 왔다. 그는 “우리 둘 중 누구에게 말하려고 기다립니까?”라고 말했다.

우리 중의 하나, 이 두 마디로 그는 자기가 중요하다는 특권을 일생 갖고 살아온 나 같은 부르주아의 두터운 껍질들을 꿰뚫었으며, 단단한 자만심을 벗겨 버렸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은 헛되다.” 너무나 조용하게 너무나 공손하게 이 두 마디를 함으로써 그는 간접적으로 가톨릭일꾼운동이 무엇이며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에게 말해 주었다.

다른 교훈들도 있었으며 내가 소화시키고 내안에 살아있게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교훈들이 많았다. 도로시 데이는 가장 확고한 교사였으며, 그는 그에게 배우러오는 나 같은 사람들이 소박함과 겸손함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던 1950년대 초기에 뉴욕의 가톨릭일꾼 공동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1960년대에 아내와 나는 학교인종차별폐지를 연구하기 위하여 남부로 갔고 점차 민권운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항상 그런 것처럼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도로시 데이를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 그리고 앨라배마에서 만났다.

1970년대 초기에 우리는 보스턴으로 돌아왔고 나는 가톨릭일꾼운동과 교회 안에서 진행되는 다른 개혁운동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연구하고 싶었다. 나는 도로시 데이와 만나기 시작했다. 비록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표현이 풍부했고 살아있었으며 그가 믿고 느꼈고 희망했고 두려워했던 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때에 나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과목에 그의 책들을 인용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을 보스턴에 있는 가톨릭일꾼 환대의 집인 홀리하우스와 뉴욕의 성 요셉의 집과 메리의 집으로 데려 가곤 했다.

<세상을 향한 장관(壯觀): 가톨릭일꾼운동>에서 나는 가톨릭 교회의 계속되는 역사 속의 이 특별한 “순간”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나는 아직도 학생들, 친구들, 동료들에게서 도로시 데이에 관하여, 그의 태도와 의견, 목적, 희망과 야심, 그의 신앙의 본질과 정치에 대하여 끊임없는 질문들을 받곤 했다.

내 경험에서 볼 때 비슷한 관심을 긴급하게 이끌어내고 있는 다른 사람은 시몬 베유로서, 그 역시 아주 드문 20세기의 종교적 정치적 여성이다. 내 아내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는 이 두 빼어난 여성들에 관한 질문들을 우리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모두 태어났을 때가 아니라 성인이 되었을 때 가톨릭과 그 전통, 예식에 이끌렸던 사람들이다. 그 결과는 도로시 데이에 관한 이 책과 또 하나의 책인 <시몬 베유: 현대의 순례>이다.

이 책은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시몬 베유의 책처럼 전기라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삶에 관한 사실들이 각각의 책 속에 있으나,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했던 어떤 문제들과 주제들을, 그들의 삶에 있어 구체적인 측면들이나, 끈질긴 지적 관심들, 믿음들 그리고 강박관념과 같은 것을 살펴보는 것이다.

시몬 베유의 경우에 나는 그가 썼던 책들과 에세이들 그리고 그의 남동생과, 그를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글을 썼던 사람들의 평가에 의존해야 했다. 도로시 데이의 경우 전기적인 작품들은 훨씬 적었으나 자신이 직접 기본적인 자서전을 썼고, 다양한 범위의 주제들에 관해서 그의 생각을 자세하게 표현하는 많은 책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일꾼> 신문 매호마다 그의 고정칼럼이 실려서 그 당시 그의 마음에 있었던 다양한 질문과 개인적인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에 관한 좋은 전기들이 나타났고 가톨릭일꾼운동에 관한 귀중한 자료들도 출판되었다.

1970년대 초기의 2년이 넘는 시기동안 도로시 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녹음을 하지 않았었다면, 그리고 수년동안 도로시 데이와 나눈 대화를 적어 놓은 글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나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었는데, 특히 1973년 내 아내가 중병에 걸렸을 때 그는 아내를 위해서 매우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했다. 아내는 의사의 말에 의하면, 기적적으로 병에서 살아났고, 나와 아내는 그 후로 도로시 데이에 대해 결코 같은 느낌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는 한 동안 매일 아침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런 배려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하느님께서 그의 영혼을 축복하시기를.

그리고 나서 내가 한 것은 독자들에게 분명하고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그의 관점을 전달하려는 희망으로 그와 나누었던 긴 오랜 대화를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대화에 참여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래서 책의 많은 부분이 생명력을 갖고있다. 주제에 대해 그의 생각과 말들이 나의 생각과 말들과 교차되었고 그것이 그에게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주었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 나와 내 아내가 도로시 데이에게 느끼는 감사와 애정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또한 그의 삶, 그의 믿음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삶의 방식에 대한 그의 이유들에 대하여 계속 물어왔던 많은 학생들에 대해서도 감사하고싶다.

1972년 나는 매사추세츠 기술연구소의 죠지 애보트 화이트가 주선한 시몬 베유의 행적에 관한 심포지움에 참여하였다. 시몬 베유의 남동생과 나는 어느날 오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칠판에 광고된 심포지움의 제목, <시몬 베유: 그처럼 사는 것은?>에 대해 남동생이 보여준 약간 냉소적인 반응을 잘 기억하고 있다.

앙드레 베유는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강의실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에 대해 ‘예’라고 말할 것 같지 않네요.” 도로시 데이의 경우 질문은 보다 가능성이 있는 질문이 된다. 아마 우리 중의 소수가 결국 ‘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할 사람이지만, 그 질문은 내내 나의 삶을 사로잡아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도로시 데이에게 엄청난 관심사였다. 그는 우리가 이 지상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으로 애태울 때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도덕적 탐구라는 중심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그의 질문, “우리는 이 삶을 어떻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가?”가 이 책의 그 어떤 부분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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