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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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 방진선
  • 승인 2021.01.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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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한겨레
사진출처=한겨레

존경하는 쇠귀 신영복 선생님(1941년 8월 23일 ~ 2016년 1월 15일) 善終 5주년 

● 정신의 자유와 양심의 확신만으로 견뎌낸 20년 20일 동안 육신의 부자유 

육신의 자유를 얻은지 5년 후 쓰신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나카지마 아츠시,1993년)의 추천•감역의 글에서 그 속알이 드러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고 결코 현실을 경멸하지 않으며 현재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천하만대의 목탁'으로서의 초시대적 사명을 깨달은"(19쪽) 공자의 제자 자로가 마치 쇠귀 선생님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긴 세월 인고의 증표는 먼저 감옥으로부터 보낸 엽서의 필체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끌어 당겨 자세를 바로 세우는 한획 한자 정갈한 글씨에서 치열한 사색과 초연한 성찰의 진액이 스며 나옵니다.

● "죽은 시인의 사회"같은 이 시대에서 쇠귀 선생님은 우리의 시인이 외치는 <Captin, My Captin !>이신가요!

☞…강물은 높게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선생은 낮게 ‘강물처럼’ 흘러서 바다로 가자고 말한다. 강물이 만나는 모든 돌멩이를 쓰다듬듯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소통하는 것이 자비로움의 길인 듯하다. 이제 쇠귀 신영복선생은 이승의 인연을 다하고 사라졌지만 늘 그가 생각날 때면 책상위로 올라서서 외친다. “captin, my captin, Thank U!"

(김유철<강물은 높게 흐르지 않는다>, 가톨릭일꾼.2017.10.23)

● 이 매운 거리두기의 시절에 새기는 거리당김의 성찰 

☞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으로 만듭니다.”(.('엽서')

●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옥중에서 부친(신학상 선생)의 저서(<사명당의 생애와 사상>)를 교정하며 효성을 다하는 아들에게 도리어 부친은 “사람은 그들의 부모보다 그들의 시대를 닮는다"(첫문장)고 격려하십니다.('엽서')

☞ "아버님 전상서 <사명당 실기>는 다시 일독하여 오자를 바로 잡아서 영치시켰습니다. 오는 22일 생일연 때 영치되어 있는 다른 책들과 함께 찾아 가시도록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저술의 집필, 자료수집을 위한 현지답사 그리고 지방으로 출장강연 등 아버님의 한결같으신 연학에 비하면 저의 일상은 설령 징역살이를 빌미 삼는다 하더라도 돌이켜보아 부끄러운 나날이 아닐수 없습니다.--- "('엽서')

● 시대의 스승이며 사표의 겸손 

☞ 힘겨운 투병 가운데 이승을 떠나기 3개월 전에 남긴 말씀 !

"원래 '스승' 혹은 '사표'는 당대 사회에는 없는 법입니다. 다산도 당대에서는 그냥 죄인이었거든요. 사표와 스승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인터뷰, 2015.10.26)

☞ 그날 대담자들에게 적어주신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 실천해야 할 곡진한 유언 !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어가는 먼길에
다들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신 영 복

 

 

● 쇠귀 선생님께서 '마지막 엽서'처럼 남기신 글을 골라 새기며 삼가 평안한 안식을 기도드립니다.

☞ 엽서와 떠남

"나는 마지막 엽서를 당신이 내게 띄울 몫으로 이곳에 남겨두고 떠납니다. 강물이 바다에게 띄우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나무야 나무야',1996년)

☞ 곤경과 깨달음

“세모의 한파와 함께 다시 어둡고 엄혹한 곤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곤경이 비록 우리들이 이룩해 놓은 크고 작은 달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하더라도, 다만 통절한 깨달음 하나만이라도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더불어숲' 1998년)

☞ 추억과 만남

"생각하면 명멸(明滅)하는 추억의 미로(迷路)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삶 역시 이윽고 또 하나의 추억으로 묻혀간다. 그러나 우리는 추억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 추억은 화석 같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단히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청구회의 추억"의 추억,2008년 7월)

☞ 입장과 관계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엽서', 1993년)

거울과 사람

“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 전쟁이 이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전쟁이야말로 흉물임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처음처럼-신영복 서화 에세이', 2007년)

책과 성찰

"사실 제 인생을 바꾼 스승, 생각을 바꾼 한 권의 책은 없습니다. 모든 책은 반면교사이기도 합니다. 책도 중요하지만 책에 매달리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책을 많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추천하라고 치면 '논어', '자본론', '노자'입니다. '논어'는 인간을, '자본론'은 경제사회를, '노자'는 자연을 다룹니다." (경향신문 2005년4월24일)

창문과 문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着目)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陽地)’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1년 세모에.”(<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목표와 과정

"목표의 올바름을 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盡善盡美(진선진미)라 합니다."

('서화전', 2003년)

언약과 만남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강언덕에 올라 흘러가는 강물에 마음을 띄웁니다.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약속들을 생각합니다. 때늦은 회한을 응어리로 앓지 않기위해서 언젠가는 한송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강언덕에 올라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언약강물' 2014년 9월)

나무와 숲

"매서운 한파가 우리의 무심했던 일상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겨울은 나목(裸木)으로 서는 계절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써보낸 글귀를 끝에 적습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더불어 숲>,1998년)

삼독과 탈주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합니다.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필자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토대에. 발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독자 자신을 읽어야하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필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脫走)입니다. 진정한 독서는 삼독입니다. (<처음처럼(신영복의 언약)>)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신자
Senex et Operarius Studens 窮究하는 늙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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